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방울 야구단 ‘헝그리 캠프’ 현장
  • 제주·蘇成玟 기자 ()
  • 승인 1999.02.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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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부 근성으로 따질 때 프로 야구 8개 구단을 통틀어 둘째 가라면 서러울 선수가 최태원(29)이다. 쌍방울 레이더스의 중심 타자인 그는 경희대를 졸업하고 93년 쌍방울에 입단했다. 프로 경력은 짧지만 소속 팀이 갈수록 ‘외인 구단’이 되어 가다 보니 이제 팀에 얼마 남지 않은 토박이 선수가 되었다.

‘신입 단원’보다 ‘경력 단원’을 더 많이 영입하다 보니 최태원은 새 식구 맞이에도 이골이 났다. 그가 보기에 쌍방울에 입단하는 다른 구단 출신 선수들은 크게 두 부류이다.

우선 한때 명성을 날렸거나 1군에서 활동하다가 성적이 부진해 방출된 선수들. 이들은 자신이 쌍방울 선수가 되었다는 사실을 처음에는 인정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상처 난 자존심 때문에 선수 생활을 계속할지를 놓고 회의에 빠지기도 한다. 최태원은 그런 선수에게 ‘자기가 세운 목표를 쌍방울에서 이룰 확률이 더 크다. 나 같으면 쌍방울에서 승부를 걸겠다’고 충고한다.

두산(구 OB)에서 온 투수 박상근(29)도 처음에는 심각하게 갈등했다. 그러자 최태원은 김기태와 함께 열심히 그를 ‘꼬셨다’. 그래도 설득되지 않자 두 사람은 ‘팀에 안 와도 좋으니 김성근 감독 (57)을 한 번 만나 보라’고 권유했다. 그러한 제의마저 물리칠 수 없어 김감독을 만난 박상근은 결국 그들의 ‘꾐’에 넘어갔다.

두 번째 경우는 제대로 기량을 발휘할 기회조차 잡아 보지 못하고 밀려나온 선수들이다. 주로 2군 출신인 이들은 서럽기로 말하면 앞서의 경우보다 결코 덜하지 않다. 그러나 이들은 대개 새로운 환경에 빨리 적응한다.

지난해 말 쌍방울에 입단한 이계성(22). 그는 요즘 하루 12시간씩 밤낮없이 계속되는 강훈련을 가뿐한 마음으로 소화한다. 그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삼성 라이온스에 입단해 지난해 8월까지 줄곧 2군에서 맴돌았다. 1군에 겨우 명함을 내밀 만하니까 구단으로부터 방출 통보가 날아왔다. 쌍방울이 자금난을 못이겨 공수(攻守)의 핵이던 김기태·김현욱을 현금 20억원에 넘길 때, 삼성이 양용모(32)와 그를 ‘덤’으로 얹어 보낸 것이다.

올 겨울 제주도 전지 훈련장에서 아침에 눈을 뜰 때마다 이계성이 어금니를 꽉 물며 되뇌는 말. “오늘 하루도 끝이다.” 줄기차게 이어지는 훈련 일정을 따라가다 보면 지겹다는 생각이 끼어들 틈조차 없이 밤이 이슥해지기 때문에 그의 하루는 ‘끝’을 선언하면서 시작된다.

“시련은 있어도 패배는 없다”…훈련 또 훈련

날개도 없이 추락한 왕년의 스타들이나 무명의 설움을 삭여야 했던 선수들 모두에게 쌍방울은 ‘기회의 땅’이다. 스타가 즐비한 재벌 구단에서 주전 자리를 비집고 들어가기란 하늘의 별 따기만큼이나 힘들다. 그러나 쌍방울은 다르다. 최태원· 조원우 등 공수에서 두드러진 활약을 보여온 일부 선수들을 제외하면 올해 쌍방울의 주전 타선은 거의 ‘무주 공산’이다. 훈련 기간에 한 방울 더 흘리는 땀이 그대로 ‘쌍방울 드림’을 일구는 밑거름이 될 수 있다.

강훈련. 그것이야말로 96년 이후 쌍방울의 전력을 이끌어 온 원동력이다. 95년 10월 취임한 김성근 감독이 바닥권에서 맴돌던 팀 성적을 이듬해 페넌트 레이스 2위까지 단숨에 끌어올린 요인도 혹독한 훈련이었다. 김감독이 취임한 뒤 쌍방울 선수들은 성탄절과 정초에도 운동장을 누벼야 했다. 96년 시즌에는 4∼7월 네 달 동안 단 하루도 못 쉬었다.

쌍방울 레이더스 창단 멤버 중에서 유일하게 남은 현역 선수 김 호(32·주장)는 당시를 이렇게 회상한다. “연습한 게 아까워서 이긴 것 같다. 남들 놀 때 우리는 연습했는데 진다고 생각하니 너무 아까웠다. 다들 가슴에 독기를 품었다.”

김성근 감독이 선수들에게 처음부터 강훈련을 채근한 것은 아니다. 그와 함께 취임한 이종도 수석 코치의 이야기. “처음에 와 보니 선수들은 ‘꼴찌 팀’이라는 패배 의식에 젖어 있었다. 우선 자신감부터 심어 주어야 했다. 선수들에게 ‘너희는 결코 다른 구단 선수들보다 못하지 않다’고 다독였다. 칭찬을 많이 하면서 ‘할 수 있다’는 점을 일깨우려 애썼다.”

쌍방울은 강훈련을 통해 강팀으로 변모해 갔다. 별명도 ‘동네북’에서 ‘공포의 외인 구단’으로 바뀌었다. 팀 플레이보다 개인 성적에 더 관심이 많던 선수들의 이기적 자세도 바뀌었다. 피 나는 훈련을 함께 헤쳐 가며 선수들의 동료애도 살가워졌다.

전에 없던 쌍방울의 파이팅에 홈 관중의 태도도 바뀌었다. 최태원 선수의 말. “96년 이전에는 홈경기에도 관중이 별로 오지 않았다. 실수라도 하면 ‘팀을 해체하라’는 소리와 욕설이 터져나왔다. 홈 관중에게서 ‘너희도 야구 선수냐’는 소리를 들을 때는 정말 비참한 심정이 들었다.”야구에 대한 애정·동료애 어느 때보다 깊어

97년 2월 결성된 천리안쌍방울팬클럽 한동화 회장(33·전주 해성중학교 교사). 그는 쌍방울 경기를 관전하며 응원해 주고 싶어도 할 맛이 안 나 ‘속앓이’하던 기억을 털어놓는다. “95년까지 쌍방울은 너무 뒷심이 부족했다. 경기 초반에 점수를 많이 내도 ‘또 뒤집어지겠지’라는 생각에 불안했다. 96년부터는 정반대였다. 역전 경기가 많아지다 보니 초반에 점수가 뒤져도 관중은 끝까지 자리를 뜨지 않았다. ‘믿음’이 생겨난 것이다.”

올해 쌍방울의 전력은 어느 때보다 ‘누수’가 심하다. 97년 10월 구단의 모기업인 쌍방울개발이 부도를 낸 뒤 법원이 재산 보전 처분을 내리는 바람에 구단 외부로부터 지원이 뚝 끊겼다. 쌍방울은 고육지책으로 주전 선수들을 다른 구단에 현금 트레이드할 수밖에 없었다. 97년 시즌이 끝나자 박경완과 조규제를 각각 9억원씩 받고 현대에, 지난해 말에는 쌍방울의 간판 스타 김기태와 김현욱마저 20억원을 받고 삼성에 팔아 넘겼다.

지난해 쌍방울이 집행한 예산은 60억원. 다른 구단에 비하면 절반에도 못 미치는 액수다. 그런데도 쌍방울은 꼴찌를 하지 않았다. 8월까지는 4위 안팎 성적을 유지하다 6위로 시즌을 마감했다. 올해도 쌍방울 선수들은 결코 꼴찌를 하지는 않으리라고 장담한다.

주장 김 호는 말한다. “경완이가 나갔을 때는 허탈감이 심했다. 투수 한둘만 보강하면 우승할 수도 있는 멤버라고 생각하던 상황이었다. 규제마저 나가자 ‘올림픽처럼 참가에 의의를 두라는 것인가’라는 불만마저 생겼다. 기태와 현욱이가 나갔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결국 현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가 언제는 멤버 좋아서 잘했나 하는 생각이다. 지금은 쌍방울 팬들을 생각하며 다시 한번 잘해 보자는 분위기다.”

가난한 쌍방울 구단의 가장 큰 저력은 헝그리 정신이다. 100%의 전력으로 이기지 못할 상대라면 120%의 전력이라도 발휘하겠다는 자세다. 눈물 젖은 빵을 씹어 본 선수가 태반이다 보니, 여기가 종착역이라는 생각에 어느 때보다 야구에 대한 애정이 깊어졌다.

지난해 8월 현대에서 쌍방울로 이적한 ‘잠수함 투수’ 박정현(30). 89년 태평양 선수 시절 신인왕을 거머쥐면서 그도 한때는 화려한 미래를 기약한 적이 있다. 그러나 192cm의 큰 키로 언더 스로 피칭을 계속하자 무리가 따랐다. 허리 부상에 시달리며 침체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는 태평양 선수 시절에 자신을 지도해 신인왕을 안겨 주었던 김성근 감독을 다시 만나 자신감을 되찾았다. 지난해 하반기 2승을 거둔 데 이어 올해는 10승 이상을 목표로 삼으며 투지를 다진다.

“돈이나 명예로만 따지면 잃은 것도 많겠지만 인생 전체를 놓고 봤을 때는 좋은 경험을 했다고 생각한다. 쌍방울에 와서 자신감을 되찾고 보니 뒤를 돌아볼 여유도 생겼다.”마음만은 부자인 ‘공포의 외인 구단’

95년 신인왕 이동수(26). 삼성 라이온스에서 2군 생활 3년 끝에 일약 스타덤에 올랐던 그도 96년부터 추락의 아픔을 겪었다. 고질적인 수비 불안으로 주전에서 소외되다가 롯데를 거쳐 지난해 6월 쌍방울에 왔다. 그는 제주도 전지 훈련장에서 수비를 집중적으로 보강하며 눈에 띄게 열심히 뛰고 있다. “선수들치고 쌍방울에 오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막상 와 보니 생각이 달라졌다. 구단의 지원은 좀 부족하지만 분위기는 어느 곳보다 좋다.” 그의 말이다.

어느 선수 못지 않게 화려한 야구 인생을 보낸 서른여덟 동갑내기 김광림·김성래의 투혼 역시 어느 때보다 빛난다. 둘 다 선수 생활 30여 년을 바라보며 불혹을 눈앞에 둔 나이지만 나이 어린 후배와 똑같은 자세로 뛰고 있다.

김광림은 현대에서 자유 계약 선수로 방출되어 지난해보다 절반 아래로 깎인 4천3백만원을 받고 올해 다시 쌍방울에 입단했다. 코치 제의도 뿌리치고 선수 생활을 고집하는 역전 노장. “자존심이나 지금까지 쌓아온 명예를 앞세웠으면 선수 생활을 계속하지 못했을 것이다. 야구는 나이가 들어도 여전히 배울 것이 많다. 야구를 처음 배우는 철부지 심정으로 뛰어들었다.”

김성래도 김광림과 마찬가지로 나이라는 한계를 인정하지 않는다. “야구만 할 수 있다면 다른 것은 문제가 안된다. 97년 쌍방울에 온 뒤 2군에 왔다갔다할 때도 있었지만 자존심을 앞세울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오히려 체력을 비축하면서 1군 복귀에 대비했다. 쌍방울에 와서 많은 것을 배웠다. 내가 사랑하는 야구를 실컷 한다는 생각에 행복하다.”

제주도 전지 훈련장에서 만난 감독·코치와 선수 들은 야구에 대한 열정 하나로 굳세게 뭉쳐 있었다. 충분한 지원은 못하지만 구단 직원들 역시 열악한 조건에서 최선을 다하기는 마찬가지이다.

가난은 결코 자랑거리가 될 수 없다. 하지만 가난한 현실에 굴복하지 않을 때, 가난한 동료를 돌볼 줄 아는 마음을 가질 때 그 눈빛에는 ‘내일’이 빛날 수 있다. 쌍방울 레이더스는 ‘마음이 부유한’ 사람들이 모인 팀이다. 쌍방울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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