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석 한보조사특위 위원 “청문회 제도보다 의원들 의지가 더 문제”
  • 李叔伊 기자 ()
  • 승인 1997.04.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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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철씨에게는 자신의 행동이 정당했다는 나름의 소신이 있었던 걸로 봅니다. 그래서 그게 무엇인지, 대체 어떤 판단이 이렇게 나라를 혼란에 빠뜨렸는지, 그 쪽 얘기를 듣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하려 합니다. 비
한보 청문회가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특위 위원의 자질 문제, 제도적인 허점 등이 드러나면서 오히려 증인이 주연으로 둔갑하는 촌극이 벌어지고 있다. 그러나 이 와중에도 돋보이는 의원이 있다. 국민회의 김민석 의원이 주인공이다.

김의원은 서른넷이라는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차분하고 논리적인 질문으로 증인들로부터 적지않은 수확을 올렸다. 그런가 하면 대야 공격수로 나선 같은 특위 소속 신한국당 이신범·이사철 의원을 향해 김현철씨 공천을 받아 국회의원이 되었다고 맞불을 놓기도 했고, 4월9일에는 신한국당 이회창 대표의 친인척이 제일은행으로부터 특혜 대출을 받은 중소기업 대표 이사라고 주장해 여권을 흔들어 놓았다.

4월11일 밤 늦게 서울 구치소 한보 청문회장에서 김의원을 만났다. 그는 계속되는 증인과의 실랑이에다 여당 의원들과의 신경전까지 겹쳐 몹시 지쳐 보였다.

이회창 대표의 친인척 문제는 어디까지가 사실입니까?

당초 질문의 본질은 이대표 부분이 아니었습니다. 제일은행의 한 간부가 ‘삼원정밀금속이라는 중소기업이 있는데, 이철수 전 행장의 동생인 이학수씨가 이 회사의 부사장이고, 사장은 신한국당 대표의 친인척이다. 그런데 제일은행이 이 회사에도 특혜 대출을 했다’는 제보를 해왔기에, 이를 확인하려고 했던 겁니다. 그 과정에서 이대표 부분을 언급한 것인데, 여당이 과민 반응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확인되지 않은 내용을 텔레비전 생방송에서 거론한 것은 성급한 행동 아닙니까?

제보를 당일에 받았는데, 그것을 확인할 시간은(이철수 증인이 나온) 그날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청문회 자체가 각종 의혹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고 확인하는 과정 아닌가요? 정태수 리스트를 비롯해 그동안 여당도 ‘설’가지고 얘기한 것 아닙니까?

이신범 의원이 한보특위 위원 직을 사퇴한 것이 김의원 때문이라는 얘기가 많습니다.

겉으로야 다른 이유를 들고 있지만, 속으로는 아마 더 이상 특위 위원을 하고 싶지 않았을 겁니다. 사실 이신범 의원이 김현철씨와 가깝다는 것은 다 알려진 사실 아닙니까. 앞으로 청문회에서 (김현철씨와) 부딪칠 일이 끔찍했겠죠. 울고 싶은데 빰 때려준 격이라고나 할까요.

이의원이 김현철씨 공천으로 당선됐다는 얘기는 그야말로 인신공격성 발언 아닌가요?

사실 (야당 의원들이) 굉장히 참았습니다. 청문회 첫날 첫 질문부터 야당에 공격의 초점을 맞추기에 저희들이 사적인 자리에서 여러 번 경고를 했습니다. 근거 없이 떠들면 우리도 정면 대응하겠다고요. 그런데도 계속해서 김대중 총재나 김원길 의원 등을 공격하기에 불가피하게 한 번은 정면 대응을 해야겠다고 생각한 겁니다.

하지만 그런 여야 공방이 결국 한보 청문회에 대한 비난을 불러일으키는 요인이 된 것 아닙니까?

그것 때문에 의사 진행 발언이 속출하고, 청문회가 자꾸 지연된 것은 정말 유감스럽고 죄송스런 일입니다. 정말 여당하고 싸우고 싶지도 않고, 앞으로는 이런 일이 없었으면 합니다.

청문회가 지지부진하다는 평을 받고 있습니다. 문제가 뭡니까?

사람들은 제도적인 한계를 많이 거론하는데, 핵심은 실체를 밝히려고 하는 의원들의 의지라고 생각합니다. 누구는 외압의 실체를 밝히겠다고 애쓰는데, 누구는 정치인 가운데 누가 뇌물을 받았는가 따위에만 관심을 보이니 특위가 제대로 운용될 리 없지요.

제도적인 보완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겁니까?

물론 제도에도 문제가 있습니다. 검찰 조사 자료나 금융기관의 비밀 자료 등을 볼 수 있었다면 아마 지금보다 몇 배 더 알찬 청문회가 됐겠지요.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정파간 이해 관계입니다.

그런 면에서 여당 의원 가운데 의지가 가장 돋보이는 의원은 누굽니까?

김재천 의원입니다. 기술적인 부분을 떠나 그 분은 의혹을 풀고자 하는 진심이 있었고, 한보 사태에 대한 아픔과 분노를 지니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어떤 이유에서든 도중 하차한 셈이 되어서 참 안타깝습니다.

나이가 젊어서 특별히 어려운 점이 있습니까?

증인들이 대부분 저보다 나이가 많아 조심스럽습니다. 그래서 공인이라는 위치와 30대의 정서를 적절히 조화시키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따질 것은 따지지만 최대한 예의를 갖추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있습니다. 그 부분은 상당히 인정받았다고 보는데, 본의 아니게 상대방을 아프게 했을 때는 밤에 꼭 기도를 합니다. 정태수씨 때도 그랬어요.

정씨를 대한 느낌이 어땠습니까?

한마디로 대-단하다 싶더군요(김의원은 여기에서 반드시 ‘대’자를 강조해야 한다고 말했다). 현장에서는 전혀 몰랐는데, 나중에 녹화 화면을 보니 간혹 표정이 흔들리는 모습이 보이더군요. 기적을 바라는 건지 모르지만, 그 분이 마음에 변화를 일으켜 진정 나라를 위해 모든 것을 털어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앞으로는 동료 의원들을 심문해야 할 텐데, 부담스럽지 않습니까?

(다행히) 권노갑 의원은 다른 분이 맡았고 저는 여당의 정재철 의원 담당입니다. 하지만 설령 권의원을 맡았더라도 공무니까 담담하게 사실에 근거해서 증인 신문을 하리라고 봅니다.

김의원 본인도 권의원으로부터 한보의 돈을 받은 재경위 4인 가운데 한 사람으로 거론된 적이 있는데요.

돈 받은 사실이 없으니까 신경 안 씁니다. 오히려 정치 입문 초반기에 이런 경험을 하게 되어서 참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초기에 뜨거운 맛을 봤으니 부정한 돈에는 절대 눈 돌리지 않을 것 아닙니까.

이번 청문회의 하이라이트는 역시 김현철씨인데, 혹 비장의 무기가 있습니까?

저희 두 사람은 같은 30대이고, 80년대에 어쨌든 전두환·노태우 씨가 물러나야 한다는 데 뜻을 같이했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서로 상황 판단이 다르고 서로에 대한 평가도 다릅니다. 그 분에게는 자신의 행동이 정당했다는 나름의 소신이 있었던 걸로 봅니다. 지금도 그렇고요. 그래서 그게 무엇인지, 대체 어떤 판단이 이렇게 나라를 혼란에 빠뜨렸는지, 그쪽 얘기를 듣는 데 시간을 많이 할애하려 합니다. 그것이 대한민국의 장래를 위해 더 교훈적이라고 봅니다. 비리나 국정 개입 의혹 하나 더 캐는 것은 제게는 부차적인 문제입니다.

김씨와는 일면식이 없습니까?

만났을 법도 한데 희한하게 만난 기억이 없습니다. 야당 시절 민주계 인사들이나 김대통령은 자주 뵌 적이 있습니다만. 김대통령과는 제가 감옥에 있던 86년, 교통 사고로 돌아가신 둘째 형님 장례식장에서 만났습니다. 사실 전 87년 대선 당시 DJ보다는 YS로 단일화하는 것을 지지했고, 그 분이 대통령이 됐을 때도 정말 국정을 잘 이끌어갔으면 하고 바랐던 사람 중의 하나입니다.

인터뷰를 마치고 다시 청문회장으로 돌아가면서 그는 ‘정치란 진흙탕에서 연꽃을 피워내는 작업’이라고 말했다. 특위가 시작부터 욕을 먹고는 있지만 그만큼 국민의 기대가 크기 때문이라고 믿고 끝까지 최선을 다하겠다는 다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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