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금연싸이트 운영하는 박정환씨
  • 이문재 기자 (moon@sisapress.com)
  • 승인 2000.06.15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금연, 놀랍도록 새로운 삶의 시작”
박정환씨는 세상 사람을 둘로 구분한다. 담배를 피우는 사람과 피우지 않는 사람. 그는 흡연을 범죄라고 판정한다. 스스로의 삶을 파괴하는 자해일 뿐 아니라, 가족과 이웃의 생명을 해치는 ‘환경 파괴’이다. 1993년 미국 로마린다 보건대학원 유학 시절 금연에 관심을 가진 이래, 그의 삶은 금연운동으로 꽉 차 있다. 금연 철학자·금연 교사·벤처 기업가. 1인3역이다. 1996년 귀국한 직후부터 서울위생병원 ‘5일 금연학교’에서 금연 교육을 책임졌고, 현재는 인터넷 사이트 ‘금연나라’를 운영하고 있다.

지난 5월 말, 인터넷 금연 사이트 ‘금연나라’(www. nosmokingnara.co.kr) 개설 1주년을 맞이한 그의 감회는 남달랐다. 그는 5월31일 세계금연의 날을 맞아 사단법인 한국금연운동협의회(회장 김일순)로부터 감사패를 받았다. 인터넷 사이트 금연나라가 금연에 관심이 있는 네티즌은 물론 청소년들의 흡연 예방에 크게 기여했음을 인정받은 것이다. 박씨는 정작 감사패를 받을 사람들은 금연나라를 만들 때 도움을 준 후원자와 금연나라 이용자들이라며 한 발짝 물러섰다.

감사패 못지 않게 그가 소중하게 여기는 것은 금연나라 홈페이지가 순항 궤도에 올랐다는 것이다. 초기에는 하루 3백~4백 명이 접속했는데, 이제는 하루 평균 1천5백 명이 방문한다. 박씨는 ‘운영자’라는 이름으로 가끔 글을 올리지만, 금연 효과를 온몸으로 느끼는 이용자들이 금연 교사로 나서고 있어 금연나라는 가장 성공적인 사이버 공동체 가운데 하나로 손꼽히고 있다. 이용자들 사이에서는 ‘금연나라에 중독되면 금연에 성공한다’는 말까지 돌고 있다.

1955년 부산에서 태어난 그는 1972년 고등학교에 다닐 때, 강직성 척추염이라는 불치병을 선고받고 한때 학업까지 포기했다. 외국 의학계에서도 치유 불가 판정을 받은 관절염의 일종이었다. 병마와 싸우며 문학 책에 탐닉했는데, 결국 삶의 궁극적 문제와 맞부딪치고 말았다. 철학을 공부하고 싶었다. 불치병은 신앙을 통해 점차 다스려갈 수 있었다. 박씨는 “근본적인 문제는 생활 습관이었다. 영적인 힘에 의지해 나쁜 습관을 하나하나 고치며 건강을 되찾을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대입 검정고시에 합격해 성균관대 철학과에 입학한 그는 철학의 언어와 달리 ‘생명과 능력이 있는 신학의 말씀’에 관심을 기울였다. 그리고 신학에서 다시 건강 교육으로 선회했다. 영혼 구원도 중요하지만 우선 육신의 고통을 덜어주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불치병과 12년간 싸우며 철학과 신학 탐구

박씨는 로마린다 대학원에서 건강교육학을 전공할 때, 각국 학생들이 모인 강의실에서 충격을 받았다. 교수가 세계 각국의 흡연율을 제시했는데, 한국이 세계 1위였다. 당시 미국에서는 흡연자를 찾아보기 힘들었다. 흡연자는 저소득층이거나 열등한 사람으로 비쳤다. 흡연율 1위는 곧 후진국을 뜻하는 것이었다. 금연에 관한 자료를 찾고 연구하면서 <재창조>라는 월간지도 만들었다. 한국어와 영어를 동시에 사용한 이 잡지를 통해 라이프 스타일 변화가 새로운 생을 창조한다는 메시지를 전했다. 금연 성공의 관건도 라이프 스타일 변화에 있었다.

박씨는 올해가 금연운동의 한 분기점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흡연으로 인한 피해가 공식화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9월 흡연으로 인해 암에 걸린 환자가 소송을 제기한 것을 시작으로, 최근에는 농협 매장에 근무하다 사망한 여직원의 유족이 간접 흡연이 사인이라며 행정소송을 냈다. 흡연 피해자들의 제소 움직임에 불이 붙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라고 박씨는 말했다. 박씨는 미국 흡연 피해자들이 담배 제조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걸어 승소하는 사례를 견주며, 한국 정부와 한국담배인삼공사는 각성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씨는 금연이 단지 개인의 건강을 되찾아준다고 말하지 않는다. 담배를 끊으면, 그 순간부터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새로운 삶’이 전개된다고 강조한다. 금연은 담배와의 싸움이 아니라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기 때문이다. 그가 보기에 흡연은 삶에서 가장 중요한 세 가지 관계를 훼손시킨다. 우선 신과의 관계. 신이 내려준 소중한 몸을 흡연이라는 ‘죄악’으로 남용하며 신과의 관계를 깨뜨린다. 둘째, 가족과 동료 등 타인과의 관계도 흡연으로 인하여 깨진다. 셋째, 흡연은 자신과의 관계도 무너뜨린다. 흡연 중독을 끊지 못하는 과정에서 열등감·무력감에 시달리는 것이다.

금연은 새로운 ‘나’ 새로운 삶에 눈뜨는 계기이다. ‘금연하면서 자신감 회복이 삶을 얼마나 변화시키는지를 절감했다’ ‘금연과 운동과 독서를 하며 지난 삶과의 결별을 선언하고 있다. 스스로 나를 변화시켜 보고자 했는데, 그것이 이루어진다는 게 너무나 행복하다’ ‘금연을 하고부터 감성적인 성격이 되살아났다. 금연은 분명 가공할 만한 힘을 내재한 것 같다’ ‘금연을 하고 나서부터 아내가 애인으로 보인다’, 이상은 금연나라에 올라와 있는 금연자들의 생생한 고백 가운데 일부이다.

박씨가 권유하는 금연법은 치밀한 준비 기간이 핵심을 이룬다. 이 기간에, 흡연자들은 자기 자신의 참모습과 대면하게 된다. 먼저, 금연 이유와 목적을 분명하게 밝힌 금연 동기표를 작성해 늘 각오를 되새길 수 있게 한다. 둘째, 식습관을 바꾼다. 맵고 짠 음식과 육류를 피하고 채소와 과일 위주의 식단을 짜고, 술자리와 커피도 피해야 한다. 셋째, 규칙적으로 운동한다. 운동을 병행할 경우 금연 성공률이 두 배로 높아진다.

금연나라 홈페이지는 정착 단계에 들어갔지만 아직 어떤 수익이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박씨는 ‘헬스비전21 금연교육연구원’이라는 기업을 설립하고 금연 교육 연구 및 교육 상담, 사이버 금연 정보 서비스, 금연 교육 자료 개발 및 보급에 전념하고자 한다. 박씨는 “벤처 기업이라고 생각하고 뛰어들었지만, 자본과 기술, 경영 노하우 등 모든 부문에서 어려움이 많다. 뜻있는 분들의 도움이 있었으면 한다”라고 말했다.

박정환씨의 삶을 듣다 보면, 금연운동은 시민운동이고 사회운동이며, 환경운동이다. 아니 담배로 대표되는 ‘찌든 일상’으로부터 ‘원래의 나’를 건져올리는 자기 회복 운동이다. 그런데 이 ‘엄청난 운동’이 추진력을 얻지 못하고 있다. 온몸으로 금연운동에 뛰어든 박씨가 너무 순수하기 때문일까.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