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정배 의원 “검찰 개혁 아직 멀었다”
  • 김은남 기자 (kensisapress.comr)
  • 승인 2004.02.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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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년간의 국정을 돌아보자면 더덕성 측면에서는 상당한 성과를 거뒀으되 생산성 측면에서는 아직 아쉬운 점이 많다."
"천신청 트리오는 여전히 건재하다. 셋 사이에 균열이 생겼다는 말은 우리 관계를 오해
대통령 주변 인물에 대해 온갖 독설을 서슴지 않는 유종필 민주당 대변인이 “그 사람이라면 큰소리칠 자격이 있다”라고 유일하게 인정하는 사람이 있다. 열린우리당 천정배 의원이다. 민주당 내 누구도 정치인 노무현을 거들떠보지 않을 때 노무현을 대통령감으로 점찍고 지지했던 유일한 사람, 이른바 ‘천신정(천정배·신기남·정동영) 트리오’의 일원으로서 열린우리당을 탄생시킨 창당의 주역 천정배 의원을 2월20일 만나 참여정부 1주년을 맞는 소회를 들어보았다.

노무현 정권 출범의 일등공신으로서 1주년을 맞는 감회가 남다를 듯하다.
돌이켜보면 지난 2년 간은 단 하루도 쉴 틈이 없었던 것 같다. 재작년은 대선, 작년은 창당을 위해 전력을 다했다. 본래는 민주당에서 정치 개혁·정당 개혁을 하려 했는데, 하다 보니 그것이 열린우리당 창당으로 이어졌다.

참여정부 1년 간의 공과를 평가한다면?
넓은 의미에서 보자면 정치의 과제는 두 가지라고 본다. 첫째는 생산성, 둘째는 도덕성. 흔히 돈 안드는 정치, 깨끗한 정치를 거론하곤 하는데, 나는 도덕성이 정치의 궁극적 목표가 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도덕성은 수단일 뿐 정치의 목적은 생산성이어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지난 1년 간의 국정을 돌아보자면 도덕성 측면에서는 상당한 성과를 거뒀으되 생산성 측면에서는 아직 아쉬운 점이 많다. 지난 1년간 우리 사회는 대통령 중심의 수직적·권위적 리더십이 수평적·분권적 리더십으로 넘어가는 변화를 겪었다. 그러나 민생 등 경제 현안을 해결하고 미래에 관한 국가적 비전을 마련하고 제시하는 데는 참여정부가 미흡했던 것 같다.

‘법무부 문민화’를 줄곧 주장해 왔는데 검찰 개혁은 어떻게 평가하는가?
권력이 검찰을 장악하던 과거의 관행을 완전히 없애버린 점은 노대통령의 업적이라 할 수 있다. 그렇지만 검찰이 독립성을 확보했다고 그것이 곧 검찰 개혁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독립했으되 막강한 권한을 자신들의 기득권 유지 수단으로 쓸 수도 있는 것이다. 따라서 검찰 개혁을 평가하려면 검찰 권력에 대한 국민적·민주적 통제 장치가 마련돼 있는지가 주요 기준이 돼야 할 것이다. 그런 면에서 나는 검찰 개혁을 유보적으로 보고 있다.

검찰 개혁이 더딘 원인이 검찰 내부에 있다고 보는가, 강금실 장관의 리더십에 있다고 보는가?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이다. 검찰 조직의 안정 확보가 최우선이다 보니 그럴 수밖에 없는 측면이 있지 않겠나 싶다. 여당이 소수 당이다 보니 입법에도 한계가 있는 거고.

지난해 10월 천의원은 이광재 전 국정상황실장을 지목하며 청와대 참모들에 대한 인적쇄신론을 제기했었다. 당시 노대통령이 천의원에게 전화해 ‘당신이 오해했다’고 했다던데, 정말 오해했었는가?
당시 대통령은 내가 가졌던 문제 의식에 동의하지 않으셨던 것 같다. 그렇지만 나 또한 대통령의 그같은 판단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말씀드렸다. 그때나 지금이나 내가 갖고 있는 문제 의식은 이거다. 정치란 민심에 의해 성적표가 그때그때 실시간으로 매겨지는 것이다. 따라서 개혁하려면 안정이 필수다. 불안정한 상태에서, 민심의 지지를 얻지 못한 상태에서 어떻게 개혁을 성공시킬 수 있겠나. 그런 면에서 보자면 참여정부에 아쉬운 점이 많다. 지금도 높은 지지율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니까. 그런데 당시 청와대나 정부에 있는 참모들은 이런 문제에 너무 둔감한 것 같았다.

최근 청와대 진용이 크게 바뀌었다. 인적 쇄신이 어느 정도 이뤄졌다고 보는가?
전반적으로는 긍정적이다. 안정 속 개혁을 추진할 가능성이 열리게 됐다고나 할까.

그렇지만 새 진용이 지나치게 테크너크랫 중심으로 구축되면서 개혁 그룹이 소외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잠시 침묵하다가) 사실 좀 걱정된다. 좀더 명확한 개혁 정체성을 가진 분들이 함께 진출해 전문가 출신 관료들과 서로 협력할 수 있는 체제를 짰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그렇지만 구체적인 면면을 따져보면 큰 문제가 될 것 같지는 않다. 과거에 명백하게 반개혁적인 입장을 취했던 이가 등용된 것은 아니니까.

이른바 천신정(천정배·신기남·정동영) 트리오는 건재한가? 당의장 경선 이후 셋 사이에 약간 균열이 생긴 것 같다는 뒷말도 많던데.
그런 말은 우리 관계를 오해해서 나오는 거다. 알다시피 우리 세 사람은 개성이나 표현 방식 등에서 크게 다르다. 그렇지만 정치 개혁, 신당 문제처럼 큰 결정을 해야 할 때는 세 사람이 늘 토론해 가며 완벽하게 의견을 일치시켜 일을 추진해 왔다. 청와대에 인적쇄신론을 제기할 때도 나 혼자 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발언은 천정배가 했지만 결정은 세 사람이 내렸다. 사전에 서로 내용을 충분히 공유한 뒤 내가 총대를 멨던 것이다.

세 사람은 권노갑 전 민주당 고문의 지원을 받아 성장했다는 공통점 또한 갖고 있다. 이를 원천적 한계로 지적하는 사람도 있는데.
엄밀히 말하자면 우리는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발탁된 사람들이다. 아래로부터의 경쟁이 아니라 김 전 대통령의 낙점에 의해 정치에 입문했고 국회의원이 됐다. 그것이 우리의 한계라면 한계다. 이를 부인하진 않겠다. 그렇지만 그 이상 도덕적인 흠결이 있다고 생각지는 않는다. 우리가 마포팀을 운영하는 데 권 전 고문이 도움을 준 사실은 있지만 개인적인 지원을 받거나 한 일은 일절 없었다.

정동영 의장 말대로 열린우리당이 오는 총선에서 100 석 이상을 얻는 게 가능하다고 보나?
충분히 실현 가능한 목표라고 생각한다. 100 석 정도가 아니라 그 이상도 가능하겠다는 기대를 하고 있다. 총선이 끝난 뒤 ‘정당의 존재 의미란 바로 이런 거다’라는 걸 우리당이 보여드릴 수 있을 것이다. 우리 국민들이 정말 현명하고 정확한 판단을 하고 있는 만큼 총선까지 앞으로 남은 50일 동안 엄청난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기대한다. 혁명기의 1주일은 평상시의 몇십 년에 해당한다고 하지 않는가.

추미애 의원이 최근 민주당 내 공천 혁명을 주장하며 한·민 공조를 비판하고 나왔다.
남의 당 얘기라 말하긴 뭣하지만 좀 우습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누구는 공천해서는 안된다고 추의원이 지목했다던데, 추의원이 민주당에 잔류했다는 건 그분들을 받아들였다는 뜻 아닌가? 그 분들이 공천을 받지 않는다는 전제 하에 추의원이 잔류를 결정했던 것도 아닐 텐데, 이제 와서 그 부분을 문제 삼으면 그 분들도 좀 어리둥절할 것 같다.

총선이 끝난 뒤 정치 관계법을 재정비할 수도 있다고 노대통령이 언급했는데, 열린우리당 정개특위 간사로서 이에 대한 생각은?
전적으로 동의한다. 16대 정개특위는 총선에 임박해 구성되는 바람에 문제가 많았다. 그렇지만 우리당이 야 3당과 야합 내지 담합했다는 비판을 받을 때는 답답했다. 위헌 판정을 받은 선거법을 개정하지 않으면 선거를 제때 치를 수 없는 형편이다 보니 우리당이 막판에 일정 정도 요구 사항을 양보한 측면은 있다. 그러나 우리가 담합할 이유는 전혀 없었다. 내가 만약 17대 국회에 다시 진출한다면 개원 즉시 정개특위를 설치하자고 제안할 것이다. 그때라면 국회의원 또한 기득권으로부터 자유로운 시기니까 좀더 바람직한 논의가 이뤄질 수 있을 것으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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