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 야구 구단 ‘전지 훈련 성적표’
  • 기영노 (스포츠 평론가) ()
  • 승인 2004.03.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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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 야구 전지 훈련 ‘명암’…심정수, 부상 딛고 홈런포 ‘예열’
프로 야구 8개 구단이 미국·호주·일본에서 해외 전지 훈련을 끝내고 귀국할 채비를 하고 있다. 프로 야구의 그 해 성적은 전지훈련지에서 8할 이상이 결정된다. 전지훈련지에서 그 팀의 최대 화제가 무엇이었느냐에 따라 올 시즌 그 팀이 어느 선수에게 큰 기대를 하고, 또한 아킬레스건이 무엇인지 드러나는 것이다.

노장은 죽지 않는다. 그리고 사라지지도 않는다. 롯데 자이언츠 박정태(35)가 호주와 일본 전지 훈련에서 연일 회춘(回春)타를 터뜨렸다. 박정태는 누구보다 먼저 훈련장에 나가 강도 높고 많은 훈련량으로 솔선수범하며 팀 분위기를 추스른다. 박정태에게 지난 3년은 잊고 싶은 기간이다. 팀이 꼴찌로 추락했으며 개인 성적은 곤두박질했고, 잦은 부상과 체력 열세로 주전에서 밀려나는 아픔을 맛보았다. 박정태는 호주 골드코스트 팜메도 구장에서 벌어진 자체 청백전에서 네 차례 선발로 나와 13타수 8안타로 6할 이상의 타율을 기록하며 재기에 성공했다.

하와이와 오키나와에서 훈련한 삼성 라이온즈 팀 분위기는 시종일관 무거웠다. 팀의 주축 선수 양준혁(35)의 부상 때문이다. 엉치뼈 부상 후유증에 신음하던 양준혁은 전지 훈련을 완전히 포기했다. 그는 1월 말 베이스러닝을 하다가 넘어져 왼쪽 엉치뼈를 다친 뒤 부상 부위에 물이 차 오르는 증상을 보였다. 양준혁은 치료가 완전히 끝난 뒤 훈련하자는 코칭 스태프의 권유에 따라 2월15일 하와이 마우이 섬 캠프에서 중도 귀국했다. 삼성은 지난해 말 자유계약선수(FA) 이승엽(일본 롯데) 마해영(기아 타이거즈) 등이 빠져나가 올 시즌 전망이 불투명한 가운데 양준혁마저 쓰러진 것이다.

일본에서 훈련한 SK와이번스의 톱 뉴스는 단연 엄정욱(23)이 제구력을 회복한 것이다. 엄정욱은 시속 158km의 국내 최고 강속구를 자랑했지만 제구력이 형편없어 그저 그런 투수로 분류되었다. 그런데 지난 2월20일 오키나와의 고진다 구장에서 열린 니혼햄 1.5군과의 연습 경기에서 선발 3이닝 동안 2안타 무실점으로 일본 타선을 제압했다. 시속 155㎞의 직구와 100㎞대 변화구로 강약을 조절하면서 삼진 3개를 기록했다. 제구력이 안정된 덕분에 볼넷은 1개밖에 나오지 않았다. 과연 올해는 엄정욱의 광속구가 빛을 발할지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일본에서 훈련한 LG 트윈스는 지난해 6월 왼쪽 무릎 수술을 받은 이병규(32)의 부활이 단연 화제다. 이병규는 2월25일 일본 오키나와 기타타니 구장에서 열린 주니치 1군과의 연습 경기에서 3번 중견수로 출전해, 선발 미야코시의 129㎞짜리 체인지업을 밀어쳐 좌중월 1점 홈런을 터뜨렸다. 국내 최고의 중거리 타자인 이병규는 타격의 정교함까지 회복했다.
일본에서 훈련한 두산 베어스에서는 손 혁 투수(31)의 훈련 방식이 뉴스였다. 손 혁은 프로 야구 사상 처음 개인 훈련을 했다. 지난해 12월 미국 여자 프로 골프 LPGA투어에서 활약하는 한희원과 결혼한 후 2월6일부터 샌디에이고에서 부인과 함께 ‘합숙’훈련을 했다. 두산은 만약 손 혁이 좋은 성적을 올리면 내년부터는 유부남 선수들이 너도나도 부인과 합숙 훈련을 하겠다고 신청을 할까 봐 걱정이다.

‘제2의 선동렬’ 김진우가 무릎 부상으로 쓰러진 기아 타이거즈는 김주형(19)이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는 것이 위안이다. ‘제2의 김동주’로 기대를 모으는 김주형은 연습 경기에서 3할대 타율을 유지했다. 김주형은 기아가 지난해 1차 지명에서 김수화(롯데)를 포기하고 차세대 4번 타자감으로 낙점한 대형 슬러거다. 광주 동성고 출신으로 185㎝, 93㎏의 좋은 체격이며, 3루수를 맡게 된다. 타격은 당장 1군에 올려도 통할 정도지만 거친 수비가 문제다.

과연 ‘굴러 들어온 복’이냐 아니면 ‘애물’이냐. 한화 이글스 문동환(32)이 시험 무대에 올랐다. 문동환은 2000년 이후 세 차례나 수술대에 올랐고, 2002년 17경기에 등판해 2승7패 성적을 남기고 오른쪽 팔꿈치 수술을 했다. 지난해는 자유 계약 정수근의 보상 선수로 두산으로 갈 운명이었다가 포수 채상병과의 맞트레이드 형식으로 한화에 자리를 잡았다. 문동환은 1998년 12승, 1999년 17승을 기록한 데에서 보듯 기량만은 누구나 인정할 만한 수준이다. 만약 문동환이 재기에 성공하면 이상목이 빠져나간 공백이 전혀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한화의 투수 로테이션은 원활해진다.

미국 플로리다와 하와이에서 전지 훈련을 한 현대 유니콘스는 연봉 6억원인 심정수(29)가 부상해 한때 비상이 걸렸다. 심정수는 지난해 중반부터 무릎-허벅지-어깨로 이어지는 신체의 오른쪽 부위에 말썽이 생긴 것이다. 전지 훈련을 떠나기 전 고양시 원당 구장에서 배팅을 하다 왼쪽 팔꿈치에 통증을 느꼈고, 타격 폼도 무너졌다. 그러나 다행히 임팩트에 앞서 오른쪽 팔꿈치가 들리는 현상 등을 곧바로 손질해 타격의 정확도와 힘을 살려냈다. 심정수는 올해 3년 연속 40 홈런에 도전한다.

심정수는 2002년 46 홈런, 지난해 53 홈런에 이어 올해도 40 홈런 이상을 쳐 한국 프로 야구 역사를 새로 쓸 각오다. 3년 연속 40 홈런은 이승엽도 이루지 못한 대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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