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덕홍 전 교육 부총리 “교육부 마피아가 나를 배척했다”
  • 주진우 기자 (ace@sisapress.com)
  • 승인 2004.01.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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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교육부 관료와 보수 언론 때문에 나의 진의가 국민들에게 왜곡되어 비쳤을 뿐, 내가 왔다갔다한 것은 없다.”

“청와대 참모들의 전체적인 기류는 내게 그리 우호적이지 않았다. 청와대에 교육 정책을
노무현 대통령이 참여정부 초대 교육 부총리로 딸깍발이 윤덕홍 카드를 꺼내들자 교육계는 긴장했다. 교육부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던 학부모와 전교조는 박수를 보냈다. 윤부총리가 취임 일성에서 교육부 관료들에게 장관을 뺑뺑이 돌리고 바지저고리 만들면 가만히 있지 않겠다고 하자, 교육 개혁을 염원하던 국민은 손뼉을 쳤다.

하지만 윤부총리의 소신이 암초를 만나는 데는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의 소신 발언은 방향이 없다 말을 자주 바꾼다 전문성이 떨어진다 등 아픈 회초리로 되돌아왔다. 고등학교 교사, 전문대학 교수, 대학 교수와 총장을 두루 거친 다양한 경력도 별반 도움이 되지 못했다. 결국 대통령이 임기를 같이 하겠다던 교육 부총리는 9개월 만에 중도 하차해야 했다. 1월12일 대구의 한 호텔 커피숍에서 <시사저널>과 만난 그는 자신이 뿌리 뽑겠다던 교육부 마피아에 의해 제거되었고, 청와대는 교육 개혁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다는 말을 남겼다.

대통령이 임기를 같이 하자고 했는데 9개월여 만에 물러났다.
부덕의 소치다. 내가 잘했으면 롱런했을는지 모른다. 돌이켜보면 교육행정시스템(NEIS)이 발단이 되었다. 교총이나 교장은 강행을 원했고 전교조와 시민단체는 시간을 갖고 검토하자는 입장이었다. 검토해 보니 문제가 있었다. 사생활을 침해할 만한 아이템이 지나치게 많았다. 이를 해소할 법적 조처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아서 정보가 악용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었다. 내 생각에는 6개월쯤 검토하고 보완해서 시행하는 게 합리적이라고 보았다. 하지만 교육부 공무원들이 강행을 원했다. 나는 교육부를 바꿔보려는 사람이었으나, 일부에서는 나를 배척했고, 나의 진의가 국민들에게 왜곡되게 보이길 원했다. 본래 모습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 비쳤다. 하지만 나는 악착같지 못했다.

교육부 마피아를 없애겠다고 했는데, 결국 교육부 마피아에게 당한 것 아닌가.
지난해 교육부 예산이 22조원이었다. 전국민의 60%가 교육과 직접 관계가 있고, 교육부처럼 일 많은 부서도 없다. 정책도 복잡해서 이를 파악하는 데만 1∼2년이 걸린다. 나는 6개월 걸려서야 파악이 되더라. 자칫하면 바지 저고리가 될 수밖에 없다. 평소 준비하라고 지시한 내용도 이행하지 않았고, 일이 터지고 난 후에도 공무원들은 신속하게 대처하지 않았다. 인사권을 휘두르면 조직을 쉽게 장악할 수 있었을는지 모른다. 하지만 속으로는 동의하지도 않고, 내가 바뀌면 곧 본래대로 회귀해버린다. 공무원들이 내면적으로 날 존경하고 국가 이익을 먼저 생각하는 메커니즘을 만들고 싶었다. 어느 부서보다 교육부는 민주적인 리더십이 필요하다. 나의 리더십은 단계와 시간이 필요했다. 1년 정도 시간이 주어졌다면 해낼 수 있는 문제였다. 내가 나올 무렵 상당수 공무원들이 나를 따르고 같이 일하고 싶어했다. 교육부 공무원의 30%쯤 됐던 것으로 기억한다.

재임 중에 각종 교육 현안에서 중심을 못잡고 이랬다저랬다 한다는 비난을 들었는데….
내가 왔다갔다한 건 없다. 교육부의 기능을 대거 지방으로 이양해 교장의 권한을 강화하고 이를 견제하기 위한 학교운영위원회의 권한도 강화하겠다는 말을 이틀간 똑같이 했다. 하지만 언론에서 하루는 교장 기능 강화, 다음날은 학교운영위원회 기능 강화라고 기사를 썼다. 그리고는 이 장소에서는 이렇게, 저 장소에서는 저렇게 입에 발린 말로 말을 바꿨다고 했다. 교육부 관료는 물론 서울의 주류 언론과는 그렇게 사이가 좋지 않았다.

취임 직후부터 언론의 집중 포화를 맞았다.
나는 내 소임을 다할 뿐 같이 술 먹어주고, 골프 쳐주고 싶지는 않았다. 한번은 신문 기자에게 내가 그렇게 싫으냐라고 물었다. 그랬더니 그 기자는 아니다. 데스크에서 그렇게 쓰라고 해서 할 수 없이 썼다라고 했다. 그래서 기자도 장관만큼 교육에 대한 책임이 있으니 불안만 강조하지 말고, 교육의 밝은 모습도 보여주면 우리 교육이 더 좋아지지 않겠냐고 말했다.

취임할 때는 전교조로부터 환영을 받았지만 전교조와 썩 좋은 관계는 아니었는데….
전교조에는 애정이 있다. 참교육운동은 직접 돕기도 했다. 직접 만나보니 전교조 집행부는 지나치게 딱딱했다. 원영만 위원장과는 이상하게도 말이 통하지 않더라. 운동에는 전략과 전술이 있어야 한다. 결국 곁가지 때문에 교육의 본질을 논하지도 못했다. 내가 나올 때가 되어서야 전교조에서 나와 조금만 대화를 했더라면 하는 아쉬운 소리가 나왔다. 하지만 이미 시간이 지나버렸다.

후임 안병영 부총리는 강력한 추진력과는 거리가 있어 보이는데.
교육부 공무원들에게 물었더니 역대 장관 가운데 안병영 장관을 좋아하는 사람이 많았다. 유순하고 합리적이라고 하더라. 나와 달리 보수 언론과도 친화력이 있다고 들었다. 그런 면이 정책 추진에 도움이 될 것이다. 안장관의 교육 철학이 개혁적인지는 모르겠다. 내가 천거하지는 않았다.

노무현 대통령을 비롯한 청와대 참모들이 교육 개혁에 도움을 주었나?
참모 가운데 몇몇이 나를 보호하려고도 했지만 전체적인 기류는 내게 그렇게 우호적이지 않았다. 대통령 주변에 경제 정책을 보좌할 인맥은 있으나 교육 정책을 보좌할 사람은 없다. 교육이 너무 정치화해 있다. 교육 개혁의 정체성을 유지해야 하는데 걱정이다.

대통령이 교육 부총리 직을 제의할 때와 사표를 냈을 때 각각 무엇이라 했나?
당신 같은 경력을 가진 사람도 없으니 잘 해낼 것이라고 맡아달라고 했다. 사표를 냈을 때는, 만약 또 교육에 문제가 생겼을 때 여론이나 언론이 결코 윤장관을 편들어줄 것 같지 않다는 말을 했다.

앞으로 무엇을 할 생각인가?
공직에서 물러난 후 대구대 교수로 복직했고, 올 3월 강의 시간표에 이름도 올렸다. 가능할지는 몰라도 내 마지막 소원은 시골 중학교 교장을 한번 해보는 것이다. 참여정부 초대 내각의 부총리로서 정부가 성공하기 위해 지역에서 힘을 보태달라는 제의를 받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나는 학계에서 후진을 양성하고 시민단체를 통해 활동하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그러나 주변의 출마 권유에 상당히 심각한 고민을 하고 있다. 누가 날 대구 수성 갑에, 경북 경산·청도에 내보냈는지 모르겠다. 입도 뻥긋 한 적 없다.

대구에서 출마할 경우 승산은 있다고 보는가?
확실치 않지만, 대구지역 개혁 그룹의 수장이 되어 대구를 다시 개혁적인 도시로 바꿔보자는 공감대는 형성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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