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자 조작 ‘판도라 상자’ 열렸다
  • 이철현 기자 (leon@sisapress.com)
  • 승인 1997.03.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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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제 양’ 탄생 계기로 본 형질 전환 기술의 현재와 미래/ 복제술 이용 잘하면 식량난·불치병 해결에 도움
양과 원숭이를 복제하는 기술이 논란이 되고 있다. 이 기사는, 복제 기법이나 그것이 불러일으킬 논란보다 그동안 긍정적으로 기능해온 형질 전환에 대해 더 많이 다루었다. 형질 전환이란 한 개체가 지닌 특정 유전자를 다른 개체에 이식하거나, 유전자를 삭제해 그 개체의 형질을 바꿈으로써 인간에게 유용한 형질을 지닌 새로운 개체를 만드는 일을 말한다. 만일 복제 기법이 형질을 바꾼 동물을 싸고 빠르게 대량 생산하는 데만 이용된다면, 인류가 당면한 많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위대한 성과가 될 것이다.<편집자>

‘사상 첫 복제 젖먹이 동물 탄생.’ 태어난 지 몇 주 안되는 스코틀랜드산 양 1마리가 전세계 종교·생물·윤리 단체를 벌집 쑤신 듯 만들었다. 스코틀랜드 에든버러에서 남쪽으로 11㎞ 떨어진 작은 마을 로슬린에 사는 생물학자 이언 윌무트 씨가, 20세기에는 불가능하다고 여겨졌던 젖먹이 동물 복제를 핵 치환 기법으로 성공시킨 것이다. 이론으로는 이 기술을 이용하면 인간도 복제할 수 있다.

지난 2월23일 영국 과학 전문지 <네이처>가 복제 양 ‘돌리’ 사진을 발표하자, 전세계 지식인들은 인간을 복제할 가능성과 이로 인해 일어날 수 있는 윤리 문제를 제기하고 나섰다. 로마 교황청을 비롯한 종교 단체들은 복제 기술을 ‘신에 대한 도전’으로 간주하고 규탄했다.

종교·윤리·생물 단체 강력 반발

양을 복제하는 기술이 인간 복제에 쓰일 것을 우려해 미국의 수도 워싱턴에서 전세계 3백여 종교·윤리 기구 연합체를 이끌고 있는 제레미 리프킨 씨는, 인간 복제를 강간·미성년자 학대·살인과 똑같이 처벌하라고 요구했다. 미국에 있는 세계 교회연합 마틴 로브라 집행사무관은, 윤리 문제가 해결되기 전까지 아예 복제 기술 연구와 응용을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종교계와 윤리 단체가 제기하는 인간 복제에 관한 논란은 유전공학의 성과가 인간에게 베풀 혜택을 간과하고 있다. ‘사회적인 책임을 위한 영국 교회 이사회’ 회원인 메리셀러 씨는 이 문제의 핵심을 제대로 지적했다. “히틀러 같은 기괴한 인물을 복제할 수도 있다는 사고가 그와 같은 연구(복제 기술)를 방해해서는 안된다. 다른 과학 분야의 성과처럼 복제 기술도 바르게 이용하면 된다. 물론 인간 복제는 바람직하지 않다. 그러나 양 복제는 유용하다.”양 복제 기술은 80년대부터 활성화한 ‘형질 전환 동물’ 연구와 맞물려 있다. 복제와 형질 전환은 그 영역과 방법이 상당히 다르다. 형질 전환이 DNA 안에 있는 특정 유전자를 조작해 동물의 일부 형질을 바꾸는 데 반해, 복제는 유전자 전체를 아예 다른 개체의 유전자로 바꾸는 일이다. 다시 말해 형질 전환이란 다른 개체의 장점을 따다 인간에게 유용한 개체를 만드는 일이고, 복제는 한 개체를 복사기에 넣고 찍어내는 것과 같다.

복제 기술은 형질 전환 연구에 도움을 주고, 연구 성과를 산업화하는 데 크게 기여한다. 복제 기술은 지금까지 비용과 기간이 많이 걸렸던 형질 전환을 돈을 덜 들이고 빠르게 할 수 있다. 어렵게 형질을 바꾼 동물을 복제 기술을 써서 대량 생산해 산업화할 길을 열었다는 말이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생명공학연구소 이경광 박사팀이 지난해 인체에 유용한 단백질을 대량 생산하는 젖소를 개발하는 데 든 연구비는 27억6천만원. 기간도 4년이나 걸렸다. 또 연구 대상 젖소 35마리 가운데 오직 1마리만이 연구팀이 원하는 유전자를 가지고 태어났다. 이 젖소를 교배해 자손을 생산해야 하는데, 젖소가 2년에 송아지 1마리를 낳는 데다 태어나는 송아지 가운데 절반만(대략 4년에 1마리)이 인체 활성 물질을 분비할 수 있는 유전자를 가지고 태어난다. 이 젖소가 최소 백 마리 이상이 되려면 대략 수십 년이 걸린다. 하지만 복제 기술을 이용하면 2~3년 안에 생명공학연구소팀이 젖소를 수백 마리 생산할 수 있게 된다. 문제가 전혀 없지는 않다. 같은 유전자를 지닌 동물은 역시 같은 질환에 약하다. 만일 이 동물 유전자가 방어하기 어려운 바이러스가 체내에 침투하면 하루아침에 전체 동물이 몰살하는 일이 일어날 수도 있다.

형질 전환 기술은 인간이 직면한 많은 문제를 해결할 대안으로 손꼽힌다. 빨리 자라고 품질 좋은 축산물을 많이 생산하는 가축을 개발해, 식량 부족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또 인체가 절대 필요로 하는 인체 생리 활성 물질을 분비하거나, 인간에게 이식할 수 있는 장기를 가진 동물을 대량 생산하면 갖가지 유전 질환이나 불치병을 치료하는 약품을 대량 생산할 수 있다.

외부에서 재조합한 유전자를 특정 개체에 옮겨 인간에게 필요한 특정 형질을 발현하게 하는 형질 전환은 고도의 기술이 요구된다. 형질 전환 기법은 현재까지 네 가지가 보고되어 있다. 가장 널리 이용되는 방법은 전핵(前核·생식핵) 미세 주입법(pronuclear injection)이다. 수정란을 고정시킨 후, 특정 형질을 발현하게 하는 재조합 유전자가 녹아 있는 용액을 직경 1미크론 이하 주입용 미세관을 써서 수정란이 가진 핵에 주입하는 방법이다. 수정란에 들어간 유전자는 복제 과정을 거쳐 염색체에 삽입되고, 일단 변형된 유전자는 대대로 유전된다. 치료법 연구 위해 당뇨병·간암 걸린 쥐도 생산

또 하나는 원하는 유전자를 수정란 핵까지 옮기는 데 바이러스를 이용하는 방법이다. 특정 유전자를 리트로바이러스에 실어 수정란과 같은 시험관에 두면 리트로바이러스가 수정란을 감염시키면서 유전자를 수정란 핵 속에 옮긴다. 하지만 이 방법은 실패할 확률이 높다. 그밖에 수정란과 배간(胚幹) 세포(embryonic stem cell)를 이용하는 방법이 있는데 실용성이 의문시되거나 가축에 응용하기에는 연구가 덜 진척되어 있다.

양 복제 결과를 처음 발표한 <네이처>는 이미 82년 유전자 조작을 통해 만들어낸 거대 생쥐를 소개해 형질 전환 연구를 전세계에 파급시켰다. 그 이후 빨리 크고 고기 맛이 좋은 돼지와 더 부드러운 털을 지닌 양 같은 우량 가축을 개발하는 연구가 주로 진행되었다. 90년대 들어서 암 유전자를 지닌 형질 전환 생쥐를 개발하여 특허를 획득하면서, 인체와 같은 질환을 지녀 의학 실험 대상으로 쓸 동물을 개발하는 연구가 활발해졌다.

동물 젖을 통해 항균·항바이러스 작용과 면역 기능을 강화시키는 락토페린이나, 염증 방지 기능이 있는 안티트립신 같은 인체 활성 물질을 대량으로 생산하는 형질 전환 방법도 괄목할 성과를 거두고 있다. 이미 동물이 분비한 인체 활성 물질 15종은 상품으로 나오고 있다.

국내 유전공학 연구기관도 괄목할 성과를 내고 있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 생명공학연구소는 93년 사람의 성장 호르몬을 생산하는 형질 전환 생쥐를 만들어 낸 데 이어, 지난해 인체에서만 생산되는 락토페린을 생산하는 젖소를 세계에서 두 번째로 개발하는 개과를 올렸다.

서울의대 생화학교실도 91년부터 당뇨병과 간암 같은 인체 질환을 일으키는 유전자를 지닌 생쥐를 개발해, 치료법을 개발하는 데 이용하고 있다. 이밖에 한국과학기술원(KAIST) 생물과학과, 서울대 동물자원공학과, 전남대 유전공학과가 형질을 전환시켜 우수한 형질을 발현하는 동물을 만들어내는 일에 몰두하고 있다.

형질 전환 동물 생산은 90년 말이나 2000년대 초까지 대략 4천8백억원 규모의 시장을 형성하리라 예상된다. 거기에서 파생하는 시장은 그보다 수십 배 커진다. 형질 전환 동물은 황금알을 낳는 오리가 아니라 황금 젖을 내는 가축인 셈이다. 벌써부터 세계 각국은 이 기술을 산업화하는 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유전공학 선진국은 이미 형질 전환 동물이 생산하는 축산물을 제품으로 만들어 시장에 내놓고 있다.

요즘 활발히 연구되는 분야는 인체 생리 활성 물질을 대량 생산하는 동물에 대한 산업화이다. 이 기술은 유전 질환이나 후천성 질환으로 인체 생리 활성 물질이 적게 분비되어 고생하는 환자에게 생리 활성 물질을 낮은 가격으로 대량 공급할 길을 열어준다. 형질 전환, 국내서도 2000년 전에 산업화 예상

이미 잠재 수요가 큰 의료용 희귀 단백질을 생산하는 형질 전환 동물이 개발되어 산업화가 적극 추진되고 있다. 또 염증을 막는 알파1 안티트립신, 혈액 응고를 막아 혈액 순환을 돕는 안티스롬빈3, 혈액 대체 물질인 사람 헤모글로빈, 악성 울혈을 막는 LAtPA 같은 물질을 분비하는 형질 전환 가축 15종은 이미 개발되었다. 영국 파마슈티컬 프로테인사는 안티트립신 시장 규모를 연간 8백억원 규모로 보고 있고, 헤모글로빈 시장은 연간 8조원 규모를 예상한다. 영국 전팜사는 락토페린 시장이 연간 2천4백억원이 될 것으로 예상한다.

한국 정부는 형질 전환 동물 연구를 선도기술개발 사업(G-7)으로 삼아 재정 지원하고 있다. 기업들도 이 분야에 많은 돈을 투자하고 있다. 두산그룹은 락토페린을 분비하는 젖소를 개발한 생명공학연구소에 9억6천만원을 투자했다. 한미양행도 한국과학기술원 생물과학과와 공동으로 생리 활성 물질 2종을 분비하는 형질 전환 재래 흑염소를 개발하고 있다. 형질 전환에 대한 연구 성과물은 국내에서도 2000년이 되기 전에 산업화하리라 추정된다.

형질 전환 동물은 질환 유전자의 기능을 규명하고 치료제를 개발하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형질 전환 기법을 이용해 유전자 변이로 인해 질환을 앓는 동물 모델을 만들어내 임상 실험 대상으로 삼는 것이다. 질환 유전자를 보유한 형질 전환 생쥐는 이미 백여 종이나 개발되었다.

복제 기술도 유전자 변이로 인한 질환 연구에 크게 기여한다. 똑같은 유전자를 가진 양 2마리가 지닌 유전자가 변하는 양상을 추적하면 젖먹이 동물이 생리적으로 공유하고 있는 수수께끼를 풀 수 있다. 늙은 양의 유전자와 갓 태어난 양의 유전자를 비교하여 노화의 원인을 알아낼 수도 있다. 또 병을 앓는 양의 유전자와 정상인 양의 유전자를 비교해 그 차이를 규명하면 유전자의 어떤 부위가 어떻게 변해서 병이 일어나는지 규명할 수 있다. 가축 게놈 유전자를 좀더 해석하면 이 분야는 더 활성화하리라 예상된다.

이식할 장기가 부족해 수많은 환자가 심장 기형으로 고생하고 있고, 신장 질환을 앓는 환자들은 신장 기증자가 없어 매주 혈액을 갈아야 하는 위험과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 형질 전환 동물은 이 환자들에게 구원의 빛이 될 수 있다. 바로 형질 전환 기법을 이용해 인체와 같은 기능을 발휘하는 장기를 가진 동물을 만들어내면 된다.

미국 이뮤트란사는 사람 조직에 적합한 심장을 가진 돼지를 개발하고 있다. 현재 미국에서는 사람 장기를 지닌 형질 전환 돼지와 관련된 시장 규모가 연간 8천억원 정도나 된다. 다만 장기를 ‘빼앗아’ 쓰려고 형질 전환 동물을 개발하는 것에 윤리적인 문제가 따르기 때문에 산업화 가능성은 쉽게 예측할 수 없다.

젖먹이 동물 복제가 성공함으로써 이제 유전자 조작이라는 판도라 상자가 열렸다. 이미 쏟아져 나온 유전자 조작 기술이 인류가 당면한 많은 문제를 해결하는 데 이용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 복제에 따른 윤리적·종교적 문제 때문에 초기 단계인 유전자 조작 기술을 덮어버리면 음성적으로 유전자 조작 기술이 발달해 이로 인해 엄청난 피해를 볼 수 있다. 유전자 복제 기술이 ‘약’이 되느냐 ‘독’이 되느냐는 인류에게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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