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독료 자동 이체는 혁명이다?
  • 김영욱 (한국언론재단 책임연구위원) ()
  • 승인 2004.03.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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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 판매 투명성·합리성 높여…중소 매체, 유통 구조 개혁해야 생존 가능
신문 판매 시장이 흔들리고 있다. 중앙일보가 1월부터 자동 이체 독자에게 구독료를 1만2천원에서 1만원으로 내렸고, 조선일보도 바로 뒤따랐다. 두 신문 외에는 아직 구독료 인하를 공식으로 밝힌 신문은 없다. 하지만 판매 현장에서는 벌써 가격 인하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3월10일자 한겨레 보도에 따르면, 동아일보 몇몇 지국이 구독료를 1만원으로 내렸고, 한국일보와 경향신문 일부 지국은 3월부터 구독료를 6천∼7천 원만 받는 판촉 활동을 벌이고 있다.

현재 한국의 신문들은 지대(구독료와 가판 판매) 수입과 광고 수입 비율이 2 대 8 정도다. 원칙적으로 광고주의 영향력을 덜 받으려면 지대 수입 비율을 높여야 한다. 신문의 경영 안정을 위해서도 그렇다. 광고는 경기에 민감하기 때문이다. 신문들이 구독료를 올리면 올렸지 내릴 상황이 아닌 것이다.
그렇다면 중앙일보는 왜 구독료를 내렸을까? 자본력을 바탕으로 작은 신문들을 시장에서 몰아내기 위한 것인가, 아니면 조선과의 1위 경쟁에서 선두를 차지하기 위한 전략일까? 그런 전략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달리 생각해보면 구독료 자동 이체 납부가 장기적으로는 신문 판매 시장의 투명성과 합리성을 한 단계 높일 계기가 될 수 있다.

국내 신문 판매 시장은 불투명하고 복잡한 영업망을 유지하고 있다. 배달을 담당하는 지국장은 본사와 계약을 맺고 있는 자영업자다. 독자가 지로를 통해 지불한 구독료는 지국장 손에 들어간다. 신문에 끼워진 전단 광고를 통한 수입도 지국 몫이다.

이 때 납입금은 유료 독자 수를 근거로 일정한 비율에 따라 산정하는 것이 아니라, 본사가 정한다. 이 과정에서 지국장에 대한 착취가 형성될 수 있다. 지국장이 직접 배달하고 가족까지 동원해야 겨우 노동력에 해당하는 수입을 올릴 수 있는 경우도 적지 않다. 지국장이 살아 남기 위해서는 과도한 경품이나 무가지 등 판촉도 해야 한다. 물론 일부 상당한 수입을 올리는 지국장도 있다.

그렇다고 신문사가 큰 수익을 올리는 것은 아니다. 일부 신문사를 제외하면 지대 수입은 대부분 판촉지원금이나 본사 판매국 인건비 등으로 지출된다. 대부분의 신문사는 독자가 누구인지, 유료 부수가 얼마인지조차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독자 명부를 지국장이 가지고 있기 때문에 독자가 거주지를 옮기면 추적이 되지 않는다. 신문 절독률이 높은 이유 가운데 하나다.

이런 여건에서 신문 판촉을 둘러싼 무한 경쟁은 새로운 독자를 확보하기보다는 다른 신문 독자를 빼앗아 오는 경쟁에 불과하다. 신문 가격이 문제라기보다는 독자가 낸 구독료가 실수익으로 전환되지 못하는 현재의 불투명한 시장 구조가 문제인 것이다. 구독료 자동 이체는 그런 문제를 타개할 수 있는 하나의 대안이다. 자동 이체를 하게 되면, 구독료가 본사로 입금되어 본사가 독자 명단을 확보할 수 있다. 체계적으로 독자를 관리할 수 있고 절독률도 낮아질 것이다. 독자가 이사를 가면 새 주소로 배달할 수 있고, 이를 통해 판촉 비용이 절감될 수 있다. 신문은 공짜라는 독자의 인식도 바꿀 수 있다.

구독료 자동 납부 도입은 신문 산업에 중요한 신호를 보내고 있다. 현재와 같은 시스템으로는 시장에서 생존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신문들이 동일한 가격을 유지한 채 적당히 경쟁하다가 경기가 살아나 광고가 호전되기를 기다린다면, 결국 거대 신문만이 남게 될 것이다. 발행 부수가 적은 신문들은 공동배달제 같은 유통 구조 개혁을 통해 생존을 모색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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