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장집 교수 '마녀 사냥' 덫에 걸렸나
  • 김 당 기자 ()
  • 승인 1998.11.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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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사, 저작물 왜곡해 ‘최장집=좌파’ 단죄… 한완상·김정남도 피해자
A는 B와 친하다. 그런데 B가 공산주의자이므로 A는 빨갱이다? 그렇다면 이런 논리도 가능할 법하다. ‘ㅈ 매체는 ㅎ 당과 가깝다. 그런데 ㅎ 당은 수구 반동 세력의 이익 집단이다. 따라서 ㅈ 매체는 수구 반동 세력의 이익을 대변하는 기관지이다.’ 이 또한 논리적 비약이다.

이것이 이분법 논리의 함정이다. 이분법 논리는 간명하고 호소력이 있지만, 그 논리에 의해 흑 또는 백으로 재단되는 사람에게는 ‘우정 어린 설복’보다는 ‘섬뜩한 적개심’으로 전달되기 십상이다. 최근 〈월간 조선〉이 대통령 자문 정책기획위원회 위원장 최장집 교수(고려대·정치학)의 6·25 전쟁관(觀)을 문제 삼은 사회적 파문도 그런 경우일 것이다.

이 논란은 10월19일 발행된 〈월간 조선〉(11월호)이 ‘최장집 교수의 충격적 6·25 전쟁관 연구’라는 기사에서 최교수를 ‘좌파’라고 단죄한 데서 비롯되었다. 한나라당은 즉각 ‘한국 현대사의 좌파적 시각을 규탄한다’는 대변인 성명을 내고 ‘최교수의 논리는 기존 한국 현대사의 해석을 송두리째 뒤엎는 것이며 그가 현정권의 핵심 정책 브레인이라는 점에서 현정권의 이데올로기 논쟁을 불러일으킬 위험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자민련 또한 공식 성명을 채택하지는 않았지만 최교수와 현정권의 사상 문제 쟁점화를 은근히 거들었다.

최교수가 10월23일 서울지법에 〈월간 조선〉 11월호 배포 금지 가처분 신청과 5억원 손해 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함으로써 이 논란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문제는 출판물에 의한 명예 훼손과 그에 따른 손해 배상 차원을 떠나 이 매체와 해당 언론사가 ‘즐겨 써먹는’ 특정인의 ‘색깔’에 대한 임의적 재단(裁斷)과 문제 제기 방식 그리고 ‘표적 보도’가 도덕적 정당성을 지니고 있느냐이다.

우선 〈월간 조선〉 기사는 최장집 교수가 쓴 〈한국 민주주의의 조건과 전망〉(96년)·〈한국 민주주의의 이론〉(93년)을 ‘연구’ 대상으로 삼아 최교수가 ‘좌파’라는 ‘충격적 결론’을 이끌어냈다. 그러나 문제는 이 결론이 최교수의 저작물을 연구한 결과라기보다는 기자의 ‘오독’ 아니면 ‘의도적으로 왜곡’한 결과일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이같은 가능성은 〈월간 조선〉이 기사의 제목으로 뽑은 ‘6·25는 김일성의 역사적 결단’이라는 인용문에서 쉽게 확인된다. 이 잡지는 이 제목을 강조하기 위해 제목 밑에 최교수의 저서에서 발췌한 다음과 같은 글을 네모 테두리로 둘러 도드라지게 편집했다.

‘김일성은 국내의 민중적 지지 기반, 다양한 정치 세력들의 대남한 강경 정책에 대한 정치적 물질적 정신적 도덕적 지원, 중국 공산당의 승리에 의한 사회주의 혁명에 대한 자신감 등 모든 대내외적 조건들이 압도적 우세에 있었다. 그의 우세에 대한 지나친 과신이 그를 전쟁을 통한 총체적 승리라는 유혹에서 헤어나올 수 없게 하였고, 결국 그는 전면전이라는 역사적 결단을 내렸던 것이다. 무엇보다도.’

문제는 〈월간 조선〉 기사의 제목을 뒷받침하는 이 핵심 논거(인용문)가 ‘무엇보다도’에서 멈추었다는 점이다. 최교수 저서에는 ‘무엇보다도’ 다음이 이렇게 기술되어 있다.

‘(무엇보다도) 김일성의 오판을 유도하였던 요소는 한반도의 국내 정치적 조건이라기보다는 국제 정치적 조건, 즉 급속하게 변하고 있었던 냉전 체제의 성격과 그곳에서의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치와 미국의 힘이었다.’<월간 조선> 터뜨리고 <조선일보> 확대 재생산

‘김일성의 오판’이라는 최교수의 가치 판단은 의도적으로 인용하지 않은 채, 한국의 정치 지형을 규정한 결정론적 의미를 내포한 ‘김일성의 역사적 결단’이라는 표현만을 부각해 마치 최교수가 남침 전쟁을 역사적 결단이라고 미화한 것처럼 왜곡한 것이다. 그런데도 이를 인용한 〈조선일보〉(10월20일자)는 ‘〈월간 조선〉 11월호에 6·25는 김일성의 위대한 결단이라는 기사로 실려 있다’라고 한술 더 떴다. 최교수가 논문에서 전혀 사용하지도 않은 ‘위대한’이라는 수식어까지 날조해 넣은 것이다. 〈월간 조선〉 기사와 이를 인용 보도한 〈조선일보〉 기사, 그리고 〈월간 조선〉이 ‘연구’한 최교수의 저서 및 최교수의 반박문 등을 비교 분석해 보면, 기사의 제목만 ‘최장집 교수의 충격적 6·25 전쟁관 연구’일 뿐이지 실제로는 ‘오독’이거나 ‘의도적 왜곡’의 결과임을 알 수 있다(〈표〉 6·25 전쟁관 논란의 핵심 쟁점 비교 참조).

또 다른 문제는 이같은 일련의 문제 제기 방식과 표적 보도가 사뭇 ‘경향성’과 ‘역사성’을 띠고 있다는 점이다. 사실 조선일보사의 ‘진보 인사 죽이기’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중에서도 전형적인 수법은 자매지인 〈월간 조선〉이 앞장서 선정적인 제목과 광고로 특정 인사를 공격하면 〈조선일보〉가 이를 요약 소개하는 형식으로 확산하는 것이다. 물론 그 표적은 주로 재야 운동권 출신이거나 진보 성향 공직자·지식인이고, 그 지렛대는 주로 이들의 저작물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문민 정부 초기에 이 매체의 표적이 된 당시 한완상 통일원장관과 김정남 교육문화수석이다. 〈월간 조선〉은 93년 8월호에서 한장관이 한국사회학회 회장으로 있던 92년 학회 이름으로 출간한 〈한국전쟁과 한국 사회 변동〉의 권두 논문 등을 근거로 ‘집중 취재-한완상의 충격적인 대북관’(최장원 기자) 기사를 실었다. 요컨대 한장관의 한국전쟁관은 수정주의 학설에 가깝고 북한측을 굳이 옹호하려는 논리라는 것이다. 그런 다음 이 매체는 93년 9월호에서 ‘조갑제의 국정 인터뷰-한완상 부총리와의 격론 4시간’ 기사를 실었다. 이 인터뷰 기사의 제목은 ‘북한을 흡수 통일할 수밖에 없는 상황까지도 피해야 한다’는 비교적 점잖은 것이었다.

그러나 〈월간 조선〉 조갑제 부장은 다시 10월호에서 보수 우익을 자처하는 이철승씨의 입(인터뷰 기사)을 빌려 △한완상 장관의 국가관은 문제 △흡수 이외의 통일 방안은 없다 △대한민국이 50세밖에 안됐는데 신한국 건설이라니… 등 한장관이 밝힌 통일·국가관과 김영삼 정부의 국정 목표까지 정면으로 공박했다. 계속해서 〈월간 조선〉과 〈조선일보〉의 끈질긴 표적이 된 한장관은 결국 12월 개각 때 물러났으며, 이후 YS의 대북 정책은 냉탕과 온탕을 넘나드는 갈지자걸음을 걸었다. 김정남 수석의 경우도 유사했다.

문제는 이같은 문제 제기 방식이 특정인의 색깔을 문제 삼아 정권의 정체성과 연결하는 의도된 매카시즘 공세라는 성격을 띠고 있다는 점이다. 일종의 ‘마녀 사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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