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군 지리지 펴내는 ‘문화 벤처 기업’
  • 許匡畯 기자 ()
  • 승인 1997.05.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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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 여유가 생기면 자기가 선 자리를 다시 되짚어 보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사람도 그렇고 행정도 그렇다. 지방자치제 실시 뒤 각 자치단체가 자기 지역의 뿌리와 속살림을 궁금히 여겨 속속들이 살펴보고, 그 결과를 공을 들여 책으로 묶어내는 데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시·군이 펴내는 시·군지(市郡誌)야 기왕에 있어온 것이지만, 최근 수삼 년 사이에 나온 몇몇은 고정된 틀을 훌쩍 벗어나 있어 보는 이를 놀라게 한다. <파주군지> <구리시지> <순천시사> 등이 그것이다. 이 책들은 큼직한 활자와 시원한 여백, 화려한 장정과 사진·도판 등 볼거리들 때문에 관청이 펴낸 책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다.

시·군지가 이렇게 진화하게 된 데는 디자인과 편집을 담당한 산파역 ‘큰기획’(02-268-6832)의 공이 컸다. 이들은 지도 한 장 그리는 데서부터 종이 질을 선택하는 데 이르기까지 꼼꼼한 일솜씨로 이같은 성과를 만들어냈다. 이기만 실장(37·오른쪽)은, 역사에 남을 자료가 될 뿐 아니라 시(군)민에게 읽히는 책을 만들어야 한다고 자치단체를 설득했다고 말한다.

2천5백~3천 쪽에 이르는 책을 펴내자니 1년 넘게 작업에 매달려도 돈벌이가 되기는커녕 적자로 끝나기 일쑤다. 그러나 이들을 지탱하는 것은 ‘문화 벤처 기업’다운 패기다. 신(新) 지리지의 이정표를 세운다는 것과 미래를 위해 문화에 투자한다는 자부심이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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