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희 기념 논문집 내며 “인생은 이제부터”
  • 김상익 기자 ()
  • 승인 1996.07.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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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 초 법무부장관을 지낸 이종원 변호사(70)는 최근 우여곡절 끝에 고희 기념 논문집 <법과 경제>를 펴냈다. 우여곡절이란 다름이 아니다. 그는 물리적으로 늙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원기 왕성한 ‘현역’이다. 지난 7월5일 오후 5시 기자가 인터뷰하기 위해 서울 을지로 입구 내외빌딩 14층 사무실로 찾아갔을 때 그는 하루 종일 법원에 있다가 방금 돌아온 참이었다. 이처럼 일에 몰두하는 이씨가 일흔이라는 나이를 공식화하는 고희 기념 논문집 출간을 꺼린 것은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주위 사람들이 고희 기념 논문집을 기획한 것은 1년 전인 95년 6월이었다. 간행위원회가 조직되고, 원고 청탁이 끝나 일부 논문이 들어왔을 때 그는 갑자기 책을 내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 이유를 그는 농반 진반으로 이렇게 말했다. “이 나이에 기념 행사를 가진다면, 우선 다른 무엇인가(이를테면 축의금)를 바라는 것이 아닌가 하는 오해를 살 수 있고, 나이 든 변호사에게는 늙은 의뢰인만 몰려들어 사업에 지장이 있다.”

그러다가 일흔번째 생일을 맞은 올해 들어 생각이 바뀌어 기념 논문집을 내기로 했다. 지나온 인생을 결산하고 여생을 긍정적으로 변화시키는 계기로 삼아야겠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렇게 해서 간행위원회 65명, 원고 집필자 70명에, 1천4백70쪽 분량인 방대한 논문집이 간행되었다.

이변호사의 경력은 매우 화려하다. 진보적 지식인에게는 결코 달가운 소리를 듣지 못하겠지만, 49년 제3회 조선변호사시험에 합격해 해군 법무관을 거쳐 53년부터 검찰에 몸을 담은 이후 공안 검사로서 동백림 사건(67년) 통일혁명당 사건(68년) 등 나라 전체를 뒤흔든 큰 사건을 담당했다. ‘빨갱이 때려잡는 검사’로 얼마나 명성이 높았던지, 그는 북한의 김일성이 독침으로 암살하기 위해 간첩단까지 보냈다는 일화를 남기고 있다. 법무부 차관이던 77년에는 박동선 사건 처리를 위한 한·미 수사 공조 회담에 한국측 수석 대표로 참가하기도 했다. 81년 4월 법무부장관으로 발탁되었다가 82년 이철희·장영자 사건이 터져 내각이 총사퇴할 때 공직에서 물러나 그때부터 14년간 변호사 생활을 해오고 있다.

그는 지나온 날에 관심이 없다. 칠순 나이에도 수상 스키를 즐기는 그는 ‘인생은 칠십부터’를 실천하겠다며, 일본 노인들 사이에 유행하는 농담을 들려준다. “오십·육십은 꽃봉오리, 칠십·팔십은 꽃이 한창 피는 시기, 구십에 저승에서 염라대왕이 데리러 오거들랑 ‘백살까지 기다리라’ 말하고 쫓아 버려라.”

1925년 생인 그는 백살까지 인생을 즐기자는 뜻에서 LG그룹 구자경 명예 회장 같은 동갑내기들과 함께 ‘2025 클럽’을 만들었다. 목표를 세우고 끊임없이 변화를 추구해야 영원한 젊음을 누릴 수 있다는 그의 ‘계획 인생론’이 비단 노인들에게만 해당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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