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하노버 에너지 박람회 참관기
  • 이필렬 (방송대 교수·과학사) ()
  • 승인 2000.08.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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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하노버 엑스포 참관기/태양·바람 등 대안 에너지 개발 성과 한눈에
지난 6월1일부터 독일 니더작센 주 하노버에서 ‘엑스포 2000’이 열리고 있다. 21세기 첫 만국 박람회인 이번 행사를, 독일 정부는 처음부터 환경 박람회로 만들겠다는 구상을 갖고 준비했다. 박람회 사무국은 엑스포 내부 전시물 외에 독일 전역에 크고 작은 환경 프로젝트를 만들어 일반에게 공개하고 있다.

이 중 가장 많은 숫자를 차지하는 분야가 에너지이다. 에너지에 쏠린 독일 정부와 국민의 높은 관심을 반영하듯 이번 프로젝트에는 에머탈 오르베르크의 태양열 난방·태양광 발전 계획, 루르 지역의 대단위 태양광 발전 계획, 졸타우 등지의 바이오매스 계획, 오스트리츠 같은 소도시 단위의 환경친화적 에너지 공급 시스템 구축 계획 등 거의 모든 종류의 재생 가능한 에너지 이용 프로젝트가 포함되어 있었다.

지난 7월1∼7일 환경운동연합 ‘에너지 대안 포럼’을 대표해 이들 프로젝트를 돌아본 필자는 독일의 에너지 정책이 ‘화석 에너지와 원자력의 20세기를 넘어 태양 에너지의 21세기’로 나아가고 있음을 느꼈다.


독일 정부 ‘10만 태양광 지붕 프로그램’ 주효

에너지 정책 전환을 가능케 한 출발점은 1970년대 초부터 시작된 원자력 발전 반대 운동이다.

독일 정부는 원자력 포기와 재생 가능 에너지 시대로 진입하기 위해 원자력 산업계와 1년6개월에 걸쳐 힘겹게 줄다리기를 벌인 끝에 지난 6월15일 원자력 발전소 가동 연한을 32년으로 하기로 합의했다. 이에 따라 현재 가동되는 원전 19기는 2002년부터 하나씩 사라지기 시작해 2020년께에는 독일 땅에서 완전히 자취를 감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독일의 결정은 일반 시민과 양식 있는 정치인들의 높은 환경 의식에 바탕을 둔 것이다. 이들은 원자력 포기 주장과 병행하여 그 대안도 꾸준히 모색해 왔다. 원자력의 대안은 낡고 반환경적인 화력 발전이 아니라 미래지향적이고 깨끗한 재생 가능 에너지가 되어야 하며, 재생 가능 에너지가 완전히 정착할 때까지 과도기적 틈새는 효율적인 에너지 사용으로 메운다는 시나리오가 작성되었다. 독일에서는 재생 가능 에너지 확대와 에너지의 효율적 사용으로 이행하는 것을 ‘에너지 전환’이라고 부르는데, 이 전환을 이룩하기 위한 수많은 시민단체와 시민의 노력은 1990년 ‘1000개의 태양광 지붕 프로그램’ 도입과 1991년 재생 가능 에너지로부터 생산된 전기 의무 구매를 내용으로 하는 ‘전기 매입 법안’을 제정함으로써 결실을 보았다. 이 가운데서 태양광 프로그램은 단순한 설비 지원을 내용으로 했고 1000개에 한정되었기 때문에 태양광 발전 설비 증가에 크게 기여하지 못했지만, 전기매입법안은 재생 가능 에너지로 생산한 전기를 전력 공급 회사가 소매가의 90%로 매입하도록 규정했기 때문에 채산성이 있는 풍력이나 소수력이 대대적으로 확대될 수 있었다. 특히 풍력 발전은 1990년대 중반까지 해마다 거의 두 배씩 성장하여 1999년 말 현재 독일은 원자력 발전소 4기에 해당하는 4072메가와트(㎿)의 풍력 발전 용량을 지닌 세계 최대의 풍력 발전국이 되었고, 지금도 발전 용량을 해마다 40% 가량씩 늘리고 있다. 이러한 추세라면 2010년에는 전체 전력 수요의 5% 가량을 풍력 발전이 담당할 것으로 전망된다.

풍력 발전이 급속히 성장하는 동안 가장 많은 잠재량을 지닌 것으로 추정되는 태양 에너지는 가격 경쟁력이 크게 떨어진다는 이유로 크게 각광 받지 못했다. 그러나 사민당·녹색당 정권이 집권함과 동시에 시행된 ‘10만 태양광 지붕 프로그램’과 지난 4월1일부터 발효된 ‘재생 가능 에너지로부터 생산된 전기 지원법’(재생전기법)에 힘입어 태양광 발전도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 ‘10만 지붕 프로그램’은 가정집이나 공공 건물의 태양광 발전 설치 비용을 무이자로 지원하고 원금의 90%만을 7년간 상환하도록 하는 것이고, 재생전기법의 주요 내용은 기후 변화 억제를 위하여 태양광 발전 설비로부터 생산된 전기를 전력 공급 회사가 20년간 kw/h당 99 페니히(약 550원)에 의무 구입하도록 하는 것이다(독일의 전기 소매가는 20 페니히). 이에 따라 독일은 전세계 태양광 전지와 전기 생산에서 선도적인 위치를 점할 전망이다.

재생전기법이 시행되자 설치비 지원 신청자가 엄청나게 몰렸고, 이로 인해 ‘10만 지붕 프로그램’을 위해 책정되었던 2000년분 예산은 곧 바닥 날 것으로 보인다. 또한 광전지 생산 용량이 증가하는 수요에 미치지 못해 기존 생산공장들은 생산 용량을 확장하는 일에 박차를 가하고 있고, 새로운 공장 설립도 늘어나고 있다. 이미 지난해 11월에 세계 최대 광전지 생산 용량(현재 연산 10㎿, 완공후 연산 25㎿)을 지닌 다국적 석유회사 셸의 광전지 공장이 가동을 시작했고, 지멘스-솔라도 광전지 생산에 박차를 가하는 등 독일에서는 태양광 전지 대량 생산 체제가 갖추어지고 있다. 셸은 이와 같이 대량 생산이 지속되면 생산 비용도 해마다 줄어들어 2010년에는 태양광 발전 설비 가격이 절반으로 떨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독일이 재생 가능 에너지로 전환하는 것은 2005년까지 온실 기체 방출량을 1990년 대비 25% 감축하려는 야심 찬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것일 뿐만 아니라, 미래의 세계 에너지 시장에서 독일의 위치를 확고히 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세계의 에너지 전문가나 연구기관들이 장기적으로 재생 가능 에너지가 화석 연료와 원자력을 대체할 것으로 내다보기 때문에, 독일의 연방 정부와 주정부는 경제적인 면도 생각해서 재생 가능 에너지 기술 개발과 보급에 힘을 쏟고 있는 것이다. 이미 풍력 발전 기술에서 독일은 덴마크와 함께 세계를 선도하는 위치에 올라섰고, 엑스포 2000의 외부 프로젝트에서 제시된 태양광 발전, 태양열 이용, 바이오매스 이용, 효율적인 소형 열병합 발전 기술에서도 상당히 앞서 있었다. 그동안 갈탄이나 석탄 대량 채굴과 그에 연관된 산업에 바탕을 둔 루르 지역에서 풍력과 태양 에너지 이용에 특별한 관심을 쏟고 있는 것도 화석 연료에 기반을 둔 사양 산업으로부터 벗어나 새로운 에너지 기술의 주도권을 쥠으로써 도약을 꾀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
수십년에 걸친 각성과 노력의 결과

현재 독일에서 일어나고 있는 재생 가능 에너지 붐은 정권 차원의 갑작스러운 정책 전환에 의해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여기까지 오는 데는 수십 년에 걸친 원자력 발전 반대 운동과 에너지 문제에 대한 시민의 각성 그리고 원자력을 대신할 수 있는 에너지 대안을 찾는 수많은 사람의 꾸준한 노력이 있었다. 사민당과 녹색당은 이러한 운동과 노력에 힘입어 재생 가능 에너지 확대를 위한 과감한 정책을 수립하고 시행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오늘날 한국에서도 정권 차원에서는 에너지 문제의 심각성을 잘 알고 있는 듯이 보인다. 지난 5월 국제 원유 가격이 다시 배럴당 30 달러에 육박하자 대통령까지 나서서 에너지 절약을 강조했고, 산업자원부가 주도해 범국민적인 에너지 절약 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6월 말에는 에너지 이용 효율 향상과 절약을 유도할 의도로 에너지 가격을 최고 250%까지 인상한다는 계획이 발표되었다.

그러나 한국 정부의 이 모든 계획이 에너지 절약과 재생 가능 에너지 확대를 가져올 것인지는 의문이다. 무엇보다 정부의 정책에 원자력을 포기하고 그 대안으로서 재생 가능 에너지를 확대해 ‘에너지 전환’을 이룩하겠다는 근본 인식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원자력과 화석 연료를 뛰어넘어 재생 가능 에너지에 기초한 대안 에너지를 찾아 나아가는 것은 세계적인 추세이고 또한 인류의 운명이 걸린 문제이기 때문에, 대안을 찾는 노력은 꾸준히 지속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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