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회복 속도가 예상보다 빠른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경기가 좋아지면 구조 개혁이 안된다고 보는 시각에는 견해가 좀 다릅니다. 어차피 재벌들은 경기에 상관없이 구조 조정을 해야 합니다. ”
경제팀 수장이라는 무게가 얹힌 탓이겠지만, 강봉균 재정경제부장관의 분명하고 직설적인 혀는 재계를 한층 떨게 만든다. 취임하자마자 재벌 개혁에 최대 역점을 두겠다고 밝혀 재계를 바짝긴장시켰던 강장관은 대우그룹 문제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 그는 자신만만해 보였다. 대우 처리에 성공하리라는 확신을 갖고 있는 듯했다. 7월30일 과천 청사 집무실에서 그를 만나 대우그룹 처리 방안과 김대중 정부의 새로운 구호인 ‘생산적 복지’ 등 경제 현안에 대해 들어 보았다.대우그룹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한 시점이 지난해 8월인 것으로 알고 있는데, 왜 좀더 일찍 처리하지 못했습니까? 파장을 줄일 수 있었을 텐데요.
대우의 부채가 많다는 것은 알고 있었습니다. 올 4월 김우중 회장이 스스로 과감히 (구조 조정을) 하겠다고 말했어요. 그래서 5월에 재무구조개선약정을 수정하게 된 것이죠. 구조 조정 계획이 있었지만 다른 네 재벌보다 1년 늦게 시작해 올해에 해야 할 것이 많았습니다. 또 양이 많으니까 눈에 띄는 효과를 내는 데 시간이 걸렸죠. 이것이 최근 대우가 제대로 하겠느냐, 약속을 지키겠느냐 하는 시장의 불신으로 번져 (부채) 만기 연장이 안되는 유동성 위기를 낳았습니다. 대우는 7월19일 이런 불신을 해소하기 위해 자기네가 갖고 있는 모든 재산(10조원)을 담보로 내놓게 된 것입니다. 채권단의 리스크(빚을 떼일 위험)를 줄여 준 것이죠. 만기가 연장되면 대우 문제가 그냥 이연되는 것이냐, 그렇지 않습니다. 스스로 처분하겠지만, 계획에 미치지 못할 경우 채권단이 처분하도록 위임장을 써 주었습니다. 이제 더 이상 의문을 가질 필요가 없습니다. 대우는 부채 규모를 줄여갈 것이고, 이 속도가 빠르면 빠를수록 시장의 신뢰를 확실히 얻게 될 것입니다.
대우를 처리하는 정부의 궁극적 입장은 ‘안락사’입니까, ‘살리기’입니까?
거기에 대해 무식한 질문들을 많이 하는데, 대우그룹을 정리한다는 뜻은 대주주의 오너십(소유권)을 바꾸는 것입니다. 대우그룹 안에는 자동차·조선·전자 등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판다고 해서 이것이 없어지는 것입니까? 그런데 왜 안락사라고 합니까. 김회장 재력이 모자라서 부채를 줄이고 증자할 수 없어 그런 것이지 대우그룹 계열사 제품 자체에 시장성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재무 구조만 바뀌면 앞으로 문제가 없는 것입니다. 그룹이 폭삭 망하는 것과 오너가 바뀌는 것을 혼동하지 말아야 합니다. 오너십이란 얼마든지 바뀔 수 있는 것입니다. 외국인에게 대주주 지분을 넘긴 뒤 잘되는 곳이 얼마나 많아요.
자동차산업을 양사 체제로 가져가겠다는 것이 정부의 변함없는 생각입니까?
정부의 생각이고 자시고 할 것도 없어요. 국제통화기금 체제 이전에 자동차 회사가 다섯 개 있었어요. 기아자동차는 부도가 났고 쌍용자동차는 독자 생존이 불가능해 각각 현대와 대우에 넘어갔습니다. 삼성자동차가 남았는데, 부채가 너무 많고 외국에 수출할 수 없는 등 독자 생존이 안된다고 해서 내놓게 된 것입니다. 현대와 대우는 어쨌든 자동차를 만들고 수출하고 있어 살아 남을 수 있는 것이죠. 문제가 있다면 뭐냐. 대우자동차가 그룹 전체 재무 구조를 개선하지 않아도 살아 남을 수 있느냐지요. 대우와 채권단의 판단은 그룹 전체를 구조 조정해 자동차에 여력을 집중시켜 생존 가능하도록 재무 구조를 개선시키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살아 남는 것이죠.
삼성자동차는 대우에 넘어가겠군요?
그거야 모르죠. 대우가 인수할지 현대가 좋을지. 기아처럼 삼성도 채권단이 원매자를 찾을 것입니다. 다만 정부는 옆에서 보면서 자동차를 해외에 팔 수 있는 세계적인 마케팅 네트워크를 가진 회사가 맡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거죠. 수출할 수 있어야 생존이 가능하니까요. 또 부산 지역 경제에 (삼성차가) 너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에 자동차 생산 기지로 남아서 발전했으면 좋겠다는 것이 정부의 희망입니다.
최근 빅딜이 실패했다는 정치권 주장에 조목조목 반박하셨더군요.
빅딜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대개 정부가 강제적으로 추진한 정책이므로 시장 원리에 배치된다, 과다 부채·과잉 설비·과잉 인력을 줄이는 데 효과가 없다, 빅딜이 실패했기 때문에 결국 재벌 개혁은 아무런 진전이 없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잘못 이해한 것입니다. 빅딜은 정부가 강제로 한 것이 아니라 재계가 먼저 필요성을 제기했고 업체 선정도 스스로 했습니다. 저는 지난해부터 빅딜이 재벌 구조 조정에서 30% 정도의 중요성밖에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 빅딜 자체는 실패했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8개 업종(전자 제외)에서 어떤 형태로든 과잉·중복 투자를 정리해 가고 있습니다.
경기 회복 속도에 관한 논쟁이 거셉니다. 구조 조정이 덜 되어 성장 속도가 빠르다는 주장이 많습니다.
회복 속도가 예상보다 빠른 것은 사실입니다. 올 2/4분기 성장률이 9%를 넘어갈 수도 있어요. 하지만 지난해 마이너스 성장을 한 것을 고려하면 1∼2% 높아졌다고 보아야 합니다. 이런 기술적 반등 요인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물론 미리미리 대비하자거나 구조 조정이 덜 되어 회복 속도가 빠르다는 주장이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경기가 좋아지면 구조 개혁이 안된다고 보는 시각에는 견해가 좀 다릅니다. 어차피 5대 재벌이나 6대 이하 재벌은 경기가 좋고 나쁘고 상관없이 구조 조정을 해야 합니다. 문제는 중소기업이죠. 경기가 좋아지면 살아 남을 수 있는 기업을 살리게 됩니다. 지난해에는 괜찮은 중소기업마저 죽지 않았습니까.
앞으로 경제 운용을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경기 관련 대책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통화 정책이죠. 통화를 얼마나 공급하느냐에 따라 금리 수준이 달라지므로 금리 정책이기도 합니다. 이것은 정치적 중립성이 높은 한국은행에 권한을 맡겼습니다. (행정부가 한다면) 경기가 좋은 게 선거에 좋으니까 고비 풀린 말처럼 갈 수도 있는데 제도적으로 방지되어 있는 것이죠. 그러니 안심해도 됩니다. 연초에 밝혔듯이 한국은행 총재가 물가 약속을 지키는 범위에서 통화량과 금리 수준을 결정할 것입니다. 또 하나는 정부 책임인 재정 정책인데, 재정을 통한 경기 부양 기능은 자제할 겁니다. 이미 내년 예산을 그런 방향으로 짜고 있습니다. 적자 규모도 줄이고 재정 규모 팽창도 억제할 것입니다.
대통령이 광복절에 생산적 복지와 중산층 대책을 발표한다고 하던데요.
누구를 위한 구조 개혁이냐. 궁극적으로 국민들이 잘살게 하기 위해 구조 개혁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구조 조정 과정에서 중산층과 서민들이 고통을 더 많이 겪었습니다. 경제가 회복되어 여유가 생긴 만큼은 그분들의 고통을 줄이겠다는 것이 (6월에 나온) 단기 대책입니다. 그리고 남은 3년 동안의 경제를 국민 대다수인 중산층과 서민을 위해 어떻게 제도적으로 노력하느냐 하는 것이 생산적 복지라는 이름으로 나올 것입니다.
가뜩이나 재정 적자가 큰데, 재정 견실화에 역행하지 않겠습니까?
생산적 복지는 재정 적자를 많이 발생시키지 않는 복지를 지향합니다. 구조 조정에 따른 재정 적자는 중기 재정 계획을 세워서 줄이고 있고, 올해는 오히려 계획보다 앞당기고 있습니다.
경제팀 조율 문제가 도마에 오르고 있습니다. 가령 생명보험사 상장 문제가 불거졌을 때 강장관과 이헌재 위원장의 발언 내용은 달랐습니다.
한 사람(이위원장)은 상장해서 부채 문제를 푸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고, 한 사람은 상장하려니까 넘어야 할 고비가 있다고 얘기한 것 뿐이에요. 한 사람은 결론을, 다른 사람은 과정을 말한 것이어서 보완성을 갖는다고 생각할 수 있지 않아요? 근본적으로 다른 것은 아니에요. 또, 사람이 다른데 어떻게 똑같이 얘기합니까. 한 입이 아니고 두 개 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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