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삼열 유엔아동기금 일본 주재 대표 “선진 국민 조건은 나눔”
  • 金鎭華 편집위원 ()
  • 승인 2000.03.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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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본·홍콩의 친선 대사 등 유명 인사 들을 앞세워 북한 어린이를 도울 기금 마련 운동을 벌일 예정입니다. 북한 어린이 문제는 정치와도 관련된 민감한 문제이니 한국과 일본이 앞장서 도와야 합니다.”
세계에서 기부금을 제일 많이 모금하는 기구로 알려진 유엔아동기금(UNICEF)이, 세계에서 두 번째 기부금 공여국인 일본 주재 대표에 한국인 구삼열씨(具三悅)를 임명해, 국제 사회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앞으로 3년 내에 일본을 기부금 공여국 1위의 ‘반열’에 올려 놓겠다는 야심 찬 계획을 갖고 있다는 구대표는, 임지 도쿄로 향하는 길에 잠시 서울에 들러 <시사저널>과 만났다. 그는 도쿄에 상주하면서 유엔아동기금 한국 대표도 겸임한다.

유엔 기구 등에서 일본의 역할이 커지고 있다는데, 유엔아동기금에서 일본은 어느 정도 중요합니까?

세계보건기구(WHO)·유엔난민기구(UNHCR) 책임자가 일본인이고, 유엔교육과학문화기구(UNESCO) 책임자 역시 일본인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유엔아동기금에 일본인은 거의 없고, 브라질 대표가 고작입니다. 그런데도 일본은 유엔아동기금 최대 기부국 중의 하나입니다. 지난해 일본 정부가 6천3백만 달러, 민간인이 6천5백만 달러, 합쳐서 1억2천8백만 달러를 유엔아동기금에 기증했는데 이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은 액수입니다. 일본인 1인당 1달러를 낸 셈이지요. 지난해 민간인 기부만을 놓고 보면 일본은 독일을 제치고 세계 1위였습니다. 유엔아동기금은 다른 유엔 기구와 달리 자발적 헌금에 의존하며 그 자발성이야말로 가장 고귀한 것입니다.

유엔아동기금이 그토록 중요한 일본에 구태여 한국인을 책임자로 보낼 이유라도 있습니까?

그 점을 의아해 하는 사람이 적지 않습니다. 제가 전부터 유엔 기구에서 섭외·홍보 및 의원연맹 일에 관계해 왔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또 지금껏 비동양인이 일본 책임자로 있었는데 동양권의 문화를 이해하는 데 실수가 없어야겠다는 점도 작용했다고 봅니다. 그 동안 한국과 일본의 관계가 꾸준히 개선되어 왔다는 점도 작용했을 것입니다. 한국인이기 때문에 오히려 일본 주재 대표로 활동하기에 더 유리할 수도 있습니다.

임명 배경이 그렇다면 본부의 기대도 클 것이 아니겠습니까? 어떤 활동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까?

유엔아동기금은 자발적 기부금에 의존하기 때문에 일본에서의 모금은 정부·민간 차원 모두 중요합니다. 일본 정부와 국제협력기구(JAICA), 일본 국회와의 관계도 돈독히 하고자 합니다. 특히 한국·일본·미국·유럽연합(EU) 등지의 유엔아동기금 의원연맹 간에, 그리고 국제의원연맹(IPO) 간에 적극적인 상호 협력 방안을 모색하려고 합니다. 민간 차원에서는 유엔아동기금 일본위원회와 NGO 단체들, 저명한 유엔아동기금 친선 대사들을 동원해 시민운동의 일환으로 모금할 계획입니다. 또 일본인을 상위직 유엔아동기금 국제 직원으로 천거할 생각입니다.

부인 정명화씨(첼리스트)도 친선 대사이며, 처남인 정명훈씨는 도쿄를 본거지로 한 아시아 유스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인데, 그 분들도 동원되겠네요?

네, 그렇지 않아도 처남은 올해 일본에서 공연이 열네 번 예정되어 있는데, 5월 중에 두 번을 유엔아동기금 자선 공연으로 잡아 놓았다고 합니다. 제 처도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모금을 위한 강연과 연주를 할 예정입니다. 일본 유엔아동기금 위원회는 모금액 배가 운동을 벌여 2003년까지 연간 1억 달러 이상 모금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유엔아동기금 총예산(11억 달러)의 15%를 일본 민간인과 정부가 부담하게 되는 셈입니다. 이 기금은 세계의 어린이와 여성을 위한 교육 지원에 집중적으로 사용하게 됩니다.
오랫동안 국제 사회에서 인색하다고 알려져 온 일본이 자선 기금 모집에 적극적이게 된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과거 일본의 대외 원조는 주로 자국 무역을 돕기 위한 이기적 정책이라는 좋지 못한 인상을 준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10여 년 전부터 일본의 대외 원조는 그 성격을 달리하고 있습니다. 일본은 어려운 사람, 어려운 나라를 돕는 것이 선진 국민의 조건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원조 액수가 크게 늘었을 뿐 아니라 내용도 바뀌어 진정 필요한 분야를 구체적으로 돕고 있습니다. 때문에 일본의 국제적 이미지는 10년 전부터 크게 개선되어 왔습니다. 선진국이란 무엇입니까? 어려운 사람을 돕는 나라가 선진국 아닙니까? 1998년까지만 해도 인구 천만이 안 되는 스웨덴 민·관의 유엔아동기금 기부액이 세계 2위, 독일 민간인의 기부액이 세계 2위였다는 사실은 이들이 선진 국민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일본인도 선진 국민으로 가는 길을 선택했다고 생각합니다.

한국도 관할하게 되셨는데, 한국의 기여도는 어떻습니까?

정부 기부금은 연 1백40만 달러였다가 IMF 체제 후에는 100만 달러 수준으로 떨어졌습니다. 우리나라 경제 규모로 봐서 낯 뜨거운 수준을 벗어나려면 3백만∼5백만 달러는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도 유엔아동기금 한국위원회는 난관을 무릅쓰고 3백만 달러를 모금했습니다. 내년 9월 ‘어린이 복지를 위한 유엔 특별총회’가 뉴욕에서 열리는데 이 회의에는 한국·일본·북한 등 세계 각국의 정상들이 초대됩니다. 한국은 이 총회의 가장 강력한 의장국으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도 체면을 유지할 정도의 기여가 있었으면 합니다. 우리도 1인당 10센트(1백20원)만 기부하면 5백만 달러가 됩니다. 한국인의 국제 진출을 막는 요소의 하나는 국제기부금이 너무 적다는 것입니다.

북한의 어린이 기아 문제가 극도로 심각한데….

한국·일본·홍콩의 친선 대사 등 유명 인사 들을 앞세워 북한 어린이를 도울 기금 마련 운동을 벌일 예정입니다. 평양에 유엔아동기금의 국제 직원 14명과 북한인 14명이 근무하는 비교적 큰 사무소가 있습니다. 북한 직원은 외국어 실력과 업무 능력 면에서 본부로부터 크게 칭찬 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남북 간의 불신이 큰 문제입니다. 작년 북한 주재 대표가 북한 어린이를 위한 긴급 예산 마련을 위해 전세계에 호소했으나 목표액의 40%밖에 거두지 못했습니다. 북한 어린이 문제는 정치와도 관련된 민감한 문제이니 한국과 일본이 앞장서 도와야 합니다. 저도 이 기회에 북한 어린이를 돕기 위한 획기적인 일을 하고 싶습니다.

그간 주로 미국과 유럽에서 일해 왔는데, 그런 일을 하자면 일본에 인맥이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한국에서 대학 다닐 때 세 차례 일본에 다녀왔습니다. 그 후 국제 기구에서 오랫동안 교우 관계를 유지해 온 일본 친구들이 각계에서 활약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도움을 기대합니다. 일본에 주재하는 동안 한국과 일본의 선린을 위해 어떤 형태로든 일조하고 싶습니다. 일본도 한국과의 진정한 선린 관계와 화해 없이는 세계적인 지도국·선진국이 되기 어려운 것 아닙니까? 유엔아동기금 활동을 통해 특히 두 나라 젊은이의 교류와 선린에 기여하는 것이 저의 꿈이기도 합니다.

유엔 기구에서 근무한 지 13년이라는 비교적 짧은 기간에 일본 대표라는 중책을 맡게 되었습니다. 국제 기구 진출을 원하는 젊은이들에게 어떤 말을 들려주고 싶습니까?

말단에서 시작해 승진하는 방법도 있겠으나 유엔 기구 밖에서 다양한 인생 경험을 쌓고 들어온 게 저에게는 오히려 유익했다고 봅니다. 한 기구 안에서 너무 오래 근무한 사람보다 사물을 다양한 각도에서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겠지요. 그러나 너무 승진에만 집착하지 말고 자신이 좋아하고 능력에 맞는 길을 택해 꾸준히 노력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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