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전남 ‘폐간 도미노’ 위기
  • 광주·羅權一 주재기자 ()
  • 승인 1999.07.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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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등일보> 이어 문 닫는 언론사 늘 듯…정부의 ‘숫자 줄이기’ 압박도 한몫
전국 최초의 지방 조간 신문으로 창간되어 지난 11년간 호남 지역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던 <무등일보>(대표이사 공병곤)가 모기업인 라인건설의 부도에 따른 경영난과 재정 악화를 이유로 7월1일 자진 폐간했다.

이로써 지난해까지만 해도 10개나 되는 일간 신문이 난립했던 광주·전남 지역은 현재 발행되는 9개 신문조차 ‘폐간’의 걱정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처지가 되었다. 3~4개 신문사를 제외하고는 임금을 제대로 지급하기 어려울 정도로 경영난을 겪는 데다, 김대중 정부가 ‘호남 호황설’의 빌미가 되고 있는 광주 지역 신문사 숫자 줄이기에 특별한 관심을 가진 것으로 전해지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언론계 주변에는 ‘<무등일보> 다음은 아무아무 신문이다’라는 말과 경쟁사를 음해하는 유언비어가 떠돌고 있다. 광주·전남 기자협회(회장 기현호)도 ‘제2, 제3의 <무등일보> 사태를 우려하며 다른 사주의 전횡과 독단을 경계한다’는 성명을 내고, 신문사 폐간 도미노가 가져올 언론 노동자의 대량 실직 사태를 걱정하고 있다.

광주·전남 지역 언론사 난립이 김대중 정부에 부담으로 작용한 것은 사실이다. 박지원 문화관광부장관은 청와대 공보수석 시절부터 ‘도청 주변에만 깔리는’ 지방 신문 난립을 지적했는데, 그 발언은 대개 광주 지역을 겨냥한 말이었다. 그는 “국내 언론사는 경제 규모나 인구에 비해 수적으로 너무 많다. 시장 경제 논리에 맡겨 망할 언론사는 망해야 한다”라고 주장해 왔다. 김대중 대통령도 “월급을 제대로 주지 못하는 일부 지방 언론사의 실정을 정확히 파악해 대책을 세워 보고하라”고 지시했다(6월22일 국무회의).

정부와 사주 짬짜미해 폐간?

때문에 광주 지역 언론계 일각에서 최근 <무등일보> 폐간을 두고 정부와 사전 교감이 있었을 것이라는 ‘음모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이광이 <무등일보> 노조위원장은 “공병곤 대표이사가 라인건설 회생을 담보로 신문 폐간을 결정했다는 의혹이 있다. 악덕 사주의 임금 체불과 부당 노동 행위는 눈 감아 주고 신문사 숫자 줄이기에만 급급하는 정부의 언론 정책이 5공의 언론 통폐합과 다를 것이 뭐냐”라고 비판했다. <무등일보>의 한 노조원은 “박지원 장관이 최근 업무 보고 자리에서 <무등일보> 폐간을 김대중 대통령에게 언론 정책의 성공 사례로 보고했다고 한다. 정부와 언론사 사주가 짜고 치는 고스톱에 언론 노동자들만 ‘피박을 쓰고’ 실업자가 되는 것이 정부의 언론 개혁이다”라고 비아냥댔다.

이러한 음모론과 달리 <무등일보> 폐간을 시장 논리의 결과로 보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무등일보>의 한 전직 간부는 “이미 지난해 6월 경영난으로 문을 닫을 생각이었지만 노조와 사원들이 간청해 1년간 더 버틴 것이다. 정부의 언론 정책이 폐간을 결정하는 데 유리한 환경을 조성하긴 했지만 이미 그전에 문을 닫을 상황이었다”라고 주장했다. 광주 지역 유력 언론인 <광주일보>도 마찬가지 논리를 폈다.

그러나 ‘음모론’이냐 ‘시장 논리에 따른 폐간’이냐 논란 속에서도, 중요한 것은 ‘광주에 신문이 너무 많다’는 것이 광주 시민의 정서라는 점이다. 김덕모 교수(호남대·커뮤니케이션학부)는 “원칙적으로 신문마다 차별화한 내용과 다양성을 유지하고 있다면 신문이 많다는 것은 별 문제가 되지 않지만 모기업의 이익을 위해서 발행하는 천편 일률적인 신문은 많을 필요가 없다”라고 주장했다.

이름을 밝히지 않은 한 신문사 기자는 “사주가 문을 닫겠다고 위협하면 노조와 사원들이 말리는 처지다. 이번 기회에 사주의 말 한마디에 전전긍긍하고 적자만 늘어가는 신문을 억지로 끌고 가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아무리 시장에서 실패한 언론이라 할지라도 사주의 일방적인 결정으로 입게 될 언론 노동자들의 피해와 관련해 별다른 대책이 없다는 점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있다. <무등일보> 노조원들은 현재 퇴직금과 체불 임금을 받지 못한 채 실직한 처지다.

정부가 신문사 사주의 부실 경영 책임을 추궁하지 않고 ‘신문사 숫자 줄이기’에만 치중하거나 인위적인 ‘통합’을 유도할 경우 언론 노동자들의 반발은 그만큼 거세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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