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트 따라 절벽 오르기
  • 유현석 (자유 기고가) ()
  • 승인 2004.05.04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손목 꺾지 말고 손끝 구부려라
간현 암벽에서 1주일 만에 ‘스승’ 김인경씨를 다시 만났다. 강원도 원주시에 있는 간현 암벽은 암벽 등반 중에서도 스포츠 클라이밍의 ‘묘미’를 맛본 사람들한테는 익히 알려진 곳이다. 널찍한 크기의 인공 암벽을 연상시키는 이곳 바위에는 이미 20개 이상의 루트가 개척되어 있다.

간현 암벽 같은 곳은 전국에 산재해 있다. 모락산 미래암(의왕시), 소리산 삼형제 바위(양평), 뚝바위(여주) 등이 그런 곳이다. 하지만 이런 암벽은 스스로 일정한 경지에 오르지 못한 초심자는 전문가들의 도움이 없다면 엄두를 내지 말아야 한다.

김인경씨는 간현 암벽의 여러 루트 가운데에서도 초보자인 내가 오를 만한 코스를 골라 시범을 보였다. 비로소 4주 완성 프로젝트의 마지막 단계인 ‘절벽 오르기’가 시작된 것이다. 이번 등반은 지난 주의 슬랩 등반과는 여러 면에서 달랐다. 등반 시작 전에 장비 사용법을 완전히 익혀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처음부터 경사 90°에 가까운 바위에서 스스로 홀드를 찾고 손기술과 발기술을 연결하며 ‘퍼포먼스’를 해야 하는 것이다.

김씨는 바위를 오르면서 그때그때 필요한 동작과 기술에 대해 여러 차례 설명했다. 내가 루트에 대한 정보를 미리 머리 속에 입력하고 동작 하나하나를 기억하는 사이, 절벽에서 가볍게 몸을 풀듯이 하고 내려온 그녀가 한마디 했다. “겸손함을 잃지 말라. 암벽 등반 기술을 조금 익혔다고 바위를 향해 덤볐다가는 사고를 당하기 십상이다. 등반을 시작하기 전에는 안전에 대한 대비를 충분히 하라. 인공 암벽과 달리 자연 암벽에서는 위험에 더 많이 노출된다.”
그녀는 암벽 등반 초보자들이 간과하기 쉬운 마음가짐을 거듭 강조했다. 섣불리 바위에 대한 경험을 자랑하지 말고, 다른 사람의 말에 귀 기울이며 항상 배운다는 자세로 등반을 하라는 것이다. 또 선등을 할 때는 무조건 오르는 데 주안점을 두지 말고 적절한 곳에 확보물을 설치하면서 안전 등반에 신경 쓰라고 말했다. 빌레이를 보는 후등자 역시 선등자의 안전 여부를 쥐고 있으므로 다른 어느 때보다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어야 한다.

그녀의 말을 귀담아 듣고 ‘겸손한 마음’으로 바위에 오르기 시작했다. 바위에 첫발을 올려놓을 지점에서 마지막 피톤이 박힌 위치까지는 수직으로 20여 m. 거기까지 딛고 내려와야 첫 절벽 오르기를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절반쯤 올랐을 때 나는 더 이상 바위에 붙어 있을 수 없었다. 이동할 홀드의 위치를 읽을 수 없었고, 그나마 잡고 있던 홀드에 오랫동안 매달려 있었던 탓에 인공 암벽을 등반할 때 경험했던 펌핑 증세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김씨는 “등반 자세가 안 나온다. 손과 발을 정석대로 움직여라. 홀드를 찾지 못했다고 당황하지 말라. 침착하게 바위 면을 더듬어 보면 사용할 수 있는 홀드는 무척 많다”라고 말했다. 김씨는 펌핑이 쉽게 나타나는 이유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홀드를 잡을 때 손목을 꺾는 나쁜 버릇 때문이라는 것이다. “손목이 꺾인 상태에서 홀드를 오래 쥐고 있으면 펌핑이 빨리 온다. 손가락과 팔꿈치를 일직선이 되게 한 다음 손가락을 약간 구부려서 갈고리 모양으로 만들어라. 그리고 그 손가락을 자연스럽게 홀드에 걸쳐라.”
김씨로부터 주의 사항을 듣는 사이 이번 등반에서 빌레이를 보아주던 정은순씨가 내 팔을 붙잡고 뭉친 근육을 풀어주었다. 잠시 호흡을 가다듬고 좀 전에 내려온 바위를 향해 다시 걸음을 떼어놓았다. ‘손과 발이 가 닿을 두세 번째 홀드까지 생각하라’는 김씨의 말이 등 뒤에서 들려왔다. 주문 사항은 많았지만, 우선 손가락을 홀드에 걸치듯이 한 다음 홀드에서 홀드로 이동해 보았다. 확실히 느낌이 달랐다. 힘이 덜 들었다. 휴식을 위해 한 쪽 손만으로 홀드를 쥐고 몸을 늘어뜨려 보아도 더 이상 펌핑이 나타나지 않았다. 처음보다 몸이 가벼운 듯했고, 자신감도 생겼다. 하지만 목표로 한 루트 등반을 마치고 내려왔을 때 김씨는 잘못된 동작부터 지적했다.

“초보자는 가슴 위쪽에 있는 홀드를 이용할 생각을 하라. 손이 가슴 밑에서 놀면 몸의 균형을 잃기 쉽다. 발의 자세는 슬랩 등반 때와 마찬가지로 가능한 한 11자를 유지하면서 발끝으로 홀드를 디뎌라. 암벽화의 발끝이 직각으로 바위를 파고들었을 때 발에 좀더 많은 체중이 실릴 수 있다.”

초보자에게는 동작과 자세도 중요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운 좋게 홀드를 만나는 경우에만 가능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만일 등반 중 홀드를 찾지 못한 상황에 처했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궁금했다.

“암벽 등반에 숙달되면 손톱만 걸칠 수 있는 바위 면의 작은 돌기조차도 홀드로 이용할 수 있다. 눈에 들어오는 모든 것이 곧 홀드인 것이다. 그것을 이용할 수 없으면 공연히 힘을 낭비하지 말고 편안하게 자일에 몸을 맡기거나 아예 내려와서 다시 오를 준비를 하라.”

김씨는 마지막으로 암벽 등반 기술을 익힌 사람들의 여러 등반 형태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암벽 등반 기술을 익힌 다음에는 크게 세 가지 방향에서 등반의 묘미를 즐길 수 있다. 아기자기한 바위를 오르내리는 리치 등반과, 자일과 자일을 연결하며 여러 마디를 끊어서 오르는 멀티 피치 등반(북한산 인수봉 같은 대암벽이나 거벽 등반이 이에 해당한다), 스포츠 클라이밍이라 불리는 프리 등반이 그것이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