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 답파하던 기백 청학동 양지녘에 묻어 두고
  • 김은남 기자 (ken@sisapress.com)
  • 승인 1997.01.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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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청학동에서 세번째 겨울을 나고 있는 남난희씨(40)는 이제 ‘청학동 사람보다 더 청학동 사람 같다’는 말을 듣는다. 불혹의 나이를 맞은 그에게 태백산맥 2천리를 76일간 여성 최초로 단독 종주했던 시절(84년)의 ‘선머슴 같던 기백’을 찾아 보기는 어렵다. 대신 그 자리는 고요함과 넉넉함으로 메워져 있었다. ‘툭하면 산에 가고 싶어 안달이 날 지경’이었던 서울 생활을 떠나 비로소 찾은 안정이다.

지리산에 들어온 지 1년 만에 남씨는 청학동∼삼신봉 등산로 입구에 전통찻집 ‘백두대간’을 차렸다. 유난히 낯가림을 하던 그가 찻집에 들른 등산객들과 격의 없이 담소를 나눌 수 있는 것도 지리산이 베푼 축복이다. 손님이 없으면 ‘마실 가듯’ 훌쩍 삼신봉에 올라갔다 오기도 한다.

그러나 요즘 그는 이 생활도 청산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느낀다. 지난 여름 지리산 주능선을 탔다가 받은 충격 때문이다. 바위 군데군데 박힌 쇠말뚝과 벽소령에 새로 우뚝 솟은 ‘초호화판 대피소’를 보니 지리산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가 밭을 일구며 사는 길밖에 없는지, 지리산과 ‘평생 살 인연’이 닿았다고 믿어 온 남씨는 요즘 이래저래 머리 속이 복잡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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