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국현 유한킴벌리 사장
  • 장영희기자 (mtview@sisapress.com)
  • 승인 2004.05.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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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국현 사장(55)은 ‘CEO 혁명가’다. 그는 자신의 역할을 유한킴벌리라는 회사 조직에 묶어두지 않는다. 뜻 맞는 CEO들과 윤리 경영을 부르짖고 환경운동에 헌신하고 있다. 국론이 분열하고 성장 잠재력을 갉아먹는
“미래의 화두는 신뢰와 환경”
노동자 무차별 해고는 국가 자원 낭비…지속 가능한 사회 만들기 나서야


동북 아시아가 세계 경제의 3대 축으로 떠오르고 있다. 한국을 동북아 중심 국가라고 하는데, 지정학적으로는 맞는 소리다. 한국에서 환태평양 시대를 활용하자는 목소리가 나온 지 10년이 넘었고 (노무현)정부가 동북아 중심을 국가 아젠다로 채택하기도 했다. 하지만 한국이 깨어나지 않으면 한국은 동북아 지역의 한 부분일 뿐 중심은 결코 될 수 없다. 중국을 보라. 1978년 덩샤오핑이 경제 개혁을 시작한 지 25년 만에 중국은 엄청나게 달라졌다. 2002년 현재 중국의 수출액은 홍콩을 포함해 한국의 4배, 외국인 직접 투자(FDI)는 10배가 넘는다. 이런 속도로 성장한다면 2010년을 전후해 한국의 6배를 넘어설 것은 명약관화하다. 10배 가까이 차이가 나리라는 견해도 많다.

중국의 급부상은 당장 산업공동화를 불러 이 기간에 일자리를 줄이고 있다. 15세 이상 인구는 1990년 3천1백90만명에서 2000년 3천7백9만명으로 5백19만명이 늘어났지만, 일자리는 3백7만개밖에 늘지 않았다. 인구와 일자리 사이에 존재하는 이 2백12만개의 차이가 청년은 물론 중장년에 이르는, 전세대에 걸쳐 일자리 부족 현상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이미 2002년부터 2천2백17만명을 정점으로 일자리 수가 줄어들고 있다. 2010년이 되면 2000년에 비해 일자리를 원하는 인구가 3백95만명이 늘어나지만, 일자리는 1백1만개밖에 늘어나지 않는다. 앞으로 이 엄청난 미스매치(불일치) 현상을 어떻게 할 것인가. 메가 트렌드를 제대로 읽고 국가 정책을 통해 비상하게 변화를 모색하지 않으면 안된다.

실업률이 4%도 안되는데 웬 호들갑이냐, 두 자릿수 실업률을 가진 유럽보다 사정이 훨씬 낫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다. 이것이 맞는 얘기인가. 한국의 실업 문제를 유럽이나 미국의 표면적인 숫자와 비교하는 것은 옳지 않다. 한국처럼 재교육 시스템이 없고 사회 안전망이 미흡한 나라에서 일자리마저 없으면 75년 동안 실업자 처지에 놓이는 사람이 생긴다. 이들은 ‘로스트 제너레이션’(잃어버린 세대)이 될 수밖에 없다.

한국이 경제적 탄력을 잃고 이렇게 가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한국 사회가 신뢰 사회· 지속 가능한 사회가 아니기 때문이다. 회사 경영진이나 1대 주주들이 비자금을 수백억원 조성해 독점적 이익을 꾀하거나 문제가 생겼을 때 이것을 덮는 수단으로 쓰고 있다. 소액 주주와 근로자 몫을 부당하게 뒤에서 빼먹고 일부만 돌려주는 것이다. 이러니 시민단체가 기업을 도둑으로 여긴다. 이런 사회에 외국인 직접 투자가 들어오겠는가. 정부가 개혁한다고 하니까 일부 기업인들은 주가가 폭락하고 경제가 더 나빠진다고 위협했다. 과연 그렇게 되었는가.

한국은 불행하게도 정치·경제·사회 다 썩었다. 부패를 도려내지 않으면 한국은 세계 21개 불량 국가 안에 들어갈 것이다. 신뢰를 얻지 못하면 노사 분규를 없애지 못한다. 노조가 나빠서가 아니다. 신뢰할 수 없으면 상대적 약자들은 (강자를) 의심할 권리가 있다. 사회적 약자들이 의심할 여지를 없애는 것이 사회 지도층과 기업 경영자의 당연한 책임이고 의무다. 신뢰 없이는 민주주의도, 네트워킹도 불가능하다.

신뢰와 함께 기술을 가져야 한다. 중국이 보기에, 한국이 고기술을 가지지 못한다면 한국을 상대할 이유가 뭐가 있겠는가. 신기술 확보는 중국과 동반 성장할 수 있는 자격증과 같다. 고신뢰와 고기술 사회 건설을 통한 고성과 사회로 옮아가야 한다. 신경쟁력을 창출하지 못하면 정치적·외교적으로 고립되고 경제적으로 피폐해 현재의 북한과 비슷한 처지가 될 수밖에 없다. 동북아 중심 국가도 영원히 될 수 없다.
내가 경영하고 있는 유한킴벌리는 Y-K 모델이라는 뉴 패러다임으로 1990년대 중반의 위기를 이겨냈다. 일감이 크게 줄어 근로자의 절반을 감원해야 할 지경이었지만 감원은 절대 하지 않았다. 대신 평생학습조와 예비조 생산 방식이라는 Y-K 모델을 제시했다. 초기에 노조는 이 모델을 감원 예비 카드로 받아들여 격렬하게 저항했지만 1998년 받아들였다.

이후 유한은 드라마틱하게 변화했다. 모든 부문에서 시장 점유율 1위를 회복했음은 물론 환경과 안전, 생산성 부문에서도 수위에 올랐다. 지난 5년간 매출액은 2배, 이익은 6배 이상 올랐다. 무엇보다 근로자 1인당 연간 제안 건수가 10건(채택 기준)을 넘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이것은 (세계 최강을 자랑하는) 도요타 자동차 수준이다. 과로에서 벗어나 충분히 쉰 근로자들이 교육까지 받으면서 자발적으로 자기 회사의 발전을 도모하게 된 것이다. 손발을 넘어 머리(지식)와 가슴(주인의식)까지 기꺼이 제공하는 근로자가 있는데 무서울 것이 있겠는가. 사람을 함부로 해고하는 것은 개인의 불행과 기업 경쟁력 약화를 부르며 국가 자원을 낭비하게 한다. 노동자는 비즈니스 파트너다. 피터 드러커와 마이클 포터가 일갈했듯이, 경영자는 상호 의존과 상생을 도모하고 다중의 힘을 이용할 줄 알아야 성공한다. 노동자의 힘을 빌리지 않고 감시해야 한다면 이런 자리(강의)도 못 나온다.

한국의 미래를 밝게 볼 수 없는 이유는 환경 지속성 지수가 낮기 때문이기도 하다. 한국은 1백42개국 가운데 1백36등이다. 성적이 불량한 이유는 국가와 도시는 물론 가정과 개인이 엄청난 자원낭비형 경영을 하고 있어 환경 부하가 높기 때문이다. 선진국을 가보면 가장 먼저 느낄 수 있는 것이 푸른 하늘과 맑은 공기다. 한국의 녹지 수준은 선진국의 20분의 1도 안된다. 아름답고 넓은 (한)강이 수도 한복판에 있는 나라의 환경 수준이 왜 이 모양인가. 뉴욕 가서 왜 빌딩만 보고 오는가. 맨해튼 한복판에 자리 잡은 센트럴파크에 가보라. 버려진 100만평 땅에 40년간 조성된 이 생태공원에는 식물 1천4백여 종과 야생 조류 2백74종이 살고 있다.

삶의 질을 국내총생산(GDP) 갖고 따지면 안된다. 길이 꽉 막히면 기름을 많이 쓰기 때문에 GDP가 팍 올라간다. 대기 오염 때문에 입원 많이 하면 또 껑충 뛴다. 중요한 것은 GDP를 올리는 활동이 삶의 질을 높이는지, 생태적으로 지속 가능한지 여부다. 환경을 파괴하고 사람을 빨리 죽게 하는 GDP 상승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가.

센트럴파크 같은 시민 휴식 공간을 만들려는 환경단체의 끈질긴 노력이 결실을 맺은 것이 뚝섬에 들어서는 서울 숲 35만평 조성 사업이다. 미군 용산기지 82만평도 상당 부분이 생태공원으로 바뀔 것으로 믿고 있다. 서울트러스트 같은 환경단체나 유한이 앞장선 생명의숲 운동이 없었다면 이 땅에는 또 주상복합아파트나 상업 시설이 들어섰을 것이다.

환경운동은 북한과 중국의 협력을 이끌어내는 좋은 해법이 될 수 있다. 환경단체들은 1995~1996년 자갈밭으로 변한 북한 땅에 나무를 심고 있으며, 천막(하늘에서 떨어진 사막)으로 변하고 있는 중국 서북부 도시를 조림지로 바꾸는 사업을 거들고 있다. 지속 가능한 성장과 사람을 살리려는 이런 노력에 적극 동참해야 한다. 나보다 스무 살, 서른 살이 적은 여러분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한국의 미래가 결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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