언론계 '감원 추위' 몰아치나
  • 박미영 (<기자협회보> 기자) ()
  • 승인 2003.12.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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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우대 퇴직’ 내규안 마련…다른 신문들에도 불똥 튈 듯
지난 12월4일 <조선일보> 사내에서 차장급 이상 간부 사원들을 대상으로 ‘우대 퇴직 내규(안)’가 회람되었다. 이 자료가 돌면서 조선일보사 분위기는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말이 우대 퇴직이지 정리 해고나 다름없다는 반응들이었다. 그 기준은 다음과 같았다. △직제상 기구가 폐지되거나 업무가 소멸 또는 아웃소싱되는 때(제3조 5호) △직제 개편 또는 업무 형평에 의해 인원을 감축할 필요가 있을 때(6호) △인사 적체 등으로 직급에 상응하는 보직의 부재 또는 승진 지체 등에 따라 담당할 직무가 없거나 크게 축소돼 계속 근무가 심히 부적절하다고 회사가 판단하는 때(8호).

특히 내규(안) 6조는 △우대 퇴직 대상자 중 5호, 8호에 해당하는 이들을 지휘 감독하는 차상위 간부 사원은 우대 퇴직을 당사자에게 권유해야 하고 △이 권유를 2회 이상 해도 당사자가 우대 퇴직을 신청하지 않을 때는 회사가 우대 퇴직을 시킬 수 있다고 규정했다. 사실상 회사가 강제 퇴직을 시킬 수 있도록 명문화한 셈이다.

<조선일보> 노조 “강제 해고나 다름 없어”
이같은 내규에 대해 40대 중반인 한 차장급 기자는 “보는 순간 뒷골이 서늘했다”라고 표현했다. 또 다른 40대 초반 기자도 “실제 2∼3년 후의 내 얘기가 될 수도 있다. 무더기로 기자들을 뽑아 인사 적체가 심한 기수에서 특히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조선일보> 노조는 곧바로 노보를 통해 ‘회사측 판단으로 사실상 사원을 강제로 해고할 수 있는 수단을 마련한 것이어서 근로기준법 위반 소지가 있다’라고 반발했다. 파문이 커지자 방상훈 사장은 노조 관계자들과 만나 “장기근속자에게 우대 퇴직의 길을 열어주기 위한 것이었지 강요할 생각은 아니었다”라고 해명했다. 방사장은 내규(안) 가운데 문제가 된 6조는 수정할 의사가 있다고 한 발짝 물러섰다.

언론계에서 경영 실적이 가장 좋다고 알려진 조선일보사의 감원 추진은 다른 언론사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동아일보>의 한 중견 기자는 “올해 적자 폭이 수백억원이라는 얘기가 돌면서 내년에는 초긴축 재정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그래도 아직 회사에서 구조 조정 얘기가 구체적으로 나오지는 않았는데, <조선일보>가 먼저 감원을 한다면 우리한테까지 불똥이 튈 것 같다”라고 걱정했다.

올해 2백억∼3백억 원 적자가 날 것으로 예상하고 있는 <중앙일보>의 한 간부는 최근 친분이 깊은 언론계 인사에게 “차장급 이상 30명을 명퇴시키라는 지시가 나에게 떨어졌다. 내 손에 피를 묻혀야 하는가”라고 고민을 털어놓았다고 한다. <중앙일보>는 아직 공식으로 명예 퇴직을 실시하겠다는 방침을 밝히지는 않았으나 내년 초 정기 인사에 반영하지 않겠느냐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경영난이 심각한 신문사들은 더 죽을 맛이다. 경영 정상화를 위해 채권단으로부터 구조 조정을 요구받고 있는 <한국일보>는 내년 인건비를 10% 이상 줄인다는 방침을 세웠다. 퇴직자 등 자연 감소분을 포함해 내년 중에 기자조판제를 도입하면 전산 인력 수십 명 감원이 불가피할 것이다. <한국일보> 경영진은 회사 조직상 간부 비율이 높아 구조 조정이 필요하다고 판단하지만 구체적인 규모와 방법은 정하지 않은 상태다. <한겨레>도 12월부터 내년 2월 말까지 3개월간 고호봉자 희망퇴직제를 실시하기로 하고 신청을 받고 있다. <스포츠서울21>도 최근 명예 퇴직 신청을 받았는데 희망자는 2명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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