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 풀기 등 준비 과정
  • 유현석 (자유 기고가) ()
  • 승인 2004.04.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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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장비 ‘꼼꼼히’ 체력·기술 ‘든든히’
보기에도 아찔한 절벽에 매달려 커피를 마시고 잠을 잔다? 산악 영화 에 그런 장면이 나온다. 나는 부러움과 시샘 속에서 그 영화를 몇 번이고 보았다. 영화 스토리와 대사를 거의 다 외우게 되었을 무렵, 나는 영화 속 인물이 되고 싶어 장비를 구입하고 북한산과 도봉산의 바위에 오르기 위해 배낭을 꾸렸다.

하지만 단 한 번도 성공하지 못했다. 커피를 마시기커녕 절벽 아래에서 절벽을 오르는 사람들만 구경하다가 산을 내려왔다. 나름으로 준비를 철저히 했지만 막상 거대한 암벽을 마주하고 섰을 때 두려움을 감당하기 힘들었고, 그 곳을 오를 기술이 부족하다는 것을 절감했던 것이다. 10년 전 일이다.

암벽 등반 전문가인 김인경씨(31·매드락 클라이밍팀)를 만나기로 한 날, 해묵은 장비를 꺼내 만지작거리다가 약속 장소인 서울 응봉동 실외 암장으로 향했다. 응봉동 암장에는 너비 14m, 높이 15m에 이르는 경기용 인공 암벽과 너비 12m, 높이 3m인 연습용 암벽이 세워져 있다.

두 암벽에는 평일인데도 직장인으로 보이는 젊은 사내들과 주부, 어린이 등 열대여섯 명이 ‘놀이’하듯이 붙어 있었다. 잠시 옛 기억을 되살려 일명 볼더링이라고 불리는 연습용 암벽에 매달려 보았다. 하지만 채 10초를 버티지 못했다. 몇 번이고 붙어 보았지만 마찬가지였다. 무엇보다 팔이 아팠고, 구두를 신고 간 탓에 체중이 실린 발이 볼트에서 번번이 미끄러졌다.

낙담하는 사이 김인경씨가 왔다. 첫눈에 보기에도 그녀는 걸음걸이부터가 달랐다. 날렵했다. 그녀는 요즘 2004년 월드컵 익스트림대회 한국 대표 선발전을 앞두고 맹훈련 중이라고 했다. 김씨는 준비해 온 장비들을 꺼내며 말했다. “암벽 등반에서 장비는 생명과 직결되는 필수품이기 때문에 장비를 살 때는 반드시 CE(유럽 공업 표준)나 UIAA(국제산악연맹) 인증 마크가 찍혀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암벽 등반은 기술을 익히고 체력을 만들기에 앞서 그것을 뒷받침할 기본 장비를 갖추어야 한다. 인공 암벽이냐 자연 암벽이냐에 따라 장비를 각각 달리 준비해야 한다. 그녀가 펼쳐놓은 인공 암벽 등반 기본 장비는 모두 여섯 가지. 암벽화, 안전 벨트, 퀵드로, 초크와 초크백, 등반용 테이프, 60m 자일 1동. 그녀가 펼쳐놓은 장비를 다 갖추려면 대략 30만~40만 원이 든다.

하지만 인공 암벽 등반에서 이러한 장비들이 모두 필요한 것은 아니다. 높이가 낮은 실내 암장의 경우, 암벽화(7만~12만 원)와 초크백(2만~4만 원) 정도만 갖추어도 된다.

본격 등반에 앞서 김인경씨가 바닥에 주저앉아 몸을 풀었다. 암벽 등반은 허공에서 온몸을 써야 하는 ‘예술’이므로 초보가 아닌 사람이라도 사전에 충분히 근육을 풀어주어야 한다. 평소 자신의 운동량만 믿고 섣불리 암벽에 매달렸다가는 낭패하기 십상이라는 것이다.

김씨의 몸 풀기는 먼저 다리부터 시작해 허리와 팔, 손과 어깨 그리고 목 순서로 진행되었다. 그녀의 동작을 흉내 내려다 그만두었다. 제대로 복장을 갖추지 않은 탓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다리 근육 풀기를 따라 할 수가 없었다. 그녀는 한쪽 다리를 앞쪽을 향해 곧게 내뻗고 다른 쪽 다리의 발꿈치를 엉덩이에 붙인 상태에서 자신의 배 부분을 몇 번이고 바닥에 밀착시켰다. 옆에서 그녀의 자세 하나하나를 카메라에 담던 사진기자가 ‘요가의 몸동작을 연상시킨다’고 한마디 했다.
등반 준비를 마친 그녀에게 초보자들이 암벽 등반에 취미를 붙이고 숙련된 기술을 익히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지 물어보았다. “첫째는 좋은 스승을 만나는 것이 중요하다. 스승을 잘 만나야 반복 연습을 통해 자세를 교정하고 제대로 된 기술을 익힐 수 있다. 또한 스스로 암벽 등반에 재미를 느껴야 한다.”

초보자는 두 가지 외에도, 암벽 등반이 ‘힘과 기술의 조화’라는 사실을 절대 잊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힘을 키웠다고 해서, 혹은 기술을 완벽하게 구사할 줄 안다고 해서 암벽 등반을 잘 해낸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힘과 기술을 슬기롭게 쓰는 방법을 잊어버리고 무리하게 밀어붙이다가는 다친다는 것이다.

김씨는, 만일 주변에 암벽 등반을 가르쳐 줄만한 좋은 스승이 없다면 산악 관련 단체들이 운영하는 암벽 등반 프로그램에 참여하거나, 인공 암벽 등반 시설이 있는 사설 교육기관을 찾으라고 말한다. 그곳에 가면 암벽 등반 고수들은 물론 좋은 스승을 여럿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프로그램 운영 주체마다 다소 차이가 있지만, 월 5만~7만 원 정도 회비를 내면 암벽 등반 기술을 배울 수 있다. 샤워장과 체력단련장 등 딸린 시설도 이용할 수 있다. 현재 서울에는 크린프(당산동) 난나(강북구청) 서울 클라이밍센터(용두동), 백두대간 인공오름벽(용산구) 등 인공 암장이 설치되어 있는 곳이 10곳이 넘는다. 인터넷 검색에서 ‘인공 암벽’을 입력하면 이들 암장의 정확한 위치를 찾아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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