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겁고 유익한 섬 여행 가이드
  • 전북 선유도·吳允鉉 기자 ()
  • 승인 2000.07.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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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 여행 유익하게 즐기는 법/개펄·곤충 관찰 하면 재미 두 배… 자전거 일주 ‘색다른 맛’
‘섬들을 생각하면 왜 숨이 막히는 듯한 느낌이 드는 것일까. …사방의 수평선으로 자유스럽게 터진 바다를 섬말고 어디에서 만날 수 있으며, 육체적 황홀을 경험하고 살 수 있는 곳이 섬말고 또 어디에 있겠는가.’

고군산(古群山) 군도(群島) 가운데 하나인 선유도로 가는 길. 짙은 해무를 덮고 조용히 숨쉬는 서해 바다를 바라보며 장 그리니에의 <섬> 가운데 한 대목을 떠올린다. ‘숨이 막히는 듯한 느낌’. 불타는 선유도 낙조를 보며 그같은 경험을 했다는 사람을 만난 적이 있다. 그이는 바다와 하늘은 물론 고기를 잡는 날카로운 작살마저 붉게 물들이는 노을을 보며 숨이 턱 막혔다고 했다. 이 배에 탄 여행객들도 그같은 매혹적인 경험을 할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하니 갑자기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햇빛이 간간이 비늘을 떨어뜨렸지만 해무는 좀체 물러서지 않았다. 마음 속으로 ‘해야 힘 내, 해야 힘 내’ 하고 응원해 보지만 별무 효과. 오늘 하루 안개는 배의 그림자가 되기로 한 것 같았다.

군산항을 떠난 지 2시간쯤 지나자 더벅머리처럼 생긴 작은 섬들이 안개 속에서 모습을 나타냈다. 하지만 섬들은 숨바꼭질하듯 금세 해무 속에 모습을 감추었다.

배가 중절모같이 생긴 섬을 끼고 돌면서 길게 무적을 울렸다. 신기했다. 해무가 걷히며 자그마한 선착장이 나타난 것이다. 무인도·유인도 63개로 이루어진 고군산 군도 입구에 있는 신시도였다. 안개가 걷히면 주변의 선유도·무녀도·장자도·대장도·방축도·야미도·횡경도 등이 열병하듯 늘어서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을 텐데, 아쉬웠다.

손님 예닐곱이 배에서 내리자 배가 힘을 내기 시작했다. 선유도 선착장에 배가 도착한 때는 오후 4시30분. 군산항을 출발한 지 2시간 30분 만이었다.

섬은 외지 사람을 밀쳐내기라도 하듯, 후텁지근했다. 마을로 들어서자 멀리 어마어마한 바위로 이루어진 망주봉이 보였다. 이곳에 유배된 신하가 매일 저 산 위로 올라가 한양에 있는 임금을 그리워했다던가. 그 위를 갈매기 몇 마리가 줄 끊긴 연처럼 오락가락 날았다.

오랫동안 섬을 여행하고 섬에 관한 시를 써온 시인 이생진씨는 산문집 <걸어다니는 물고기>에서 ‘섬에서는 잠자리를 잘 잡아야 한다. 물이 귀하고, 음식이 귀하기 때문이다’라고 썼다. 그러나 그런 곳을 찾기가 어디 쉬운가. 선유초등학교 앞에 나와 있던 아줌마들 손에 이끌려 들어간 곳은 중앙민박(0654 -465 -3450). 샤워 시설이 있다는 말에 혹했다. 일정, 최소한 3박4일 잡아야

짐을 풀어놓고 바닷가로 나서면서 이생진씨가 충고한 섬 여행법을 다시 확인했다. ‘섬 여행은 테마를 가지고 떠나는 것이 바람직하다. 즉 해수욕만 즐길 것이 아니라, 섬 식물이나 곤충, 바다 생물 같은 데 줄기차게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 좋다. 거기에다 사람 냄새를 맡고 오면 더 좋다. 섬 사람들이 사는 모습을 보면 자신도 모르게 겸손해질 것이다. 섬 여행은 3박4일이나 4박5일이 적당하다. 태풍을 만나도 느긋하게 기다릴 수 있기 때문이다. 최적의 시기는 8월1일부터 15일까지이다. 그때는 날씨가 고르고 햇볕이 부드럽다.’

선유도에서 무엇을 볼 수 있을까 궁금해 하며 걷는데, 무지개 모양 기다란 모래밭이 나타났다. 선유 8경 가운데 하나라는 명사십리. 길이가 1,200m나 되는 아름다운 모래밭이다. 둑길을 넘어서자 호수 같은 잔잔한 바다가 펼쳐졌다. 그 가운데에 평사낙안(平沙落雁)이 조용히 떠 있다. 섬처럼 모래밭이 있는데, 마치 기러기가 내려앉은 듯한 모습이다.

바닷가에 앉아 콧등을 스치는 마파람을 즐기는데, 느릿느릿 굴러가는 자전거가 있었다. 이은희(28)·이시정(27) 씨. 서울에서 내려온 여행객이었다. 4박5일 일정으로 서해안을 종단한다고 했다. 이은희씨는 “오래 전부터 꼭 와보고 싶었던 곳이다. 선유도에 대한 첫인상은 몽환적이다. 하룻밤을 이곳에서 보낼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가슴이 뛴다”라고 말했다.

백사장에 앉아 엄마를 기다리는 아이처럼 붉은 낙조를 기다렸다. 해무가 걷히기를 바라면서…. 하지만 안개의 심술 때문에 해는 끝내 모습을 나타내지 못했다.

개펄은 살아 있는 자연 학습장

섬의 밤은 모기들이 지배했다. 창문에 쳐놓은 방충망에 모기와 나방들이 들러붙어 사람들을 쳐다본다. ‘여긴 뭣하러 왔니?’ 하고 묻는 것 같았다. 일본의 옛 시인처럼 ‘얼마나 운이 좋은가/올해에도 모기에 물리다니…’ 할 정도로 여유가 없다 보니 문을 꼭꼭 닫는다. 가끔 희한한 곤충이 눈에 띄었다. 하지만 모기 때문에 문을 열 엄두가 나지 않았다.

다음날 아침 자전거를 빌렸다. 선유도를 중심으로 무녀도·장자도·대장도가 다리로 연결되어 있는데, 그 섬들을 모두 돌아볼 참이었다. 자전거 대여점 주인의 말에 따르면, 한 시간쯤 걸린다고 했다.

힘차게 페달을 밟아 자갈길·모랫길을 지난다. 선유도에서 장자도로 넘어가는 산길은 꿀꽃·백리향꽃으로 해서 향기로웠다.

장자도로 넘어가는 다리는 길고 좁았다. 길이 268m에 너비 3m. 젊은이들이 낚싯대를 30여m 아래로 드리운 채 숨을 죽이고 있다. 우럭과 놀래미를 잡는다고 했다. 그런데 짙푸른 바다에는 우럭은 보이지 않고 학꽁치가 풍년이다. 학꽁치떼가 마치 국수 가락처럼 하늘하늘거린다. 시간이 있으면 낚시를 물에 드리우고 한가로움을 맘껏 즐기고 싶었다. 하지만….

깨끗한 모래밭이 없어서일까. 장자도에는 간판을 단 가게나 민박집이 보이지 않았다. 인적도 뚝 끊겼다. 덕분에 선착장은 작은 게와 갯강구 천지다. 장자도는 작지만 섬의 생태를 고스란히 보여주었다. 분홍 갯메꽃이 비탈을 덮었고, 찔레나무·산딸기 나무도 우거졌다. 그 숲에 기대어 수많은 곤충이 산다. 딱정벌레·쇠똥구리·길앞잡이·나비 등 잠시만 숲에 눈길을 주면 수많은 곤충과 만날 수 있다.

장자도는 멸치 종류인 까나리 액젓으로도 유명하다. 구수한 냄새가 진동하는 까나리 액젓 공장 앞에서 중년 부부가 하얀 플라스틱 통에 액젓을 담고 있다. 이 많은 액젓을 누가 사 가느냐고 묻자 챙이 긴 모자를 쓴 아낙이 “군산이나 서울로 가지요” 하고 대꾸했다.

선유도로 되돌아 나와 망주봉을 오르기로 했다. 다행히 썰물이 져서 망주봉 밑은 뻘밭이다. 개흙을 신발에 묻히며 망주봉 밑에 가 서니, 멀리서 본 것과 달리 가파르다. 작은 인수봉이라고나 할까. 암벽에 노란 원추리꽃이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있다.

암벽에 늘어뜨려진 밧줄을 잡고 10m쯤 올라가자 멀리 무녀도와 장자도의 일부분이 보였다. 잠시 앉아 호흡을 고르는데 나비 한 마리가 조는 듯 돌 위에 앉아 있다. 우리들의 위험한 산행을 안내할 참인가. 하지만 몇 걸음 더 내딛다가 돌아서야 했다. 생각보다 암벽이 가파르고 미끄러웠기 때문이다. 현지인의 안내 없이 오르기는 무리인 듯 싶었다.

다시 개펄을 통과해 나오는데 새로운 광경이 눈에 띈다. 작지만 빠른 움직임. 작은 생물들이 개펄을 지배하고 있었다. 농게·서해비단고둥·방게 따위가 정신 없이 개펄 위를 오락가락했다. 서너 가족이 그 옆에서 무언가를 잡고 있다. 맛조개와 바지락을 캐고 있었다. 아이들은 엄마 아빠의 손길을 신기한 듯 보고 또 보았다. 가끔 호미 끝에 조개가 딸려 나오자 아이들이 탄성을 질렀다. 해맑은 섬 아이들의 간이 체육대회

강원도 춘천에서 왔다는 최삼례씨(34)는 “동해는 많이 갔지만, 섬 여행은 처음이다. 이곳은 마치 살아 있는 자연 학습장 같다. 멀리서 보면 아무것도 없는 데 가까이 와서 보면 놀랄 만큼 많은 생명이 살고 있다.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지 않고 데려온 것이 마음에 걸렸는데, 개펄을 보니 오히려 데려오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라고 말했다.

선유초등학교에 들렀다. 더위를 식힐 참이었다. 커다란 은행나무 밑에 크고 작은 어린이들이 10여 명 서 있다. 선유초등학교 전교생. 선생님이 두 줄로 아이들을 세웠다. 돌멩이투성이인 운동장에서 이어달리기가 시작되었다. 농구대 2개를 손으로 찍고 오는 시합. 얼굴은 검었지만 아이들의 표정이 더없이 씩씩하고 맑다.

시합을 끝낸 아이들이 다가와 묻는다. “어디에서 왔어요?” “하늘에서.” 그냥 웃겨볼 생각이었는데, 아이들 표정은 그게 아니다. “날개 어디 있어요?” “왜 땅에 내려왔어요?” “나도 천사가 될 수 있어요?” 이런이런, 아이들은 어른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었다. 장난을 칠 생각이 아니었는데, 순수한 아이들에게 죄스러웠다.

중학교 체육을 맡고 있지만, 1주일에 두 차례씩 초등학생 체육을 지도한다는 선생님이 두 아이를 가리키며 말했다. “너무 정을 많이 주지 마세요.” 부모 없이 할아버지와 살기 때문에 정을 붙이면 쉽게 떨어지지 않는다고 했다. 슬픔이 밀물처럼 몰려왔다. 사람 사는 곳 어디에나 상처와 아픔은 있기 마련인가. 저처럼 해맑은 눈빛을 가진 아이들 마음에 누가 상처를 남겼을까.

마음을 추스르며 무녀도로 향했다. 무녀도는 춤을 추는 무녀처럼 생겼다 해서 붙은 이름. 1950년대에 이미 간척지를 16만여평이나 일군 덕에 지금은 고군산 군도 가운데 농산물을 가장 많이 생산한다.

곳곳이 온통 자갈길이다. 자갈이 바퀴에 튕길 때마다 자전거가 위태위태하다. 다리에 힘을 주고 좁은 길을 달린다.

바닷가도 자갈투성이였다. 알록달록한 조약돌들은 파도가 밀려오면 낯빛을 반짝이며 우르르 반겼다. 그리고 파도가 밀려가면 하얀 이를 내놓고 짜르르 웃었다. 게딱지 같은 집과 오래된 염전은 흑백 사진 같았다. 알 수 없는 그리움이 마음 가득히 고여 온다. 섬에서는 호기심덩어리가 되어야

군산항으로 가는 배는 하루에 두 번, 오후 12시 30분과 4시30분에 있다. 두 번째 배가 출항하려면 시간이 더 흘러야 했다. 자전거 페달을 굴러 선유도로 다시 나와 찾아간 곳은 망주봉 뒤쪽에 있는 마을 선유3구.

동네 입구 좁은 길 양쪽으로 어른 키만한 갈대가 우거졌다. 바람이 불 때마다 스사샤사사 하는 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왔다. 그곳은 마치 새들의 성역 같았다. 새들말고 어떤 생물이 살고 있는지 아무도 모른다. 뱀이 있는지, 개구리가 있는지.

때때로 새들이 걷는지 서걱서걱 소리가 들린다. 그 너머로 새들의 지저귐이 끝이 없다. 길 가운데 돗자리를 깔고 누우면 귀가 헐도록 새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선경이 따로 없었다.

여행은 일상 생활에서 졸고 있는 감정을 일깨우는 데 필요한 활력소이다. 섬 여행은 더 그렇다. 하지만 섬 여행에서 바다만 보고 돌아와서는 내면을 깨울 수 없다. 조금 더 땀을 흘리고, 조금 더 눈을 크게 떠야 한다. 그럴 때 육지에서는 경험하지 못한 정경이나 분위기·소리 같은 것을 만날 수 있다. 우리는 그것들을 머리 속에 생생히 새겨 넣고 오는 기술을 익혀야 한다. 그러려면 섬에서는 말 그대로 호기심덩어리가 되어야 한다.

오후 4시30분 군산행 여객선에 오른다. 그리고 아쉬움을 털어내듯이 카뮈가 했던 말을 중얼거려본다. “난 언제나 나를 순수하게 해주는 곳으로 가고 싶다.”

■ 여행 정보:군산 여객터미널에서 선유도 가는 배가 하루에 두 번 있다. 배삯은 어른이 편도 1만1천700원. 배 시간이 자주 바뀌므로 떠나기 전에 군산 여객터미널(0654-442 -0116)에 알아보는 것이 좋다. 차를 가지고 군산까지 갈 경우 여객터미널 주차장에 무료 주차할 수 있다.

선유도에는 민박집이 적지 않다. 대부분 식당을 겸하고 있는데, 비수기에는 방값이 2만원, 성수기에는 5만원 정도 한다. 밥값은 조개탕·매운탕이 딸려 나오는 백반이 5천원이다.

선유도에는 서해민박(0654-465-8787)·서울민박(465-464 2)·다정민박(466-4093)·신선민박(466-0561)이 있고, 장자도에서는 예민상회(466-2494) 장춘민박(465-2435)이 외지 손님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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