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 열 환경운동연합 사무총장 “핵 폐기물 북한 갈땐 해상 봉쇄도 불사”
  • 김은남 기자 (ken@sisapress.com)
  • 승인 1997.02.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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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북한간 핵 폐기물 거래를 막기 위해 할 수 있는 방법을 최대한 동원할 생각입니다. 그린피스·분트 등 국제 환경단체에, 자기 나라에 있는 대만이나 북한 대표부 앞에서 항의 집회를 해 달라고 요청했고, 곧
대만이 핵 폐기물을 북한에 이전키로 했다는 소식에 나라가 온통 뒤숭숭하던 지난 1월22일 환경운동연합은 대만과 북한이 체결한 비밀 협약 내용을 입수했다고 발표했다. △핵 폐기물 매립지가 황해북도 평산 지역 폐광으로 내정되었으며 △2년 안에 두 단계에 걸쳐 20만 배럴(1단계 6만 배럴, 2단계 14만 배럴)을 옮기기로 했다는 내용이었다. 이들은 국제 환경단체들과의 연대 투쟁 방침도 발표했다. ‘국내 최대 규모의 환경운동 단체’라는 수식어에 걸맞게 힘 있고도 발 빠른 대응이었다. 환경운동연합의 총사령탑 최 열 사무총장을 만나 앞으로의 계획을 들어 보았다.

북한이 대만의 핵 폐기물 수출 대상국이 됐다는 사실은 언제 아셨습니까? 환경운동연합이 발표한 정보들은 어떤 경로로 입수했습니까?

지난해 12월 외국의 한 환경단체로부터 대만이 다른 나라와 핵 폐기물을 수출하기로 계약을 맺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만 그때는 그냥 지나쳤습니다. 그런데 며칠 뒤 정근모 전 과기처장관을 만났더니 ‘대만이 북한에 핵 폐기물을 수출한다는 얘기가 있던데 왜 환경운동연합은 아무 대응을 하지 않느냐’고 하시는 거에요. 때마침 국내 언론들이 이 문제를 보도하기 시작했고, 환경운동연합도 본격적으로 정보를 수집하기 시작했습니다. 대만이 어떤 경위로 이같은 일을 추진했는지, 북한과 맺은 계약 내용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알아야겠다는 생각에서였습니다. 국제적인 네트워크를 갖고 있는 그린피스, 독일 최대의 환경단체인 분트, 지구의 벗, 시에라클럽, 대만 환경보호연맹 등 외국 환경단체에 골고루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그 중 이름을 공개할 수 없는 한 단체가 관련 정보를 알려온 것입니다(이 단체는 이름이 알려질 경우 계속적인 정보 수집이 어렵기 때문에 비공개를 원칙으로 하고 있다고 한다).

대만·북한과의 미묘한 외교 관계 때문에 전면에 나서기 힘든 정부가 일부러 환경단체에 정보를 흘린 것이 아니냐는 분석도 있었는데요.

정부와의 접촉은 1월20일께 통일원을 찾아간 일밖에 없습니다. 그쪽도 특별한 정보는 없고, 우리한테 좋은 일 한다는 얘기만 하더군요. 이번 사태에서는 오히려 정부가 대응을 잘못한 측면을 지적해야 할 것 같습니다. 보도에 따르면, 정부가 대만·북한간 거래를 감지한 것은 지난해 9∼10월께라고 합니다. 그때부터 대만에 있는 한국 대표부를 통해 대만 정부에 중단했으면 좋겠다는 의사를 몇 차례 전달했다고 들었습니다. 너무 안일한 대응이었지요. 저는 이번 사태야말로 국가의 중요 직책에 있는 사람이 정책 결정을 잘못했을 때 그 결과가 얼마나 엄청난지 보여주는 좋은 예라고 봅니다. 미국이나 유엔의 여러 외교 채널을 처음부터 적극적으로 동원했다면 사태가 여기까지 오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핵 폐기물을 자국에서 처리하지 않는 행위 자체가 부도덕한 데다 수출 상대국이 핵 문제로 여러 해 동안 전세계의 이목을 끌어온 북한이라는 점을 부각해 국제 여론을 형성했어야 합니다. 대만이 대외의존형 산업 구조를 갖고 있는 만큼 국제 여론이 상당한 압력으로 작용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고준위 폐기물이 아닌 이상 국가간 핵 폐기물 거래에 대해 제3국은 개입하지 않는 것이 외교상의 관례인 것으로 압니다. 이 때문에 여간해서는 대만·북한간 거래를 막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는데요.

비정부단체(NGO)로서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방법을 동원해야지요. 우선은 그린피스, 분트, 일본 원자력자료정보센터 등 국제 환경단체에 자기 나라에 있는 대만이나 북한 대표부 앞에서 항의 집회를 해 달라고 요청해 놓은 상태입니다. 곧 국내 시민·환경 단체 7∼8개와 공동으로 대만제품 불매운동본부 발족식도 가질 계획입니다. 2단계로는 오는 1월31일에 국내 환경단체 대표·전문가·정치인 들이 대만을 방문할 것입니다. 이부영·안상수 의원이 동행하겠다는 의사를 밝혀 왔습니다. 대만에 가면 계약 당사자인 대만전력공사와 대만 정부에 우리 국민의 의사를 공식으로 전달하고, 북한과의 거래를 백지화하는 것이 대만의 국익뿐 아니라 장기적으로 한국과의 관계를 호전시키는 데도 도움이 될 것임을 알리겠습니다. 핵발전소 건설 반대를 당론으로 삼고 있는 민진당(야당)·타이베이 시장·환경운동가 출신 국회의원·환경 단체 사람 들을 고루 만나 대만 내에 반대 여론을 형성하는 데도 주력하겠습니다. 그래도 안된다면 실력 행사도 불사하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실력 행사라면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합니까?

최악의 경우 대만에서 북한으로 핵 폐기물을 운반할 때 그린피스 배를 동원해 해상 봉쇄 작전을 벌일 생각입니다. 실질적인 봉쇄는 힘들겠지만 어느 정도 압력은 가할 수 있으리라고 봅니다. 4년 전 러시아가 동해에 핵 폐기물을 투기하는 행위를 그린피스와 환경운동연합이 폭로했을 때 국제 여론이 얼마나 들끓었는지를 상기하면 될 것입니다.

정부로서는 내부적으로도 곤혹스런 측면이 있는 듯합니다. 한 예로 핵 폐기물 처리장 반대 논리를 너무 강하게 밀고 나가다 보면 이제까지 국내에서 추진해 온 정책과 모순되는데요.

그런 의미에서 지금 정부가 취하고 있는 반대 태도는 제스처일 수도 있습니다. 정부 부처마다 이해 관계가 제각각이니까요. 특히 통상산업부·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한전처럼 핵 발전소 정책을 추진하는 기구들은 이 문제가 더 이상 확대되는 것을 원치 않지요. 북한에 핵 발전소를 짓는 김에 핵 폐기물 처리장도 우리가 지어 주자는 주장이 나오지 말란 법도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도 환경단체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우리는 일관되게 핵 발전소·폐기장을 반대해 왔고, 에너지 정책 전환과 핵의 평화적 이용을 주장해 왔습니다.

핵 폐기물 처리장을 그토록 강하게 반대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핵 무기 제조 가능성 때문에 가장 문제가 되는 고준위 폐기물(사용후 핵 연료)에는 플루토늄239라는 물질이 0.3% 들어 있습니다. ‘지구상에서 가장 위험한 물질’이라 불리는 이것이 반으로 줄어드는 데(반감기) 2만3천 년이 걸립니다. 핵발전소 평균 수명이 30년인데, 한 세대가 전력을 공급 받는 대가로 수만 년 동안 후손들에게 못할 짓을 하는 셈이지요. 상대적으로 안전하다는 중·저 준위 폐기물도 반감기가 3백 년은 됩니다. 대개는 콘크리트와 혼합해 드럼에 넣어 밀봉하는 방법으로 중·저 준위 폐기물을 보관하는데, 콘크리트나 철제 캔이 부식되면 대책이 없지요.

이번 사태도 따지자면 핵 폐기물 처리장 부지를 확보하지 못한 데서 비롯됐지요. 95년 굴업도를 부지로 삼으려던 계획이 백지화한 후 한국도 여기서 예외는 아닌 듯합니다. 환경 단체가 생각하는 대안이 따로 있습니까?

핵 발전소 정책을 추진하는 쪽이 가장 많이 들고나오는 논리가 ‘이미 가동 중인 원전에서 나오는 폐기물은 어떻게 할 거냐’는 것입니다. 물론 저도 그같은 현실은 인정합니다. 환경단체들도 에너지 정책이 근본적으로 바뀐다는 전제만 있다면 부지 선정에 협조할 뜻이 있습니다. 핵 발전소 건설을 중지하고, 에너지 소비를 줄이는 삶의 구조와 생산 양식을 지향하는 쪽으로 정책을 바꾸어야 합니다.

거래 자체보다 핵 폐기물까지 수입해야 할 정도로 북한 상황이 악화된 데 대한 우려도 상당합니다.

그렇게 단순한 문제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경제난뿐 아니라 다른 변수도 분명히 존재할 것입니다. 북한 정부가 조금만 트릭을 부리면 한국 전체가 흔들리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지요. 이를테면 선거 국면에서는 북한군 1개 중대가 휴전선을 왔다갔다 하는 것만으로도 선거 결과에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이런 변수까지 모두 고려해 이번 사태에 대응해야 할 것입니다. 게다가 북한은 95년 한국 정부가 굴업도를 핵 폐기물 처리장 부지로 확정했을 때 국경에 가깝다는 이유로 격렬하게 반대한 바 있습니다. 이 점, 북한 정부도 일관성을 보여야 할 것입니다. 물론 직접 원인이 경제난·식량난에 있는 만큼 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 활동을 민간 단위에서 더 활발하게 전개할 수 있도록 정부가 길을 열어 주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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