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에 무슨 탈 날지 미리 아는 법 나왔다
  • 오윤현 기자 (noma@sisapress.com)
  • 승인 2004.01.27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30∼40대의 10% 이상이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새로운 말이 아니다. B형 간염 바이러스에 대한 오래된 경고이다. 그런데도 아직 자신이 B형 간염 바이러스 보균자인지조차 모르는 사람이 많다(전문가들은 전체 인구의 8∼10%가 감염된 것으로 추정한다).

B형 간염 바이러스는 치사율이 높은 간경변과 간암의 주요 원인으로 알려져 있다. 한 자료에 따르면, B형 간염 바이러스 보균자의 50%가 (바이러스가 활동한 지) 20년 내에 간경변에 걸리고, 간암의 70%가 이 바이러스로 인해 발병한다.

이처럼 심각한 바이러스를 의학자들이 그냥 놓아둘 리 없다. 오래 전부터 퇴치 방법을 연구해왔고 성과도 거두었다. 그렇지만 아직 박멸 비법은 찾아내지 못했다. 바이러스가 돌연변이를 통해 매번 되살아나기 때문이다. 의학자들이 차선으로 연구해낸 것이 바로 바이러스의 활동을 억제하는 의약품이다. 최근 각광받는 간염 치료제는 라미부딘이다.

라미부딘은 바이러스가 돌연변이를 일으키지 못하도록 작용한다. 그동안 이같은 라미부딘의 효능 덕에 ‘삶의 벼랑’으로 향하던 발걸음을 멈춘 사람이 적지 않았다. 문제는 시간이 지나면서 B형 간염 바이러스가 라미부딘에까지 내성을 갖게 되었다는 점이다. 의학자들은 라미부딘을 1년 투약하면 10∼15%의 내성 돌연변이가 발생하고, 2년∼3년 투약하면 20∼55%의 내성 바이러스가 출현한다고 말한다.

그보다 더 큰 문제는 의사들이 내성 바이러스 발생 유무를 쉽게 확인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내성 바이러스가 생긴 다음에는 아무리 약을 써도 소용이 없거나 오히려 예후가 더 나빠지기 때문에, 내성 바이러스 발생 유무는, 미리 알면 알수록 건강에 이롭다. 그렇다면 내성 바이러스의 존재를 확인할 길은 없는 것일까.

최근 바이오 벤처 기업 진매트릭스(대표 유왕돈)가 그 방법을 찾아냈다. 주역은 ‘말디토프 질량 분석기’이다. 이 시스템에 피 한 방울을 넣으면 바이러스의 내성 돌연변이 여부를 확인하고, 자신이 간경변에 걸릴지 간암에 걸릴지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다. 원리는 복잡하다. 우선 피를 특수 처리된 금속판 위에 올려놓고 DNA를 추출한다. 그리고 DNA에 매트릭스라는 물질을 섞고 레이저를 쏜다. 이렇게 하면 DNA가 증발하면서 움직이게 된다. 이때 DNA는 각자의 질량에 따라 이동하는 속도가 다르다.
해답은 바로 여기에 있다. 증발 속도가 다르다는 것은 곧 DNA의 유전자형이 다르다는 것을 뜻한다. 진매트릭스 연구팀장 홍선표 박사에 따르면, 이같은 방법으로 B형 간염 바이러스를 분류하면 a∼f형으로 세분된다. 그 가운데 우리 나라에 제일 많은 유형은 c형이다. 그는 “보균자의 95%가 c형이다. c형은 예후도 안 좋고, 간경변이나 간암으로 갈 확률이 높은 아주 안 좋은 유형이다”라고 말한다.

말디토프 질량분석기가 절망만 안겨주는 것은 아니다. 간염이 간경변으로 갈지 간암으로 갈지는 바이러스의 유전자형과 사람의 유전자형(SNP)에 따라 갈리는데, 말디토프 질량분석기는 이를 예측해 미리 대비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또 불필요한 투약을 줄여 경제적 낭비를 막고, 환자 개개인에게 적합한 대체 약제 처방을 도와 치료율을 올리는 데 도움도 준다. 분당차병원 황성규 교수는 “라미부딘의 내성 돌연변이를 포함하여 바이러스의 유전자를 정확히 알면 그만큼 간염 치료에 유리하다”라고 말한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