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핵, 21세기 흑사병 되려나
  • 전상일 (환경보건학 박사, www.eandh.org) ()
  • 승인 2004.03.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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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 폭발적으로 발생…‘슈퍼 균’ 퍼지면 대재앙 올 수도
1882년 3월24일. 괴테를 존경했던 독일인 의사 로버트 코흐는 베를린에서 열린 한 학회에서 결핵균을 분리하는 데 성공했다는 사실을 세상에 알렸다. 그 뒤 이 날은 ‘세계 결핵의 날’로 지정되었다. 그가 세상을 떠난 지 100년. 그렇지만 인류는 아직 결핵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금도 전세계에서 결핵으로 15초에 1명씩 죽어가고 있다.

최근 한국 질병관리본부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결핵 문제는 남의 나라 얘기가 아니다. 현재 한국인의 3분의 1이 결핵 감염자인 것으로 추정된다. 2002년 국내에서 결핵으로 사망한 사람은 인구 10만명당 7명이다. 이는 일본의 3.9배, 미국의 22.3배에 해당한다.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전체 회원국 가운데에서도 가장 높은 수치이다. 해마다 연말에 ‘크리스마스 씰’까지 발행하며 결핵 퇴치를 위해 노력해온 것을 생각하면 허탈하기까지 하다.
결핵은 만성 전염성 질환으로, 주로 결핵 환자가 기침이나 재채기를 할 때 배출하는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미세한 입자를 통해 전파된다. 인체 어느 부위에서나 발생할 수 있지만, 결핵균이 가장 침범하기 쉬운 곳이 폐이기 때문에 폐결핵이 제일 많다.

한때 박멸이 임박한 것으로 여겨졌던 결핵이 사라지지 않고 활개를 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기존 결핵약을 무용지물로 만든 다중약물내성(multi-drug resistant;MDR)을 지닌 ‘슈퍼 균’이 가장 큰 원인이라고 손꼽는다. 이는 결핵균을 죽일 만큼의 약을 복용하지 않았거나, 치료 도중 약 복용을 중지해 생겨난 것으로 보인다. ‘홈리스족’과 같이 절대 빈곤에 시달리는 인구가 증가하는 것도 문제다. 적절한 영양 섭취와 개인 위생에 신경 쓸 수 없는 이들에게 결핵은 준비된 질병이다.

해외 여행객 증가도 결핵 전파에 기여한다. 에이즈를 유발하는 HIV 감염자의 급증은 결핵 사망률을 높이는 주요 요인이다. 결핵은 면역력이 저하된 HIV 감염자가 가장 걸리기 쉬운 질병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에이즈 사망자 3명 중 1명은 결핵으로 사망한다. 이에 따라 세계보건기구(WHO)는 결핵과 에이즈를 동시에 관리하는 프로그램을 시행할 계획이다. 흡연이 폐결핵 환자의 사망 위험을 높인다는 연구 결과도 나와 있다.

최근 세계보건기구는 중국에서 결핵이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는 보고서를 제출했다. 그들의 대부분은 다중약물내성 결핵 환자인 것으로 밝혀졌다. 문제는 결핵이 공기로 전파되고, 일단 다중약물내성 결핵 환자로부터 감염된 사람은 곧바로 다중약물내성 결핵 환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세계 전문가들은 중국이 결핵 관리에 실패할 경우 전세계가 ‘결핵 대란’을 겪게 되지 않을까 노심초사하고 있다.

결핵 퇴치를 위한 노력도 발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새로운 약제가 개발되고 있고, 결핵의 심각성을 알리는 캠페인도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핵심은 돈이다. 약값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아프리카와 옛 소련 국가들에서 결핵이 만연한 것이 이를 입증한다. 빌 게이츠는 결핵 퇴치 자금으로 8천3백만 달러를 내놓았다. 결핵은 인류가 직면한 문제를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질병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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