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병렬 서울시장 " 민선시장과 중앙 정부 마찰 예상된다"
  • 金 薰 편집국장 직무대행 ()
  • 승인 1995.06.29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선거를 앞두고 서울시 일부 구청 직원들이 새로 취임할 민선 구청장이 누가 될 것인가에 촉각을 세우고 '줄서기' 에 신경쓰고 있다는 것을 압니다. 있어서는 안될 일이지만, 그 사태의 정도가 심각한 것은 아니라
성수대교 붕괴 사고 직후 서울시장에 임명된 최병렬 시장은 취임때 이미 퇴임 날짜가 못박힌 시한부 임명 시장이었다. 그의 취임과 퇴임은 지방자치제로 이행하는 전환기에서 상징적 의미를 갖는다. 그러나 그의 임기 8개월은 상징의 수준을 넘어섰다는 것이 시민들의 일반적 평가이다. 그는 ‘안전’이라는, 중요하지만 인기 없는 기본 정책에 매달려 그 전환기의 임기를 마쳤다. 이미 업무 인계를 준비하고 있는 최시장을 만나서 전환기의 문제들을 들어보았다.

지금 서울시장 선거가 막판의 열기를 품고 있습니다. 마지막 임명 시장으로서 선거가 몰고오는 정치적 압박을 감지하고 계십니까 ?

별로 없습니다. 각 후보들이 공약과 정책을 수립하는 과정에서 서울시의 행정 사항과 진행중인 정책, 수립된 정책의 내용을 자료로 제출해 달라고 요청한 적은 있었습니다. 저는 이 요청을 수락했습니다. 모든 후보에게 골고루 똑같은 정보를 제공했습니다. 그 이외에 시청은 선거판과 관계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구청 쪽으로 내려가면 사정은 크게 달라져 있지 않겠습니까?

좀 그렇다고 볼 수도 있겠지요. 서울시청 직원들은 1급 이상이 아니라면 시장과 직접적인 관계를 맺을 업무상의 이유가 없습니다. 그러나 구청 직원들은 대다수가 구청장과 지근의 거리에서, 구청장과 밀착되어서 일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니까 일부 구청 직원들이 새로 취임할 민선 구청장이 누가 될 것인가에 촉각을 세우고 ‘줄서기’에 신경쓰고 있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있어서는 안될 일이지만, 그 사태의 정도가 심각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또 민주주의로 가기 위해서는 이런 정도의 문제를 각오하고 헤쳐 나가지 않으면 안된다고 봅니다.

서울시 구청장들이 민선 구청장에 출마하기 위해 대거 현직을 사직했고, 이같은 사태가 전국적으로 벌어졌기 때문에, 지방자치 단체장 교체기 때마다 행정이 마비될 것을 우려하는 여론도 있습니다.

서울시의 경우 25개 구청에서 구청장 18명이 민선을 노려 사임했습니다. 적은 숫자가 아니지요. 이들 구청에 대해서는 즉각 후임 구청장을 임명했습니다. 문제는 이 과도기 구청장의 임기가 불과 2개월이라는 데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 과도기 구청장들은 모두 서울시에서 20년 이상 행정 경력을 쌓은, 경험 많은 공직자들입니다. 그리고 공무원인사법상으로 신분이 보장된 고위직 공무원들이기 때문에 근본적인 행정 공백은 발생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습니다.

지자제 시대 본격 개막을 앞두고 민선 단체장의 자율권과 중앙 정부의 통제력 사이에 마찰이 생기지나 않을까 하는 걱정이 팽배하고, 서울이야말로 그같은 실험이 가장 첨예하고 본격적으로 전개될 지역으로 꼽히고 있습니다. 마지막 임명 시장으로서 이같은 문제를 어떻게 보십니까?

서울시는 62년 이래 국무총리 직속으로 일반 시·도와는 구별되는 특수한 법적 지위를 누려 왔습니다. 그러나 91년 지방자치법이 바뀌면서 일반 시·도와 같이 내무부 직할로 편입되었고, 특례법상 일부 예외만을 인정 받고 있습니다. 서울시의 조직·정원·인사·감사·재정 등 행정적·재정적 사항에 대하여 정부가 여전히 승인권과 통제권을 행사한다면 민선 시장의 자율권과 중앙 정부 통제력 사이의 마찰은 예상할 수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서울의 역사적 전통과 수도로서의 특수한 지위 등을 감안하여 민선 시장이 폭넓게 자율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제도적 개선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봅니다.

지금까지 지방 의회 의원만 선출하고 단체장은 임명하는 ‘반쪽 자치제도’를 해온 결과, 단체장과 지방 의회 사이에 수많은 불협화음이 드러났습니다. 임기가 확실하게 제한된 마지막 임명 시장으로서 지방 의회와의 관계가 특히 어려웠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지방 의회와 지방 행정부와의 갈등은 주로 세 가지입니다. 권한 배분 문제, 예우 문제, 그리고 의회와 행정부 간의 정책적 대립 문제입니다. 즉 쌍방 간에 초보적 관계를 설정하는 문제가 어려웠던 것이지요. 30년 만에 지방 의회가 부활되었으므로 이같이 초보적 관계를 정립해 가는 과정에서 다소의 갈등이 벌어졌던 것입니다. 이것은 지자제의 역사에 비추어 보아 초기 단계에서 불가피했던 측면도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사후에 의회로부터 질문을 받기 전에, 어떤 정책을 시행에 옮기기 전에 미리 의회에 보고하고 의원들의 의견을 청취하고 협의를 거치는 방식으로 의회와의 관계를 정립해 나갔습니다.

서울시의 방대한 업무를 새 민선 시장에게 인계하는 작업이 쉽지 않을 것 같은데 업무 인계는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국장급 이상 주요 간부들이 서울시를 여전히 지키고 있을 것이므로 인수인계가 특별히 힘들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그러나 시장 대 시장으로서 인계해야 할 사항도 만만치 않습니다. 그래서 후임 시장에게 인계할 사항을 책자 한 권으로 정리해서 전해주고 또 설명할 생각인데, 그 책자를 이제 거의 완성해 가고 있습니다.

그 ‘책자’의 주요 골격은 무엇입니까?

지속성을 유지하지 않으면 안될 주요 정책에 대한 내 자신의 판단과 평가, 그리고 후임 시장에게 이 정책들에 대한 전임 시장의 생각을 설득하기 위한 것입니다. 교통 문제, 팔당 상수원 보호 구역을 지원하는 문제, 대기 오염을 줄이는 방안, 서울시 청사 신축 문제에 관한 서울시장의 종합적 정책 판단과 그 방향을 제시한 것입니다. 이 책자를 전하고 설명하는 일로 저는 서울시장의 직무를 종결하겠습니다.

후임 시장에게 전하시게 될 팔당 상수원에 대한 정책 내용은 무엇입니까?

팔당 상수원 보호 구역은 행정구역상 서울시가 아니지만 그 물로 서울이 살고 있으므로 서울이 팔당을 도와주어야 한다는 것이 정책의 골격입니다. 즉 팔당 상수원 인접지역에서는 농약을 일절 쓰지 않는 유기농법으로 전환시키고, 이에 따른 시설 지원 및 생산량 감소 보전대책, 그리고 생산된 농산품 소비대책을 서울시가 마련해 주자는 것입니다. 즉, 좋은 물을 지속적으로 공급 받으려면 ‘단속’만 하지 말고 시간이 걸리더라도 구조적 문제들을 해결하고, 그에 따른 비용을 서울시가 대자는 것이지요.

서울시가 생산·공급하고 있는 많은 도시 서비스 기능의 비능률·불합리를 해결하려면 근본적으로 서비스 기능을 민간 부문에 넘겨야 한다는 주장이 강력히 제기되고 있습니다. 최시장께서는 시정을 이끌어 보신 결과 이 문제에 대해 어떤 판단에 도달하셨습니까?

중요한 문제이고, 또 구조를 조정해야 하는 어려운 문제입니다. 특히 방대한 조직과 인원을 거느리고 있는 서울시로서는 심각히 고려해야 할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서울시는 그동안 삼성경제연구소 등 국내 4개 민간 연구소와 컨소시엄을 구성해서, 그야말로 순수한 민간 경영의 시각과 판단 기준으로 서울시의 조직·인력·능률·재정 상태를 종합 분석해 왔습니다. 제로 베이스 상태에서 서울시의 모든 기능을 분석하고 그 합리성과 능률 정도를 검색한 것입니다. 이 결과로 모든 것이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이 작업도 이제 며칠 남지 않은 저의 임기 중에 마무리지을 계획입니다.저는 다만 이 진단 결과를 후임 시장에게 전하고 물러갈 뿐입니다. 제가 결과를 발표하지는 않겠습니다.

짧았던 시장 재임 기간에 시민들에게는 별로 인기가 없는 정책들만 골라서 추진해 오신 것 아닙니까?

(웃음) ‘안전’이 흔들리는데 무슨 인기를 생각할 겨를이 있었겠습니까. 다리 고쳐야겠으니 차 끌고 나오지 마시오, 주로 이런 정책을 추진하다 보니까 ‘인기가 없었다’고도 말할 수 있겠지요. 10부제는 처음에는 인기가 없었지만 나중에는 시민의 지지를 받았습니다. 버스 전용 차선제도 그렇습니다. 처음엔 불편하더라도 좀 시간이 지나고 보면 시민도 정부의 정당성을 이해해 줄 것입니다. 공직자로서 시민의 인기 얻기에만 매달릴 수는 없는 것입니다.

정부는 아직도 최시장께 많은 기대를 걸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서울시장 퇴임 후에는 어떤 설계를 가지고 계십니까?

성수대교 붕괴 뒤치닥거리를 하기 위해 국회의원 그만두고 한시적 서울시장에 취임했는데, 아무런 후회 없습니다. 너무나도 많은 것들을 체험하고 배웠습니다. 값진 재산이 될 것입니다. 앞으로의 계획은 우선 노는 것입니다. 퇴임 후 재미있는 하루하루가 될 것 같은 예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