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맡에 전자제품 두지 말라
  • 전상일 (환경보건학 박사, www.eandh.org) ()
  • 승인 2004.05.18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쥐 실험으로 뇌세포 손상 입증…알츠하이머 등 발병할 수도
1790년, 이탈리아의 의학자이며 물리학자인 갈바니는 ‘전기는 흐를 수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그로부터 30년 뒤, 덴마크의 한 과학자가 흐르는 전기 주위에 ‘자기장(magnetic field)’이 형성되는 현상을 발견했다. 그로부터 다시 1백60년이 지난 1980년대, 보건학자들은 이같은 전기장과 자기장으로 구성된 ‘전자기장’이 인체에 피해를 줄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잇달아 발표한다.

송전선 주변에 사는 어린이들이 백혈병에 걸릴 위험이 높다는 주장도 그때 나왔다. 이후 학자들과 관련 기관들은 전자기장과 백혈병 사이의 연관성을 놓고 엎치락뒤치락하는 연구 결과를 쏟아냈다. 하지만 뚜렷한 결론을 내리지 못한 채 힘겨루기는 오늘날까지 계속되고 있다.

전자기장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전자제품에서도 발생한다. 전자제품의 플러그를 콘센트에 꽂으면 전기장이 생겨나고, 스위치를 켜는 순간부터 자기장이 만들어진다. 흔히 말하는 전자파도 이같은 전기장과 자기장으로 구성된다. 인체의 70% 이상은 전기가 잘 통하는 물로 되어 있다. 자기는 거의 모든 물질을 통과하므로 인체를 투과해 특정 성분과 반응할 것으로 여겨진다. 따라서 인간이 전자기장으로부터 어떤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 자체를 부인하기는 힘들다.

송전선과 백혈병 사이의 연관성과 관련한 지루한 공방이 계속되는 동안, 과학자들의 관심은 일반 전자제품에서 발생하는 전자기장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에 집중되었다. 비록 그 세기는 약하지만 폭로 대상의 수와 폭로 시간 측면에서 볼 때 중요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의미 있는 연구 결과가 발표되었다. 일반 전자제품에 장기간 노출될 경우에도 피해가 나타날 수 있으며, 그 피해가 어떻게 발생하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메커니즘까지 제시된 것이다.

미국 시애틀의 워싱턴 대학 연구진은 실험용 쥐들을 헤어드라이어와 전기담요 같은 전자제품에서 방출되는 극저주파(60Hz) 전자기장에 24시간 동안 노출시켜 보았다. 그 결과 쥐의 뇌세포에서 심각한 수준의 DNA 손상이 일어났다. 48시간 동안 폭로된 쥐들에게서는 더 심한 결과가 나타났다. 폭로된 시간에 비례해 피해가 커진 것이다. 연구진이 과거에 이번 시험보다 더 강한 전자기장에 2시간 동안 쥐들을 폭로시켰지만 이렇다 할 DNA 손상을 관찰할 수 없었던 것과는 대조적인 결과였다. 전자기장의 피해는 세기뿐만 아니라, 폭로 시간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암시하는 것이다. 이번 연구는 윤리적 이유로 인간을 대상으로 하지 못했지만, 인간의 피해를 예측하는 데 커다란 도움을 주는 성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세포 내 철분의 항상성 깨져 DNA 손상

극저주파 전자기장에 오랫동안 노출되면 세포 내 철분의 항상성이 깨져 짝을 잃어버린 활성 전자가 양산되고, 이로부터 인체에 해로운 ‘자유 라디칼’이라는 물질이 생겨난다. 자유 라디칼은 DNA를 손상시키고 다른 세포의 기능을 저해하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더욱 염려스러운 점은 뇌세포와 같이 철분의 대사 작용이 활발한 세포들은 전자기장의 피해를 받기 쉽다는 점이다. 이 점에서 두뇌 부위에 전자제품을 가까이 두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지난 수년 동안 일부 학자들은 극저주파 전자기장에 장기적으로 노출되면 노인성 치매의 원인이 되는 알츠하이머 질환과 파킨슨병, 근육위축경화증 등 신경퇴행성 질환에 걸릴 위험을 높다고 경고해 왔는데, 개연성이 점점 분명해지고 있다. 과학의 발전이 전자기장의 피해를 걱정하지 않아도 될 전자제품을 만들어 낼지, 아니면 숨겨진 전자기장의 피해를 들추어내는 도구로 사용될지 두고 볼 일이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