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연대’ 박원순 사무처장 “권력 독식할 후보 세상에 알리겠다”
  • 박성준 기자 (snype00@sisapress.com)
  • 승인 1997.01.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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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 대부분은 어떤 대통령을 뽑느냐가 자기 일상 생활에 얼마나 중요한 영향을 주는지를 잘 깨닫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이같은 사실은 곧 시민 의식의 한계이자, 시민운동이 방기해온 문제이기도 합니다. 안타깝
올해는 정치와 시민 사회가 행복한 결합을 이뤄낼 수 있을지를 시험 받는 중요한 해가 될 것이다. 오는 연말 대선이 있기 때문이다. 유감스럽게도 역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후보를 낸 정치권은 물론 시민들 스스로도 바른 관점을 견지하지 못해 민주주의 진전을 더디게 한 쓰라린 경험을 갖고 있다. 창립 2년여 만에 시민운동의 새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 참여민주사회시민연대(참여연대)를 찾아가 대선에서의 시민 역할에 대해 물었다. 이 단체 박원순 사무처장은 투표권 행사에 앞서 권리 의식을 확립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시민운동의 관점에서 96년 한 해를 평가해 주십시오.

돌이켜 보면 후퇴와 퇴행을 거듭한 한 해였습니다. 비리 사범 사면 문제, 최근 안기부법 개정 문제와 노동 관련법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려는 노력은 시민 사회 안정과 발전의 한 토대이자, 시민권을 확대하는 계기로 볼 수 있습니다. 참여연대로서는 사업을 줄기차게 벌여 이미지를 구축했던 한 해였습니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많은 과제가 남기도 했습니다.

줄기차게 벌였다는 사업의 구체 내용은 무엇입니까?

크게 보면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맑은 사회 만들기 캠페인으로서, 이는 시민의 힘으로 총체적 부패상을 극복해 보고자 계획했던 것입니다. 우리는 이를 위해 부패방지법 제정을 중심으로 정책 토론회를 수없이 열었으며, 지난해 후반기에는 서울역에 매주 한 번씩 가서 서명 받는 일도 했습니다. 또 하나 사회복지위원회 활동이 있었습니다. 삶의 질은 누가 거저 가져다 주는 것이 아닙니다. 사회복지쪽 예산이 늘 예산 편성의 우선 순위에서 밀리는 사례가 이를 반증합니다. 지난해에는 과거 어느 때보다 삶의 질이 소리 높여 얘기됐으나 막상 사회복지는 뒷전으로 모두 밀렸습니다. 그래서 우리 단체는 개발 모델에 관한 각종 토론회를 열고, 공익 소송을 제기했던 것입니다. 이같은 사업에는 나름의 성과가 있었습니다. 65세 이상자 대상 노령수당 청구 소송이 본보기입니다. 대법원에서 최종적으로 이겼습니다. 우리가 제안한 소년·소녀 가장제 역시 상당 부분 우리 안이 수용됐습니다.

참여연대의 지향점을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그야말로 이름에 나와 있는 것처럼 참여 민주주의라 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시민의 자발적인 참여가 없었던 게 사실이었습니다. 시민들이 개입해서 모든 제도화한 권력을 감시·견인하자는 것이 우리들의 목표입니다.

민주화가 진전됐다고는 하지만 ‘발육 부진의 민주주의’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습니다. 지난해 민주 개혁 작업은 얼마나 진전했다고 보십니까?

로마가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았듯이 민주주의 역시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는다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특히 지난 1년 그야말로 저는 시민운동 단체에 상근하며 활동했으나 풍토가 척박하다는 것을 실감했습니다. 물론 외형적 요소들은 기본적으로 갖춰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정치 과정에 군부의 개입이 줄어든 것이 단적인 예입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이룩한 성과는 어디까지나 외형·피상에 불과합니다. 국가가 있고 국민이 있는데, 실질적 민주주의가 이뤄지려면 국민에 의한 국가 권력 통제가 이뤄져야 합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는 시작 단계에 있을 뿐입니다.

민주주의를 제약하는 구조적 요인으로 분단 상황을 말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민주주의를 꽃피우려면 분단 상황을 극복해야 하는데, 결국 시민 단체가 나서야 하는 것 아닙니까?

분단이 우리의 민주주의와 삶의 질을 제약하고, 이를 정당화하는 요소인 것은 사실입니다. 예산 자체만 해도 사회복지 예산은 방위 예산과 직결되어 있습니다. 그동안 통일운동이 먼저냐 민주화운동이 먼저냐 하는 논쟁도 있어 왔습니다. 최근 탈북자 문제를 끌어안아야겠다는 생각에 종교 단체에 공동 사업을 제의해 놓았습니다만, 우리의 기본 원칙은 다른 단체가 잘하고 있는 일에는 끼여들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97년은 민주주의 진전에서나, 시민운동 진운에 중요한 해로 생각됩니다. 어떤 일들이 계획되어 있습니까?

올해는 무엇보다 대선이 중요합니다. 제대로 된 대통령을 제대로 된 절차와 방식에 따라 선출하는 일은 아주 중요한 과제이지요. 공정 선거뿐 아니라 대선 후보가 바른 정책·공약을 내놓을 수 있게 정책 대안을 제시하도록 이끄는 데 주력할 생각입니다. 그렇다고 일상 활동을 게을리하지는 않을 생각입니다. 사회가 너무 대선에만 매달리는 것도 결코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참여연대만의 일로는 건전한 재정, 건전한 단체로서의 기반 만들기에 신경쓰겠습니다. 좋은 회원을 많이 모으기 위해 참여사회 아카데미의 운영에 내실을 꾀할 계획입니다. 재정 문제도 중요하지요. 최근 우리 단체는 연극(<로젤>) 사업을 시도해 봤습니다. 수입도 제법 됐고, 문화라는 방식을 통해 시민과 시민운동이 만나는 좋은 공간을 마련하는 성과를 얻었지요. 영어권 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말로 ‘체크 인클로즈드’를 꼽는 경우가 있는데, 이 말은 돈을 기부한다는 뜻이지요. 월급쟁이가 월급 쪼개 돈 내면 세금 혜택이 돌아가도록 해야 합니다. 또 시민운동 단체도 좀더 세련된 캠페인을 해서 시민들이 저절로 주머니에 손이 가게끔 노력해야겠지요.

앞서 중요성을 말씀하셨지만 올해에는 대선이 있습니다. 일반 시민에게 대선은 어떤 의미가 있다고 보십니까?

선거는 권리 의식의 문제입니다. 유권자 개념 역시 권리의 개념입니다. 그런데 시민 대부분은 어떤 후보를 뽑느냐가 자기 일상 생활에 얼마나 중요한 영향을 주는가를 잘 깨닫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이같은 사실은 곧 시민 의식의 한계이자, 시민운동이 방기해온 문제이기도 합니다. 안타깝게도 지금까지 대선에서 유권자들은 지역주의·연고주의와 조직의 바람에 휩쓸리기 일쑤였습니다. 때때로 후보들의 자질과 능력을 평가하는 청문회가 있긴 했지만 이 경우도 사실 언론이 독점하다시피 했습니다.

얼핏 말하셨지만 선거에서 지역주의 폐해는 매우 심각합니다. 다음 대선에서도 폐해가 발생할 조짐이 보이고 있는데, 특별한 대책이 없습니까?

지역주의는 불가피했던 측면이 있습니다. 정권을 잡았던 쪽이 번번이 권력을 독식했기 때문이지요. 과거 TK 세력이 그랬고, 지금 PK 세력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폐해를 없애려면 원인을 제거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후보자들이 권력을 독식할 가능성이 있는지 따져 봐야 합니다. 지금까지 선거에서 시민운동 단체의 활동은 선거의 공정성만 감시하는 데 치우쳐 있었습니다. 참여연대는 중립성을 잃지 않는 범위에서 누가 과연 권력을 잡았을 때 이를 독식하지 않을 것인지 판단할 수 있는 기초 자료를 확보·분석해 세상에 알릴 계획입니다.

97년이 우리에게 진정 희망찬 해가 될 수 있을까요?

단기적으로 보면 누가 대통령이 되느냐가 그 질문의 대답이 될 수 있겠지요. 그러나 장기적으로 볼 때 선거는 의미가 적습니다. 정치의 생산성이 향상되고, 인권 보장 수준이 더 올라가고, 삶의 질이 높아지면 누가 대통령이 되든 상관 없지 않습니까. 최근 참여연대에는 경사가 생겼습니다. 경력 7년차인 변호사 한 분이 시민 사회를 폭넓게 이해하고 시민운동 경험을 쌓기 위해 우리 단체에서 1년 정도 상근하기로 결심했지요. 비록 작은 일이긴 하지만 저는 이 사건이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1~2년이 아니라 한 세대 또는 그 이상을 바라보면서 밭을 일구는 심정으로 사회를 살겠다는 사람이 우리 사회에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단기간에 승부를 내겠다는 조바심을 버린다면 97년은 분명 희망찬 해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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