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레스 풀고 보람 느끼는 애완 동물 기르기
  • 오윤현 기자 (noma@sisapress.com)
  • 승인 2000.06.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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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완 동물 기르기, 스트레스·소외감 예방 치료에 효과… 초보자에겐 개·햄스터 적합
출판일을 하는 이지연씨(28·서울 강남구 논현동)의 방에 처음 발을 들여놓는 사람은 몇 번씩 깜짝깜짝 놀란다. 먼저, 네댓 사람이 누우면 숨도 못 쉴 정도로 좁은 방안에 어항·새장·플라스틱 사육통 같은 동물 ‘집’이 예닐곱 채나 들어서 있는 것을 보고 신기해 한다. 또 그 집에 사는 자라·무당개구리·팬더마우스·육지거북·이구아나·십자매·골든햄스터·잉어 같은 ‘대식구(大食口)’를 보면 기겁을 한다. 이씨가 두꺼비·카멜레온·구렁이·누룩뱀같이 ‘으스스한’ 식구를 소개할 때는 아예 벌린 입이 다물어질 줄 모른다.

이씨는 성격이 무척 까다로운 야생 카멜레온이나 두꺼비가, 개나 고양이처럼 살가운 애완 동물로 변하는 모습과, 자기를 알아보고 따를 때 희열을 느낀다며 “그 마력 때문에 수년째 동물을 집안에 모셔놓고 있다”라고 말했다.

학자들에 따르면 동물을 사육하려는 인간의 소망은 태고 적부터 있어 왔다. 비교생태학자인 콘라드 로렌츠(1903∼1989)는 문명이 발달할수록 잃어버린 낙원에 대한 인간의 동경은 더욱 커진다고 주장했다. 즉 인간의 피 속에는 본능적으로 자연이나 동물과 어울리고 싶은 ‘유전 인자’가 있다는 것이다. 사회학자들은 거기에다 스트레스로 가득찬 사회에서 소외되는 사람들이 삶의 위안을 얻기 위해 애완 동물을 키우게 되었다고 덧붙인다.
성취감·자신감 북돋아 어린이에게 더 유익

로렌츠와 사회학자들의 주장은 시간이 갈수록 명확히 검증되고 있다. 애완 동물에 대한 현대인의 관심이 날로 높아가고 있는 것이다. 한국갤럽에 따르면, 전국에서 애완 동물을 키우는 사람은 1997년에 이미 1천5백만 명을 넘어섰다. 애완 동물의 종류도 매우 다양해졌다. 1970∼1980년대에는 개·고양이·새·금붕어가 인기였으나, 요즘에는 햄스터·원숭이·장수풍뎅이·뱀·이구아나·앵무새·거미 등, 포악한 포유류를 제외한 거의 모든 동물이 사랑받고 있다.

어디 그뿐인가. 애완 동물 시장은 도가 지나칠 정도로 번창하고 있다. 애완견의 몸매를 가꾸고 매니큐어를 칠해주는 미용업소가 속속 생겨나는가 하면, 성형·쌍꺼풀·주름살 제거 수술을 하는 동물 병원까지 등장했다. 여름이면 ‘오렌지 개’들을 위해 찬바람이 씽씽 나오는 호텔이 생기고, 겨울이면 애완 동물 전용 온천이 문을 연다. 최근에는 죽은 개에게 고급 수의를 입히고, 그 개를 리무진으로 운구해 화장하는 장례 대행업체까지 생겨났다(71쪽 상자 기사 참조).

한국애완견협회에 따르면, 1999년 국내 페트(애완 동물) 산업 규모가 최소 3천5백여억원에 달했다. 이 때문에 일부에서는 돈이 없다는 핑계로 어린이를 해마다 수천 명씩 해외로 입양시키는 나라에서 있을 수 있는 일이냐며 목소리를 높이기도 한다. 그런데도 유아교육학자나 가정의학자 들은 애완 동물을 한두 마리쯤 키우는 것이 좋다고 말한다. 그만큼 사람에게 이롭기 때문이다.

서울 서교동에 사는 회사원 차 아무개씨(38)는 얼마전 신비로운 경험을 했다. 하루는 늘 늦잠을 자던 딸아이가 새벽녘에 베란다에 나가 있었다. 딸아이는 아빠가 옆에 가 앉아도 모를 정도로 무언가를 골똘히 들여다보고 있었다. 차씨는 무언가 하고 들여다보았다. 달팽이였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딸아이는 며칠 전 비가 오는 날, 강낭콩만한 달팽이를 잡아다 플라스틱 통에다 넣고 그것을 관찰해 오고 있었다. 차씨는 “주의가 산만하던 아이가 달팽이를 관찰하면서부터 차분해졌다”라며, 애완 동물의 교육 효과가 이처럼 클 줄 몰랐다고 털어놓았다.

어린이들이 특히 애완 동물을 좋아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어린이라면 누구나 때로 억울하다고 느끼고, 또 이 세상에 혼자가 된 듯한 외로움에 빠진다. 그런 고립 감정은 대체로 가족에 의해 치유된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도 있다. 이때 동물이 필요한 것이다.

이 근 교수(이화여대·소아과)는 <쩔쩔매는 엄마>라는 책에서 동병상련 때문에 어린이가 개를 더 좋아한다고 주장한다. ‘어린이는 매일매일 어지럽히고, 말썽부리고, 더럽힌다고 꾸중듣는다. 개도 마찬가지이다. 이 때문에 어린이는 개를 통해 자신의 열등 의식을 덜어내고 소외감을 털어낸다.’ 이교수는 이를 근거로 어린이와 애완 동물의 만남을 적극 권장한다. 단, 몇 가지 지켜야 할 사항이 있다. 동물의 먹이값 정도는 어린이 용돈으로 해결하도록 한다. 그러면 책임감과 함께 성취감·자신감을 키울 수 있다. 또 키우는 동물에 대해 공부하기를 유도하고, 아이가 동물을 관찰하고 느낌을 말할 때 귀를 기울여 주어야 한다. 그래야 교육 효과가 크다.
임신부·천식 환자 들은 멀리해야

스웨덴 샤그렌스카 대학의 헤즐마 박사는 지난해 어릴 때 애완 동물을 키우면 어른이 되어서 천식·비염 등의 알레르기 질환에 덜 감염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우트레히트 대학(스웨덴)의 마리 호세 엔더스 박사는 논문을 통해, 애완 동물이 특히 노인에게 효과적임을 밝혀냈다. 노년에 외로움을 겪는 사람은 정신적 고통과 스트레스로 인해 질병에 걸릴 확률이 높은데, 애완 동물을 기르면 정신적 안정감을 얻어 병에 걸릴 가능성이 적다는 것이다. 집에서 동물을 기르면 심장질환·우울증·편두통·감기에 걸릴 확률이 낮고, 혈중 콜레스테롤 수치가 낮아진다는 것이 그의 견해이다. 미국의 한 연구소는 여러 가지 실험을 통해 개와 고양이, 심지어 돼지·말·가오리 들이 사회적으로 무능력하고 고립되어 있는 사람들에게 크게 도움을 주고 있음을 밝혀내기도 했다.

물론 우려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애완 동물로 인해 병에 걸릴 수 있기 때문이다. 개·쥐·토끼 같은 동물을 키우다 보면 알레르기 질환이나 갖가지 질병에 감염될 수 있다. 세계적인 동물행동 전문가 브루스 포글은, 포유 동물 사이에 공유할 수 있는 몇 가지 질병 중에 세균이나 기생충이 가장 위험하다고 경고했다.

예를 들면 당뇨병 환자나 항암 치료를 받는 환자가 고양이에게 물리면, 고양이 침 속에 있는 바르토넬라 균 때문에 면역 기능이 떨어진다. 또 묘조병에 걸릴 수도 있다. 앵무새는 폐렴을 유발하기도 한다. 개의 배설물은 파상풍을 옮기고, 털에 붙은 진드기는 알레르기 질환을 유발한다.

포글에 따르면, 동물로부터 감염되지 않으려면 입맞춤 같은 밀접한 접촉을 삼가고, 애완 동물을 만진 뒤에는 꼭 손을 씻어야 한다. 그리고 애완 동물의 배설물에 직접 손대지 말고, 정기적으로 예방 접종을 한다. 임신부나 천식·알레르기 비염 같은 질환을 갖고 있는 사람은 좀더 주의해야 한다.

혹시 생길지도 모를 ‘위험’을 감수하고 애완 동물을 키우겠다고 마음먹었다면 우선 가족의 동의를 구할 필요가 있다. 불필요한 갈등을 방지하기 위해서이다. 그런 다음 시장에 나가 동물을 고른다. 콘라드 로렌츠는 다음과 같은 사항을 따져 보고 선택하라고 말한다. 동물에게 무엇을 원하고 기대하는가, 기르는 데 얼마만큼 노력해야 하는가, 소리에 어느 정도 민감한가, 누가 어느 시간에 돌볼 것인가, 이웃은 이해할 만한 집인가 하는 점들이 그것이다.

1999년 한 조사에 따르면 한국인들이 가장 많이 기르는 애완 동물은 개·햄스터·이구아나·미니토끼·거북이 순이었다(현대리서치연구소). 이 결과는 그만큼 이 동물들이 기르기 쉽다는 사실을 확인해 준다.

그렇다면 이들 동물을 어떻게 집으로 모셔와야 할까. 먼저 애완 동물 판매점에 간다. 그런 다음 자신이 고른 동물의 특징과 병력·예방 접종 여부를 따진다. 주인으로부터 사육 방법도 소개받는다.

동물들은 모두 활달해 보일수록 건강하다. 힘없이 쭈그리고 있거나, 건드려도 반응이 없는 동물은 안 사는 것이 좋다. 값이 너무 싸면 어딘가 이상이 있다는 암시이므로 피한다.

강아지는 코가 반질반질하고 촉촉히 젖어 있고 눈이 초롱초롱하고, 항문 주위가 깨끗하고, 사람이 부르면 얼른 달려와 냄새를 맡거나 손을 핥는 놈이 건강하다. 이구아나는 녹색이 선명하고 경계심이 많은 놈을, 청거북은 등판이 딱딱하고 들어올렸을 때 머리와 사지를 허우적거리는 놈을 고른다. 햄스터는 털이 반지르하고 코가 마른 놈을, 물고기는 힘차게 헤엄치며 비늘과 지느러미에 상처가 없는 놈을 고른다.

충무로의 ‘재키 애견’(02-2277-1225) 대표 유필순씨에 따르면, 요즘 꾸준히 팔리는 요크셔테리어·말티스·코커스페니얼은 20만∼30만 원에 살 수 있다. 인기 있는 푸들과 시추는 각각 18만∼28만 원, 25만∼35만 원 선.
장수풍뎅이·누에·나비까지 등장

청계6가 ‘한밭애조원’(02-741-2504) 대표 안길모씨는 애완 동물의 도매 가격을 십자매 5천원, 문조 3만4천원, 붉은카나리아 4만8천원, 사랑앵무새 1만8천원, 구관조 35만(말을 못 배운 것)∼2백만 원(말하는 것), 미니토끼 만∼2만원, 이구아나 1만5천∼30만원 정도 한다고 밝혔다(시기·업소에 따라 조금씩 다름). 청계6가 ‘이정훈수족관’(02-743-1538)에서는 어린이에게 인기 있는 구피·네온테트라·스마트라 같은 열대어 2∼3마리를 5백∼1천5백 원에 팔고 있다.

뭔가 특별한 것과 만나고 싶다면 장수풍뎅이 같은 곤충이나, 거미·슈가글라이더(주머니날다람쥐) 같은 ‘이색 동물’을 고르면 된다. 인터넷 사이트 www.beetles.pe.kr을 운영하는 곤충과친구들(02-2601-9966)은 사슴벌레와 장수풍뎅이를 택배로 판매하고 있다. 값은 장수풍뎅이·사슴벌레 모두 한쌍에 3만원(사육상자 등 포함)이다.

용인에 있는 푸른나무(0335-334-0164)에서는 누에·장구애벌레·나비·올챙이 한살이 세트를 1만4천원∼2만 원에 판매한다. 병아리 부화 세트는 5만2천원. 애완 동물 기르기는 생각보다 잔손이 많이 간다. 때때로 공부를 해야 하고, 돈도 계속 들여야 한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초보자는 손이 많이 가지 않고 기르기 쉬운 것을 선택하라고 말한다. 바쁜 사람에게는 자기 자신의 시간표와 동물 시간표를 함께 짜고, 인터넷의 애완 동물 사이트를 수시로 드나들라고 충고한다.

이지연씨는 동물을 키우면서 많은 것을 배웠다고 털어놓는다. “카멜레온은 한 발을 내딛어도 그냥 내딛는 법이 없다. 예닐곱 번 디딜까 말까 망설이다가 움직인다. 그만큼 동물들은 삶을 진지하고 열렬하게 산다.” 그는 그 과정에서 사람이 우월하다는 생각을 버렸다.

이씨처럼 우리 주변에는 동물을 통해 안온함과 생명의 신비감을 경험하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아직도 귀찮다는 이유로 동물을 기피한다. 하지만 만약 당신이 때로 정신적으로 피곤하거나, 외로움을 느끼거나, 아이들을 좀더 즐겁게 키우고 싶다고 생각했다면 과감히 동물과 만나라. 그때부터 인생이 달라질지도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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