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상 실험 내세워 ‘생체 실험’했다
  • 정희상 기자 (hschung@sisapress.com)
  • 승인 1997.01.02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P53 유전자 통한 암 치료법 ‘공개 임상 실험’ 파문 부작용·후유증 심각… 부풀리기 보도로 혼란 가중
대폭발의 분수령은 96년 7월29일이었다. 전국 말기 암 환자와 그 가족에게는 기적 같은 서광이 비치는 순간이었다. 기폭제는 한 중앙 일간지의 의료 관련 기사였다. 보도한 언론도 정보를 준 의료진도 앞으로 닥칠 사태의 파장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이튿날부터 서울의 두 병원에 말기 암 환자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새 ‘치료법’이 기적을 가져다 줄 것이라는 강고한 믿음의 물결이었다.

이들은 막무가내였다. 아무런 희망 없이 죽을 날만 기다리던 기막힌 처지에서 붙잡고 매달릴 동아줄 하나가 내려왔기 때문이다. 서로 그 줄을 잡겠다고 필사적으로 매달렸다. 권력에, 연줄에, 심지어 돈보따리까지 싸들고 찾아와 의료진을 난감하게 하는 경우도 있었다. 전국 방방곡곡은 물론 미국에서 입원 치료를 받던 환자까지 이 대열에 끼려고 날아올 지경이었다.

정부 지원금 받아 ‘위험한 연구’ 세계 최초 착수

의료진의 말 한마디가 그들에게는 희망과 절망의 교차점이었다. 울며불며 막무가내로 매달리는 환자, 치료(실험) 과정에서 죽더라도 여한이 없으니 죽기 전 마지막 소원으로 실험 대상에 끼워 달라는 환자 등 눈물 없이 지켜볼 수 없는 광경이 벌어졌다. 이들을 대하는 의료진으로서는 전혀 예측하지 못했던 혼란이자 고난이었다.

시행 착오의 서막은 이렇게 시작되어 4개월여가 흘렀다. 지금은 초기와 같은 혼란이 일단락되었지만 담당 의료진은 연구를 제자리로 돌려 놓느라 분주하고, 상황이 남긴 파장은 의료계 내부의 조용한 자성과 논란으로 옮아가고 있다.

말기 암 환자들과 의료진이 ‘씨름’을 벌여야 했던 사태는 96년 8월 이후였지만 사태의 서막은 96년 3월16일로 거슬러올라간다. 이 날 국립의료원 이창준 방사선과장과 중앙대 필동병원 비뇨기과 문우철 교수팀은 보건복지부에 공동 연구 과제를 제출했다. 96년도 보건의료기술 연구 개발 사업의 하나로 이들이 내놓은 과제 제목은 ‘간암 환자에서 간 동맥을 통한 유전자 치료 요법의 개발’이었다. 두 병원 연구팀은 보건복지부로부터 연구비 1억5천만원을 받아 3년 계획(99년 3월까지)으로 연구를 수행한 뒤 논문을 제출하기로 허락을 받았다.

이들이 제출한 간암 환자 상대 유전자 치료 연구 과제는 세계 최초를 목표로 한다는 데 의미가 있었다. 더구나 한국은 B형 간염 바이러스로 인한 간암 환자 발생률이 세계에서 가장 높다는 점에서, 이들의 연구가 성공할 경우 절망에 빠진 수많은 말기 간암 환자에게 큰 희망을 가져다 줄 것으로 기대되었다. 유전자 치료약제 개발은 문우철 교수가 맡았는데, 비뇨기과 의사인 그가 내과 계통인 간암 연구에 나섰다 해서 의료계에서 비판적 시각도 없지 않았다.

이에 대해 연구 책임자인 이창준 과장은 “문교수가 유전자 치료 연구가 활발한 미국에 건너가 1년간 수학하면서 얻은 노하우가 있었기 때문에 내가 찾아가 공동 연구를 제안했다. 2000년대는 결국 말기 암 치료에 유전자 요법이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되는데, 누가 하든 우리나라에서 먼저 세계에 내놓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우리가 처음 임상 실험에 착수한 것이다”라고 말한다.

이들은 몇달 동안 동물 실험을 한 뒤 비공식으로 말기 암 환자를 대상으로 1차 임상 실험도 했다. 이들이 사용한 방법은 유전자 P53을 조작한 뒤 운반 물질인 리포좀에 붙여, 그 리포좀이 암세포로 P53을 끌고 들어가게 하는 방식이었다. 운반 물질인 리포좀 제조는 문우철 교수가 노하우를 갖고 있기 때문에 그의 실험실에서 만들었다.

1차 임상 실험 결과 몇 사람은 엑스레이 사진에 암세포가 현저히 줄어드는 뚜렷한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왔다. 일부는 별 효과가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그 결과만으로도 연구팀은 성공 가능성에 대한 자신감을 가질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아직 초기 단계인 데다 임상 사례가 극히 미미해 어디에 공개할 정도는 못된다고 판단했다는 것이 이과장의 설명이다.

그러던 차에 어떻게 알았는지 한 중앙 일간지 기자로부터 연구 책임자인 이과장에게 전화가 왔다. 파문은 여기서 비롯되었다는 것이 이과장의 회고이다. “기자가 몇 차례 전화해 임상 실험 결과를 공개할 것과 인터뷰를 요청했다. 초기 단계이므로 99년 3월 공식 발표하기 전까지는 응할 수 없다고 누차 거절했다. 문교수에게도 언론 공개는 아직 이르니까 99년까지 피하자고 제안했지만 7월29일 이 사실이 신문에 보도되고 말았다. 그 뒤부터 말기 암 환자들이 구름처럼 몰려들기 시작했는데 정신이 없었다. 내 방에 찾아와 실험 대상에 끼워 달라고 하소연한 환자만도 7백~8백명에 달했다.”

이렇게 해서 유전자 요법 임상 실험은 신중하게 연구가 진행되던 초기 단계에 일대 전환점을 맞이하게 되었다. 첫 보도 이후 각종 신문 방송이 유전자 요법 임상 실험을 크게 다루었다. 8월22일에는 중앙대병원에만 각종 말기 암 환자 2천여 명이 몰려든 것으로 보도되었다. 이같은 사태 전개에 대해 문우철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언론과 인터뷰하면서, 이 실험은 초기 진행 단계이므로 좋은 결과가 나온 환자도 어떤 부작용이 나타날지 오랫동안 지켜봐야 한다고 누누이 강조했는데, 그 말은 뒤로 밀려났다. 이 실험이 아무 방법이 없는 말기 암 환자 일부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은 사실이나 만병통치약은 아닌데 마치 기적의 약인 것처럼 부풀려 보도된 것이다. 또 엑스레이 사진에 암세포가 안보여도 치유됐다고는 말할 수 없는데 잘 모르는 언론이 그 환자가 완치되어 재생의 삶을 산다는 식으로 내용을 바꾼 것도 문제였다. 그 뒤 언론이 밀려들면서 밀어붙이니까 울며 겨자 먹기로 밀린 게 우리의 실수였다.”

결과적으로 8월 이후 임상 실험은 폭주하는 암환자와 여론이 이끌어가는 듯한 웃지 못할 사태에 휩쓸리고야 말았다. 물론 임상 실험 소식을 다루는 언론이 전문가의 신중론을 곁들이기는 했지만, 주요 내용과 제목에 마치 말기 암을 퇴치하는 기적의 치료제가 개발된 것처럼 부각함으로써 수천 명의 말기 암 환자들을 두 병원으로 헛걸음시키는 안내자 노릇을 했다. 물밀듯 밀어닥친 전국의 암환자들은 대부분 치료 유전자 P53이 몸에 맞지 않아 실험 대상이 될 수 없는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의료진의 그런 설명을 듣고도 울며 매달리다 낙심한 채 발길을 돌렸다.임상 실험 환자 절반 가까이 부작용 보여

애초에 연구팀은 임상 실험 대상 환자를, 인체에서 P53이 돌연변이를 일으켜 암이 발생한 경우와, 2개월 이상 생존이 가능한 경우 모두를 충족시키는 사람으로 선정했다. 그 밖의 환자에게는 효과를 거의 기대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오히려 실험으로 인해 부작용이 발생할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연구팀이 보건복지부에 제출한 과제 보고서 내용에는 각 암에 따라 실험 대상에 적합한 환자의 비율이 들어 있다. 유전자 P53이 돌연변이를 일으켜 암이 발생되는 비율은 폐암 환자가 56%로 가장 높고, 대장암 환자가 50%, 위 ·식도·난소·췌장·피부암 환자가 41~45%, 그리고 연구팀의 주요 과제였던 간암 환자는 29%를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문교수는 당시 언론 인터뷰를 통해 ‘간암 환자의 경우 거의 대부분, 나머지 암도 절반 정도가 실험 대상에 해당한다’라고 밝혔다.

이 내용을 보고 전국의 간암 환자들이 ‘희망’을 향한 대열에 섰다는 점에서 그 혼란의 책임에 문교수의 잘못된 발표가 한몫 했음도 부인하기 어렵다. 이에 대해 문교수는 “간암의 경우 30% 정도가 P53과 연관이 있지만, P53과 연관이 없어도 가능성이 있는 경우까지 합치면 전체 간암 환자 중 40~45%는 이론적으로 해당될 것이라고 생각한다”라고 해명했다.

어쨌든 임상 실험 대상이 되겠다고 자처하며 밀려든 말기 암 환자 수천 명은 대부분 치료 유전자 P53이 맞지 않아 되돌아 갔다. 그 중 일부는 안맞는 줄 알면서도 불가피하게 실험 대상으로 선정했다고 한다. 중앙대 병원에서는 임상실험 대상 총 45명 중 17명을, 국립의료원에서는 30명 중 1명을 청탁, 압력 또는 인정에 밀려 끼워 넣었다는 것이다. 이들에게는 임상 실험이 아무 효과를 볼 수 없었지만 어떤 부작용이 나타났는지도 확인할 길이 없다. 대개 시한부 선고 기간이거나 사망했기 때문이다.

그러면 두 병원을 합쳐 총 75명에 이르는 임상 실험 대상자들은 그 후 예후가 어떠했을까. 현재 두 병원은 따로 결과를 집계하고 있다. 우선 중앙대병원 문우철 교수는 “한 번이라도 투약을 받은 사람이 총 45명인데, 그 중 17명은 청탁을 받아 억지로 넣은 환자들이니까 제외하고 28명만 계속 투약하는 대상이다. 이중 15명에게서 반응이 나타났다. 엑스레이 소견상 암 조직이 절반 이상 준 사람은 36%, 절반 미만이 준 사람은 18%이다. 중증 부작용은 4%였다. 부작용은 발열·전신 쇠약감·패혈증·감염 등이다. 백마흔 번 투약하던 중 일곱 번 중증 부작용이 나타났다”라고 밝혔다. 이번 실험에 대한 그 스스로의 중간 총평은 이렇다. “우리는 현재까지 효과가 좋은 것으로 느끼지만 진짜 효과는 수년 후에야 알 수 있다. 언론에 밀려 확대해서 임상 실험을 하면서 느낀 점은, 우리가 조용히 정확하게 실험할 수 있도록 내버려 둬야지 언론이 어떤 방향으로 몰아가면 안된다는 것이다.”

국립의료원의 경우 그동안 총 30명을 실험했는데, 간암 환자가 15명, 나머지 암 환자가 15명을 차지했다. 이들 중 14명에게서 부작용·후유증이 나타나 투약을 중단한 채 귀가시켰고, 현재 16명에게 계속 실험하고 있다.“대부분 걸어 들어왔다가 실려나갔다”

16명에 대한 실험 효과에 대해 이창준 방사선과장은 “아주 좋아진 그룹, 약간 좋아진 그룹, 전혀 효과가 없는 그룹 세 부류로 나뉘는데, 대체로 각각 30%씩 차지한다”라고 전한다. 부작용은 고열·패혈증·신부전증·전신 쇠약증세가 주로 나타났다고 한다.

국립의료원의 다른 내과 의사는 “환자 20여명을 실험하는 과정에서 예후를 관찰하며 의무 기록을 작성했는데, 암세포가 없어지는 환상적인 결과는 한 건도 없었다. 대부분 병원에 제발로 걸어들어 왔다가 실험 후 축 처져 집으로 실려 나갔다. 초기에 대량 공급된 약에 문제가 있었다는 방사선과의 소견을 들었는데, 지금은 약을 보완해 심각한 부작용은 덜하다고 한다”라고 말한다.

결국 전국의 암 환자에게 완전히 개발된 치료법인 듯한 환상을 불러일으키며 공개적으로 진행된 국내 최초·최대의 이번 임상 실험은, 우리 의료계와 보건 당국과 언론이 이런 상황에 얼마나 취약한지를 극명하게 보여준 거울이라 할 만하다. 신중하게 진행해야 할 유전자를 이용한 인체 임상 실험이 그 위험성과 윤리적 논란에도 불구하고 ‘공개 시장’ 형태로 진행된 것이다. 이런 현상은 이번 임상 실험이 마치 ‘기적의 치료제’인 것처럼 와전된 데서 말미암았다. 그런 점에서 이번 사태는 의료와 언론이 만나는 데 윤리적으로 큰 경종을 울린 교훈으로 받아들일 만하다.

물론 사회 일각에서는 말기 암으로 아무런 희망 없이 시한부 인생을 사는 환자들이 개발이 기대되는 치료 부문의 임상 실험 대상이 되는 것은, 설사 그 부작용으로 일찍 사망할지라도 충분히 시도해 볼 만한 행위라는 의견을 내놓기도 한다. 의료 발전에 밑거름이 된다면 미래의 가족을 위해서도 보람 있는 일이 아니냐는 것이다.

그러나 말기 암으로 시한부 인생을 사는 환자의 인격과 생명 또한 존중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선진 각국이 정부 차원의 유전자 치료 요법 임상 실험 기준을 마련해 엄격한 통제와 검증을 하고 있다는 점은 눈여겨볼 대목이다. 신중을 거듭하되 최소 희생으로 최대 효과를 얻자는 정신이다. 최소 인원(환자)에 대해서도, 의료진은 가장 쉬운 말로 극단적 위험까지 예고하며 환자와 보호자의 의견을 묻는다.

이에 비해 이번 공개 임상 실험은, 환자와 가족들로서는 그런 ‘막다른’ 고민을 하고 선택할 기회조차 원천적으로 왜곡된 상황에서 진행된 측면이 강하다. 초기부터 지나치게 기대 효과만 부각되고, 심지어 개발된 치료제로까지 잘못 알려졌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실험에 참가한 국립의료원의 한 의사는 “우리가 환자와 보호자에게 부작용으로 사망할 수도 있다고 말하면 ‘신문·방송에는 그렇게 안나왔는데 쓸데없이 겁주지 말라’며 따지고 드는 경우가 많았다. 이런 맹신 상태를 보고 의사인 것이 부끄럽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라고 말한다.

어쨌든 임상 실험을 주도한 의료진은 현재 실험 과정에서 겪은 그같은 소용돌이와 환자들의 오해가 이 실험 성공에 부정적 요인으로 작용했다고 해석한다. 양적으로는 많은 실험을 할 수 있었지만, 전혀 효과가 기대되지 않은 환자들이 끼여듦으로서 질을 떨어뜨리는 실험이 많았다는 것이다.

이제 초기의 소용돌이는 다소 진정되었지만 그동안 진행된 임상 실험 과정이 의료 윤리와 법적 논란 대상으로 비화할 조짐이다. 이래저래 당초의 궤도를 벗어난 임상 실험은 참가 의료진 스스로도 감당하기 힘든 후유증을 불러들인 셈이다. 이런 안팎의 시련에 직면해 국립의료원과 중앙대 의대 연구팀은 전국의 암 환자가 혼란에 빠지기 전인 초기 과제 제출 당시의 자세로 돌아가 실험에 내실을 기하겠다고 말한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