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 한복 잘 고르고 잘 입는 법
  • 오윤현 기자 (noma@sisapress.com)
  • 승인 2000.01.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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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색상 잘 고르면 설빔으로 제격…‘소품’ 활용하면 금상첨화
1980년대 중반 생활 한복(개량 한복)이 처음 거리에 등장했을 때 사람들은 둥글고 풍만한 선과, 치자색·가지색 같은 자연 색의 멋스러움에 반했다. 거기에다 저고리 고름과 바지 대님을 매듭이나 단추로 바꾼 편리함 때문에 더 큰 호감을 보냈다. 2년 전 국제통화기금(IMF) 관리 체제 여파로 ‘우리것’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면서 생활 한복에 대한 일반인의 호감도는 더욱 높아졌다.

하지만 생활 한복에 거리감을 느끼는 사람도 적지 않다. 깔끔한 색상과 편리함에 호감을 느끼면서도, 막상 자기가 걸치는 것은 왠지 망설인다. 특히 설이나 팔월 한가위 같은 명절만 되면 그같은 갈등은 더 깊어진다. 한껏 명절 분위기를 내려고 생활 한복 구입을 계획하지만, 판매장으로 발걸음을 옮기기는 쉽지 않다. 왜 그럴까.

여행사 차장으로 근무하는 유 아무개씨(39)는 몇 년 전부터 생활 한복 한 벌을 장만하려고 마음먹었다. 특히 지난해 설에는 이런저런 이유로 그같은 필요성을 톡톡히 느꼈다. 하지만 유씨는 설이 20여일 남은 지금까지도 망설이고 있다. “가끔 ‘우리 것’이라는 호감 때문에 사입고 싶은 생각이 든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생활 한복을 입은 모습을 떠올리면 금세 마음이 식어버린다. 어딘지 어색하고 촌스러운 느낌. 내가 입어도 저렇게 보이겠지 하고 생각하는 순간 자신이 없어진다.”

“우선 유행을 좇아라”

많은 사람들이 유씨와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다. 20여개나 되는 업체(77쪽 표 참조)가 다양한 디자인으로 생활 한복을 만들어내고 있지만, 그 옷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같이 ‘운동권 사람처럼, 꼴머슴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서울 관훈동에서 생활 한복과 전통 한복을 지어 파는 ‘마더벰부(母竹)’ 대표 김행원씨는 생활 한복이 사람들에게 그같이 부정적인 느낌을 주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생활 한복을 개발한 사람들은 대학에서 운동을 하던 사람들이다. 그들이 대학 풍물패가 입던 옷 따위를 참고로 해서 생활 한복을 내놓다 보니, 그 옷을 입으면 왠지 운동권 같은 선입견이 드는 것이다. 거기에다 생활 한복이 처음 나왔을 때 즐겨 입던 사람들이 외모가 유별난 남자 예술가나 한식집 여자 종업원이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부정적인 이미지를 주게 된 것이다.”

생활 한복 전문가들은 그같은 선입견이 잘못된 생각에서 기인한다고 지적했다. 생활 한복의 장점은 살펴보지 않고, 지레 짐작으로 부정적인 판단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눈썰미가 있는 사람이라면 길거리에서 세련되고 멋있게 생활 한복은 입은 남녀를 심심치 않게 만날 수 있다. 어떻게 입느냐에 따라 ‘아름다운 풍경’을 연출할 수도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생활 한복을 맵시 있게 입는 방법이 따로 있을까. 생활 한복 전문업체 ‘질경이’의 연성수 이사는 우선 유행을 좇으라고 권했다. “생활 한복도 유행을 따른다. 올해에는 ‘자연으로 돌아가자’는 취지에서 흑백 대조 같은 단순하고 간결한 생활 한복이 유행할 것이다. 그리고 정보 통신 시대에 걸맞게 금박을 입힌 옷도 나올 것이다. 이같이 유행을 좇아 생활 한복을 골라 입으면 좀더 세련되고 멋스럽게 보일 것이다.”

연이사를 비롯한 전문가들은, 생활 한복은 어떻게 입느냐에 따라 분위기가 확 달라진다고 밝혔다. 우선 디자인과 색상이 간결하기 때문에 ‘소품’을 잘 활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즉 생활 한복은 남녀 모두 목 부분이 허전한데, 목도리를 이용하면 멋도 내고 보온도 할 수 있다. 목도리는 치마·저고리의 질감과 색깔에 맞추어야 튀지 않는다. 칙칙하고 짙은 색 한복 피해야

여성복의 경우에는 노리개나 가락지를 활용하면 디자인이 엇비슷한 옷차림에 변화를 줄 수 있다. 밝은 옷에는 색상이 담백한 노리개를, 어둡고 은은한 옷에는 화사한 노리개를 쓰면 좋다. 특히 젊은 여성이라면 매듭 노리개를 활용하면 더 멋스럽다. 단 너무 큰 노리개나 반짝이는 금 목걸이·귀고리 같은 장신구는 피하는 것이 좋다. 아이들에게는 알록달록한 복주머니를 달아주면 표정과 몸짓이 돋보인다. 신발은 남녀 모두 구두를 피해야 하며, 가능하면 새롭게 개발된 고무신을 신거나 가죽신을 신는 것이 세련되어 보인다.

남성복은 대님을 매는 쪽이 단정해 보인다. 대님 대신 단추가 달려 있더라도 그 위에 대님을 매면 더 깔끔해 보인다. 대님은 옷을 살 때 매장에서 같은 색의 천을 얻어와 집에서 만들면 된다.

과거에는 한복을 지을 때 여러 가지 사항을 고려했다. 즉 결혼 여부에 따라 처녀는 노랑 저고리를, 주부는 남치마를 많이 입는 식이었다. 건강 상태에 따라 옷 색깔을 달리하기도 했다. 즉 간장이 나쁜 사람은 청색을, 폐가 나쁜 사람은 흰색을, 신장이 나쁜 사람은 검정색을, 비장이 나쁜 사람은 노란색을 입어 나쁜 얼굴 색을 가렸던 것이다.

지금에야 이같은 방식으로 옷을 고를 필요가 없지만, 그래도 몸매와 얼굴색에 맞는 옷을 고르는 것이 중요하다.

돌실나이 홍보부 양상운 대리는 “얼굴에 자신이 있는 사람은 차분한 색을, 얼굴에 자신이 없는 사람은 원색 계열의 화사한 색을 입는 게 잘 어울린다. 특히 얼굴이 검고 뚱뚱한 사람은 화려한 색에 금박 입힌 옷을 피하는 것이 좋다. 단점이 더 눈에 띄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처음 한복을 입는 사람은 한 벌을 갖추어 사는 것이 좋다고 권했다. 생활 한복을 계속 입어온 사람이라면 안목이 있어 아래 위를 따로 사서 새로운 멋을 창조할 수 있지만, 처음 입는 사람은 그러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최근에는 한 벌로 사입지 않고, 상의나 하의를 따로 입을 수 있는 옷이 많이 나와 있다. 양복 바지 위에 저고리를 걸쳐 입을 수도 있고, 치마 위에 저고리를 입을 수도 있다. 특히 두루마기 같은 ‘겹덮개 옷‘은 어느 옷에 덧입어도 잘 어울린다.

한복을 고를 때는 여러 가지 점에 주의해야 한다. 우선 초콜릿색처럼 칙칙하고 짙은 색은 피해야 한다. 그리고 디자인에서 한복의 자랑인 선과 색의 안온한 조화를 잃어버린 옷들도 외면해야 한다. 이런 옷들은 대개 동대문 시장 같은 데서 대량으로 판매하는데, 값이 싸다고 샀다가는 낭패를 보기 십상이다. 바느질은 물론 옷감이 엉망인데다 디자인도 개량 한복인지 양복인지 불분명한 것이 많다. 이런 옷을 입으면 마치 갓 쓰고 청바지 입은 사람처럼 보여 혐오감을 주기 일쑤이다.

현재 생활 한복 가격은 업체마다 만∼2만 원 정도 차이가 있지만, 한 벌에 대략 14만∼18만 원(면 100%일 경우)이다. 실크나 폴리에스테르 제품은 한 벌에 20만∼25만 원이다. 돌실나이의 할인 매장을 이용하면 30% 정도 싸게 살 수도 있다.

1년에 두세 번 입는 옷에 돈을 들이고 싶지 않은 사람을 위해 한복을 빌려주는 곳도 있다. 서울 종로구 명륜동에 있는 질경이는 ‘마삭’이라는 남녀 예복을 각각 5만원·7만원에 닷새간 빌려준다. 서울 마포구 염리동에 있는 한복집 ‘황금바늘’(02-717-3131)도 전통 한복을 대여한다. 2박3일 기준으로 남자 옷은 6만∼12만 원, 여자 옷은 5만∼14만 원에 빌려준다. 두루마기와 꽃신·가죽신도 빌려주는데, 두루마기는 6만∼12만 원이며, 신발은 5천∼만 원이다. 서울 강남구 신사동의 ‘조은이 한복’(02-518-5521)도 전통 한복을 15만원에 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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