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민련 김종필 총재 “고정표 많다고 후보 되는 것 아니다”
  • 徐明淑 정치부 차장대우 ()
  • 승인 1997.01.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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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데타의 주역, 풍운의 혁명아, 경제 부흥의 견인차, 권력형 부패와 정보 정치의 원조.

긴 정치 이력만큼 김종필 자민련 총재를 평가하는 시각도 엇갈린다. 우리 사회에는 그의 오랜 정치 경험을 주된 청산 대상으로 보는 시각과, 높이 사야 할 정치 경륜으로 보는 시각이 공존한다.

정치 10단으로 불리는 김총재의 핵심 화두는 내각제와 야권 후보 단일화. 그는 이 두 화두를 축으로 삼으면서, 독자 출마에서부터 여권과의 내각제 대타협에 이르기까지 온갖 변화무쌍한 활로를 모색하게 될 것이다. 김총재를 만나 그가 풀어나갈 97년 정치 해법의 한자락을 들추어 보았다.

자민련 의원 연쇄 탈당과 안기부법·노동법 개정안 변칙 통과 등 지난해 말 벌어진 일련의 정치 상황 탓일까. 그는 여권과의 대타협보다는 내각제 개헌을 전제로 한 야권 후보 단일화에 무게를 두었다. 그러나 후보 단일화 방법론에 대해서는 ‘사심을 버려야 하며’‘고정표가 더 많은 후보가 대통령 후보가 되어야 한다는 주장은 곤란하다’라고 말해 여운을 남겼다.


당사 앞에 ‘ 김영삼 쿠데타 분쇄하자’라는 현수막이 걸려 있더군요. 왕년에 쿠데타의 주역이었던 김총재가 문민 정부의 쿠데타를 규탄하는 지금 상황이 참으로 묘한 느낌을 갖게 만듭니다.

쿠데타든 뭐든, 누가 뭐래도 나는 혁명을 한 사람이에요. 5·16 군사 혁명이 역사에서 정당하게 평가 받는 날이 옵니다. 하지만 이제는 달라요. 물리적으로 뭔가 해보겠다는 생각은 하지 말아야 하고, 할 수도 없어요. 물리적인 힘을 동원해서 변화를 추구해야 할 만큼 급하거나 빈곤한 상황이 아니잖아요? 그런데도 지금 정권은 과거 정권보다 한술 더 뜨고 있어요.

“자기들이 민주주의를 다 했다고 하는 사람들이 민주주의의 ABC조차 깡그리 무시했습니다. 권력의 오기에요, 오기.”

의회주의자를 자처하는 김대통령이 그런 무리수를 두게 된 배경이 어디에 있다고 보십니까?

왜 그랬는지는 나도 몰라요. 민주 투사를 자처하고 자기들이 민주주의를 다 했다고 하는 사람들이 민주주의 원론, 민주주의의 A BC조차 깡그리 무시했습니다. 권력의 오기에요, 오기!(김총재는 앞에 놓인 장방형 탁자를 주먹으로 내리칠 정도로 흥분했다) 오기말고는, 그 어떤 이유도 해석도 있을 수가 없어요.

지금은 가장 강력한 문민 독재 비판자이지만 김총재야말로 문민 정부가 절대 권력으로 흐르는 데 상당히 기여했다는 관측도 있습니다.

어떤 점에서요? 한번 말해 봐요.

일례로 김총재는 민자당 대표 시절에 ‘대통령의 윤허를 받고’‘홍곡의 대지를 연작이 어찌 헤아리리요’등등 극존칭의 수사학을 동원하며 김대통령의 리더십을 뒷받침하지 않았습니까.

허허, 이것 봐요. 그게 북돋아 주는 게 아닙니다. 거기에는 여러 의미가 포함돼 있을 수 있어요. 어째서 그렇게 단세포적으로 파악합니까. 나는 배우기를, 대통령은 현대적인 명칭이 대통령이지 한 나라의 임금과 같다고 배웠어요. 그런 차원에서 가능하면 가장 존경스러운 어휘를 하나 둘 인용했던 것이요. 아니, 그랬다고 해서 국회를 파괴하고, 야당을 파괴하고, 지자제를 파괴합니까. 자꾸 현 정권이 야당을 파괴했다고 주장하시는데, 김총재의 강력한 정치 동지였던 최각규 지사가 당을 떠난 배경에는 외압 외에 김총재의 관리 능력 문제도 있었던 것 아닙니까?

그걸 부정하진 않아요. 하지만 나는 그 사람 능력을 최대한 살리려고 노력했어요. 당 부총재까지 시켜 주었고, 선거 때에도 없는 당 살림이지만 나름대로 뒷받침해 줬어요. 선거 끝난 뒤에도 당이 일일이 이래라 저래라 간섭하지 않고 독자 역량을 충분히 발휘하도록 했습니다. 불만 느낄 이유가 없어요. 충북 지사(주병덕 지사)가 탈당했을 때만 해도 원래 여권과 가까웠던 사람이니 그러려니 이해했어요. 그런데 최지사 경우는 도무지 이해가 안 가요. 한편으론 권력이 얼마나 속을 썩였으면 그랬을까, 일말의 동정도 느껴요. (주먹을 불끈 쥐며) 그러나 참아내야지. 그런 압력 속에서도 소신껏 도정을 봤어야지.

권력이 구체적으로 어떤 수단을 동원했다는 것인가요?

4월 총선 직후부터 시작된 일이에요. 국민회의의 호남 쪽과 이쪽 충남에는 이도 안 들어가니까, 그 사람들이 충북·강원 쪽으로 집중 들어왔어요. 지금도 계속 허튼짓을 하고 있어요. 두고 봐요. 앞으로도 이런 일이 계속해서 벌어질 테니까(김총재는 이 대목에서 취재 기자에게 노트를 달라고 하더니 사마천의 <史記>에 나오는 ‘是耶非耶’라는 글을 썼다). 이 사회에 도대체 정의가 어디 있느냐 한탄하는 말이요. 사마천이 살았더라면 요즘 시국을 두고 이런 소리를 했을 거요.

화제를 돌려 보지요. 97년 대선 정국에서 야권의 핵심 화두는 내각제와 대통령 후보 단일화가 될 것 같은데요. 내각제에 대한 소신은 여전히 변함 없습니까?

왜 이런 세상, 사마천이 말한 ‘옳고 그름을 판단하지 못할’ 정도의 세상이 됐느냐. 그건 입법 사법 행정 삼권을 완전히 틀어쥐고 휘두를 정도로 한계에 이르른 제도, 대통령중심제 때문입니다. 이런 대통령중심제를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문자 그대로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의회민주주의를 할 수 있는 제도로 바꾸어야 합니다. 권력이 제대로 분산되어 각기 조화로운 영위가 가능한 의원내각제로 가야 이 나라가 살아요.

"김대통령이 생각을 고쳐 먹고 내각제가 가장 바람직한 제도다, 함께 고쳐 나가자 하면 쌍수 들고 환영할 만한 일이지요."

내각제를 한다면 어떤 세력이나 정파와도 손을 잡겠다고 밝힌 적이 있지요?

그랬어요. 단 공산 세력, 급진 세력은 제외한다고 했어요.

이 말은 날치기 정국 이후의 김영삼 대통령에게도 여전히 유효합니까?

그렇게 금방 딴 데다 갖다 붙이면 어떡해. 그쪽이야 안하겠다고 하는 사람들인데. 몇번이나 안하겠다고 공언했잖아요. 각서에 서명까지 했다가 대통령이 하고 싶어서 휴지 조각으로 만들었어요. 물론 <역경>에 ‘군자표변(君子豹變)’이란 말이 있긴 합니다. 내각제 개헌은 절대로 안한다는 분이 생각을 고쳐 먹고 내각제가 가장 바람직한 제도다, 함께 고쳐 나가자 하면 쌍수 들고 환영할 만한 일이지요.

김총재는 내각제로 성립된 장면 정권을 무너뜨린 주역이었고, 80년까지만 해도 대통령중심제를 지지하는 발언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80년대 후반부터 돌연 열렬한 내각제론자로 선회했는데, 논리를 전환한 배경이 궁금합니다.

80년대까지는 일렀어요. 내각제를 할 만한 사회 여건이 채 성숙되지 않았어요. 내각제를 하려면 첫째가 제도를 소화해낼 만한 경제력, 적어도 국민소득 만달러는 돼야 합니다. 둘째는 민도에요. 이제 우리 국민도 겪을 것 다 겪고 바른 판단을 할 수 있는 정도로 자정 능력을 갖춘 국민이 됐어요. 셋째로 대통령중심제란 제도 자체가 극한 상황에 와서 자기 한계를 노정하고 있잖아요. 이젠 우리나라도 모든 면에서 내각제를 할 만한 여건을 구비했다고 봐요. 혹 1백80만표에 머무른 87년 대선 결과에 충격 받아서 1등이 아니더라도 권력을 공유할 수 있는 내각제로 돌아선 것 아닙니까?

87년에는 대통령이 되려고 한 게 아니라, 정계 복귀 수순상 출마한 거요. 그런 과정이 필요했어요. 나는 신군부가 정권을 잡은 뒤 10년 내내 그들에 의해 일방적으로 조작되고 욕을 먹었어요. 자기네들의 정당성을 과시하기 위해 나를 해코지한 거요. 그런데도 그만한 표를 던져 준 분들이 있었다는 건 고마운 일입니다. 대통령을 하고 싶었더라면 1979년에 체육관 대통령이 될 수도 있었어요. 그래도 난 그거 안했잖아요? 난 지난 세월 역사의 조연으로 정성을 쏟아온 사람입니다. 그 이상은 바라지도 않았어요.

내각제에 대한 김총재의 외곬 사랑이 아무리 깊다고 해도, 대통령 선거 이전 개헌은 사실상 거의 불가능한 상황입니다. 그렇다면 자민련은 정당 차원에서 대통령 선거에 대비해야 할 텐데요.

물론 현행 대통령선거법대로 선거가 치러질 가능성이 높아요. 그러나 우리 당이 집권한다 해도 15대 국회 임기가 끝나기 전에 반드시 내각제 개헌을 해낼 생각이에요. 내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내각제를 위해서는 2년반, 임기의 절반만 하겠다는 거에요. 누가 하더라도 (개헌을) 안할 도리가 없어요.

이른바 DJP 찰떡 공조가 정가의 화젯거리입니다. 김총재는 김대중 총재의 가장 강력한 비판자에서 가장 강력한 우군이자 정치 동맹군으로 바뀌었는데요. 김총재의 판단이 달라진 겁니까, 김대중 총재가 달라진 겁니까?

앞서 ‘군자표변’이라는 말을 했지만, DJ가 많이 변했어요. DJ는 이 나라가 어떻게 되어 가야 한다는 것을 몸소 보여 주기 시작했어요. 보수 노선에 확 접근해 왔어요. 이처럼 우리나라의 현실을 신중하게 판단하고 내일에 임하겠다는 자세를 보이고 있는데, 어제 생각에 기준을 두고 비난만 합니까? 협력할 것은 협력해야지요.

김총재가 보기에는 김대중 총재가 확실히 달라졌다는 말인가요?

확실히라는 이야기는 안했어요. 많이, 현실을 수용하는 자세로 변했다는 거지요. 변한 만큼 공조할 수 있는 건 공조해야지요. 하지만 공조가 곧 일체가 된다는 건 아닙니다. 일종의 정치적 연립이에요. 흑백 논리에 젖은 사람들, 단세포적인 발상을 가진 사람들은 이런 걸 이해하지 못해요. 민주주의는 다양한 의견, 다양한 발상이 공존하는 겁니다. 내각제는 이념과 노선 등이 달라도 정치적으로 연립할 수 있는 메리트가 있는 제도에요. 최근 두 김총재를 보면 97년 대선에서만큼은 반드시 후보 단일화를 이뤄내야 한다, 그래야만 정권 교체를 할 수 있다는 데 완전히 공감대를 이룬 것 같습니다.

그래서 내가 그 문제를 제기해 놨잖아요. 저 사람들은 여러 가지로 한계에 이른 사람들이다, 그러니 무슨 짓을 할는지 모른다. 정권을 교체해야 하는데 교체하려면 야권이 단일 후보를 내야 한다, 단일 후보를 내면 이길 수 있다. 다만 거기까지 가는 데에는 과정이 남아 있다, 충분히 생각해 보자고 미리 이야기를 던져 놓은 겁니다. 이제부터라도 사(私)를 버리고 지극한 정성을 쏟으면 결코 불가능한 일이 아니라고 봐요. 단일 후보는 언제 성사돼도 괜찮아요. 선거운동 기간에라도 할 수 있어요.

"YS가 당내 경선과 대선을 조용히 지켜만 보면, 국민으로부터 적어도 뭘 하려고 애쓴 대통령이라는 평가는 받을 것이다."

정가 일각에서는 후보 단일화가 성사돼도 그 효과가 그리 크지 않으리라는 예측도 나옵니다. 두 총재의 지역 기반과 지지층이 너무 달라서, 어느 한쪽으로 단일화할 경우 상대방 지지표가 상당 부분 떨어져 나간다는 것이지요. 두 당 내부의 반대 목소리도 만만치 않고요.

그런 효과를 판단하기에는 시기가 너무 일러요. 아직은 모든 것이 그냥 출발선 위에 있습니다. 선거전에 본격 돌입하지 않았어요. 표는 그때 정황에 따라갑니다. 아주 극적인 변화가 올 수 있어요. 그래서 정권 교체를 할 수 있도록 이제부터라도 사심을 버리고 정성을 쏟아 하나로 하자는 거에요. 그러다 보면 이 사람이라야 정권 교체가 가능하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후보 단일화가 문제일 뿐 누구냐는 문제가 안된다, 즉 김총재보다 고정표가 월등히 많은 김대중 총재가 단일 후보가 되리라고 내다보는 이들이 많습니다.

그렇게 일방적으로 단정지어서는 곤란해요. 상황은 자꾸 변해 갑니다. 그동안 언론에서는 내각제를 사실 거의 다루지 않았어요. 그런데도 대통령제가 절대 권력으로 치닫고 독선으로 흐르는 걸 지켜보면서, 국민들 사이에서는 자연스럽게 내각제에 대한 지지도가 반반 정도로 올라와 있어요. 우리 국민은 그토록 현명합니다. 그렇다면 후보 단일화 분위기도 확 달라질 거에요. 앞으로 우리 당은 전국을 순회하면서 내각제에 대한 토론회도 열고 국민을 직접 설득할 계획입니다. 그 과정에서 국민의 선호가 확실하게 드러날 겁니다.


김총재는 인터뷰가 끝나갈 무렵, 김대통령에게 꼭 할 말이 있다면서 상당 시간을 할애했다. 그 요지는“부디 남은 임기 동안 무슨 새로운 일을 벌이려고 하지 말고 벌여 놓은 일을 조용히 마무리하는 데 힘써 달라. 그러면 국민으로부터 최소한 뭘 하려고 애쓴 대통령이라는 평가는 받을 것이다.” “올해 대선에서 대통령이라는 권한을 이용하려 하지 말고, 당내 경선과 대통령 선거를 조용히 지켜봐 달라. 국정을 평화롭게 매듭짓고 전직 대통령으로서 나라의 앞날을 지켜보는 최초의 대통령이 되기를 바란다.” 그가 매우 간곡한 어조로 이 말을 했음을 덧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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