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랩 등반 실전 연습
  • 유현석 (자유 기고가) ()
  • 승인 2004.04.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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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은 바위와 ‘수평’ 발은 언제나 ‘11자’
지난 2주간 인공 암벽 오르기에 대한 기초를 익히면서 나름으로 여러 가지 재미를 느꼈다. 길을 가다가도 건물 외벽에 돌출된 부위가 눈에 띄면 인공 암벽의 홀드가 떠올라 잡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하지만 진짜 재미는 이제부터. 인공 암벽에서 익힌 다양한 동작과 기술을 이용해 자연 암벽을 오르는 것이다.

“인공 암벽과 자연 암벽은 홀드부터 다르다. 인공 암벽은 팔의 길이 안에서 쓸 수 있는 홀드가 많지만 자연 암벽은 결코 그렇지 않다. 정해진 홀드가 따로 없다.” 자연 암벽 등반을 앞두고 김인경씨는 주의 사항부터 단단히 일러주었다. 인공 암벽을 등반할 때와 마찬가지로 스트레칭을 충분히 하고, 매듭을 한 다음에는 상반된 방향으로 몇 번이고 당겨보며 매듭이 풀리지 않는지 거듭 확인하라는 것이다. 아울러, 등반 장비에 대한 점검도 잊지 말라고 당부했다.

자연 암벽을 오르기 위해서는 인공 암벽에서 사용했던 장비말고도 기본 장비가 몇 가지 더 필요하다. 확보를 할 때 바위틈에 끼울 수 있는 캠(Cames)-캐머롯·케이블 프렌드·너트 등-종류와 로프를 이용해서 몸을 끌어 올리는 주마, 하강할 때 로프의 마찰력과 체중을 견뎌주는 하강기, 잠금 카라비너, 확보줄 등이 그것이다.

인공 암벽에서는 자일의 사용 여부에 따라 일명 ‘빌레이’(Belay)를 보아줄 확보자를 정해야 하지만 자연 암벽 등반에는 1명의 확보자가 반드시 필요하다. 자연 암벽 등반에는 2인이 1개 팀을 이루어 호흡을 맞추어야 하는 것이다. 이때 빌레이를 보아 줄 다른 한 명은 암벽 등반에 대해 어느 정도 경험이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김씨는 “빌레이는 누구나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초보자가 빌레이를 보겠다고 나서면 등반을 삼가는 게 좋다. 암벽을 탈 때 등반자와 대화를 주고받으며 추락에 대한 대비도 해야 하므로 빌레이를 보는 사람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자연 암벽 등반을 앞두고 ‘내가 빌레이를 보면 어떻겠느냐’고 말을 꺼냈다가 김씨로부터 핀잔을 들었다. 2주간의 인공 암벽 등반으로는 빌레이를 볼 ‘자격’이 없었다. 이번 자연 암벽 등반에는 김씨의 후배 박소정씨가 빌레이 역할 겸 도움을 주기 위해 동행했다.

“발에 체중을 싣는 법과 바른 자세를 익히는 데 주안점을 두어라.” 자일을 몸에 묶고 오르고자 하는 바위 앞에 섰을 때, 김씨가 한마디 했다. 그녀의 말을 떠올리며 바위를 향해 한 걸음을 떼어놓으려는 순간, 이번에는 다소 격앙된 목소리가 들려왔다. “준비가 끝났으면 반드시 ‘출발한다’고 확보자에게 소리쳐라. 그런 다음 ‘출발하라’는 말이 떨어지면 등반을 시작하라.”

그녀의 말대로, 암벽 등반을 하려면 등반자와 확보자는 ‘출발’ ‘완료’ ‘대기’ ‘추락’ 등 사전에 약속된 간단 명료한 신호를 주고받을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등반자는 확보자의 반복 확인 신호가 떨어지지 않으면 절대로 등반을 계속해서는 안된다.

자연 암벽 등반은 경사 40~60°의 슬랩을 오르는 것부터 시작했다. 인공 암벽에서 배운 여러 기술과 자세를 점검하는 데는 여러 형태의 바위 중에서도 슬랩이 제격이라는 것이 김씨의 설명이다. 슬랩 등반을 할 때도 몸은 바위 면과 수평을 유지해야 한다. 다리는 어깨 너비로 벌리고 발은 뒤꿈치를 든 상태에서 항상 11자를 유지해야 하며, 손바닥을 곧게 펴서 바위를 짚고 몸의 균형을 잡아야 한다.

겁 먹고 엉덩이 높이 들면 추락한다

“엉덩이가 하늘로 올라갔다. 몸의 중심을 좀더 앞으로 당기고, 발을 옮길 때는 될 수 있는 한 무릎 정도의 높이를 넘지 않게 하라.” 나와 함께 나란히 슬랩을 오르며 자세를 교정해 주던 김씨는, 바위에서는 무엇보다 겁을 먹지 않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암벽화와 자일을 믿고 배운 대로 몸을 움직이라는 것이다. 초보자들은 추락에 대한 불안감 때문에 흔히 엉덩이가 올라간 자세를 취하는 데, 그런 경우에는 오히려 바위에서 몸이 이탈할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배운 대로 자세를 취해도 바위에서 미끄러질 수 있다. 그런 상황에서는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물어보았다. “몸을 바위와 수평이 되게 하고 발을 11자로 유지하면서 손바닥을 바위에 붙여야 한다. 그렇게 하면 미끄러지던 몸이 곧 멈춘다. 몸을 바위에 밀착할수록 추락 시간은 길어지고 무릎과 팔, 얼굴 등에 찰과상을 입을 수 있다. 처음에 배운 대로 하라.”

목표 지점까지 오른 뒤 안전하게 내려오는 방법도 암벽 등반에서 중요한 요소이다. 암벽에서 내려올 때는 특히 손과 발의 위치에 신경을 써야 한다. 발은 ㄴ자를 유지해야 하며, 하강기 아래쪽에서 제동을 하는 한 쪽 손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몸 뒤로 풀려나간 자일을 놓지 말아야 한다. 제동 손에 쥔 자일을 놓을 경우, 몸이 균형을 잃고 그대로 추락할 수 있다.

김씨는 암벽에서 하강할 때 하강기 위쪽 자일을 쥔 손의 위치도 강조했다. “초보자들은 제동 손의 위치만 신경 쓰다가 하강기 위쪽 손의 위치를 까먹는 경우가 종종 있다. 하강기 위쪽 손은 안면 높이에 두고 자일을 부드럽게 쥐어라. 손의 위치가 지나치게 아래로 내려오면 하강기에 손가락이 딸려 들어가는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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