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제 경기도지사 “개혁, 방향 옳으나 방법은 미숙”
  • 文正宇 기자 ()
  • 승인 1995.07.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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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도시 아파트는 90년 건축자재 파동이 일어났을 때를 전후해 시공됐기 때문에 부실하게 지어졌을 가능성이 높은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건축학회에 의뢰해 수 차례 점검한 바에 따르면, 붕괴 위험이 있는 아파
지방 선거에서 낙승을 거둬 민자당의 체면을 살린 이인제 경기도지사. 그러나 지금 그는 승리의 기쁨을 마음껏 누리고 있을 처지가 못된다.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로 전국의 시설물 안전에 대한 비상이 걸려 있으며, 소속 당인 민자당이 선거 패배 후유증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삼풍백화점과 거의 같은 시기에 지은 경기도의 신도시 아파트들은 `‘서 있는 게 신통하다’는 얘기를 들을 정도로 안전성을 의심 받는 상태이다. 당내 경선 때부터 3개월여 숨막히는 선거전을 치른 뒤 긴장을 풀 새도 없이 다시 신도시 안전 점검에 매달리고 있는 이지사는 “지금까지 검토한 결과를 종합해 보면 다행히 무너질 위험이 있는 아파트는 없는 것 같다”고 말한다. 그는 이번 선거에서 민자당이 패한 데 대해서는 “정부·여당이 추진해온 개혁의 큰 방향은 옳았지만 구체적인 방법에서는 미숙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고 나름대로 분석했다.

삼풍백화점과 비슷한 시기에 지은 경기도 신도시 아파트 주민들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습니다. 김영삼 대통령도 최근 철저한 안전 점검을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신도시 아파트에 대해 어떤 대책을 세우고 계십니까?

삼풍백화점이나 신도시 아파트는 90년 건축자재 파동이 일어났을 때를 전후해 시공됐기 때문에 부실하게 지어졌을 가능성이 높은 것은 사실입니다. 그런데 경기도가 지난해 하반기부터 건축학회에 의뢰해 수 차례 점검한 바에 따르면, 아파트 2개 동과 지하 주차장 11개소에 다소 문제가 있지만 다행히 붕괴 위험이 있는 아파트는 한 채도 없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일단 신도시 주민들은 안심하셔도 좋다고 봅니다. 도내 건축직 공무원과 건설 감리사를 총동원해 계속해서 과학적이고 정밀한 안전 점검을 실시할 계획입니다.

정부는 큰 사고가 날 때마다 많은 대책을 발표하곤 했지만 사고는 끊이지 않았습니다. 앞으로도 현 정부가 과연 사건을 예방할 능력이 있는지 의심스럽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고귀한 생명이 많이 희생된 데 대해 말할 수 없이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잇단 사건·사고의 원인은 오랜 기간 내재돼 있었던 것입니다. 크게 보면 급속하게 산업화를 추진해온 대가를 톡톡히 치르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동안에는 그러한 사건·사고의 원인을 발견하고 방지하는 훈련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남에게 책임을 전가하거나 감정적으로 문제에 접근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좀더 냉정하고 과학적인 사고방식으로 안전 대책을 세우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아무리 열심히 노력하더라도 어느 정도의 사건이나 사고는 손 묶어놓고 당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물론 정부는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러면 또 반드시 예방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우리 문화의 체질이 변해야 합니다. 건물을 짓고 관리하는 전반적인 제도와 관행, 그리고 마음가짐까지 모두 바뀌어야 합니다.

유세 때부터 `‘서울보다 잘사는 경기도를 만들겠다’고 강조하셨는데, 어떻게 그렇게 하시겠다는 것인지 언뜻 납득되지 않습니다.

저는 사람들이 잘살려면 세 가지 조건이 갖춰져야 한다고 봅니다. 경제적인 풍요와 깨끗한 환경, 그리고 수준 높은 문화입니다. 경기도는 경제 측면에서 서울에 비해 무한한 성장 잠재력을 갖고 있습니다. 넓은 땅과 풍부하고 우수한 인적·물적 자원을 갖추고 있습니다. 이들을 잘 조직하고 결합하면 얼마든지 서울을 따라잡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환경은 지금도 서울보다 훨씬 낫고요. 서울에 예속돼 있는 교육과 예술 분야도 투자만 게을리하지 않는다면 괄목할 정도로 수준이 높아질 것으로 봅니다.

경기도를 동북아의 중심 지역으로 만들겠다는 공약도 하셨습니다. 구체적인 복안이 있으신가요?

경기도는 지정학적으로 일본·중국·대만 등 동북아시아의 중간에 위치한 한반도 중에서도 복판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앞으로 영종도 공항이 건설되면 무역과 교통에서 동북아의 네거리가 될 것입니다. 또 북한과 본격적으로 교역이 시작되면 경기도는 북한과 시베리아를 향해 활짝 열린 관문이 됩니다. 이런 지정학적인 유리한 조건을 바탕으로 국내외 첨단산업을 경기도에 적극 유치해, 국내에서 최고 경쟁력을 갖춘 지방자치단체로 키우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이지사께서는 이번 선거에서 승리를 거두었지만 소속 당인 민자당은 참패했습니다. 민자당이 참패한 까닭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

우리 정부·여당이 추진해온 변화와 개혁이 큰 방향에서는 옳았지만 구체적인 방법이 미숙해 그것이 우리 국민의 마음을 불편하게 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결과를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심기일전해 새 출발해야 합니다.

단순히 개혁의 방법뿐 아니라 큰 방향 자체가 잘못됐다는 시각이 여당 내에서도 있는 것으로 아는데요.

김대통령이 추진하는 개혁은 어떤 이유로도 폄하돼서는 안됩니다. 개혁은 30년 권위주의 체제를 무너뜨리는 일이고, 앞으로 우리가 생존할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문제입니다. 개혁은 어렵습니다. 개혁 세력이 인기를 누렸다는 기록을 어떤 역사책에서도 읽은 기억이 없습니다.

이지사께서는 김영삼 정부 출범 직후 노동부장관을 맡아 여러 가지 개혁을 추진하다 정부·여당의 거센 저항에 부딪혀 좌절을 겪었습니다. 정부·여당의 인기가 급속하게 하락한 것은 개혁을 추진하다 반대에 부딪히면 우회해 버려 죽도 밥도 끓이지 못한 때문이 아닌가요?

정부의 개혁 의지가 퇴색했다고 비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보다는 개혁의 방법에 대해 비판하는 사람이 훨씬 많다고 봅니다. 그리고 개혁으로 인해 손해를 본 사람들이 터무니없이 현 정부를 비난하면서 우리 사회를 어렵게 만들고 있는 측면도 분명히 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자연히 정리될 것입니다.

민자당 총장에 김윤환 정무장관이 임명됨으로써 민주계는 당의 일선에서 물러나는 추세입니다. 김대통령을 야당 시절부터 보필해온 처지에서, 현 정권을 탄생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민주계가 이렇게 위축된 까닭이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저는 우리 당에 세력으로서의 계보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5년 전 3당이 합당했을 때는 분명히 계보가 존재했지만 그 뒤 총선과 대선을 치르면서 계보는 사라졌습니다. 그 때문에 어느 당 출신이 총장이 됐느냐 하는 것을 따지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고 봅니다. 정당에서 어떤 사람의 역할은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것입니다. 총재의 정확한 뜻은 알 수 없지만, 이 상황에서 당을 화합시키고 새롭게 출발하게 하는 데 김총장이 큰 역할을 할 수 있으리라고 판단하고 기용하신 것으로 믿습니다.

대통령 주변에 포진한 소수 그룹이 독주하는 바람에 대통령과 당에 누를 끼쳤다고 비난하는 소리도 당에서는 높던데요.

저는 소수 그룹이 지금까지 당을 이끌어 왔다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공식적인 당의 지휘 계통에 있는 분들이 중요한 의사 결정을 해왔다고 봅니다. 물론 이런 저런 개혁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그것을 뒷받침하는 일부 인사가 독주하는 것처럼 비쳤을 수도 있습니다.

5공 청문회 때의 강성 이미지, 노동부장관 시절의 개혁 이미지 때문에 경기도 공무원들이 긴장하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저에 관해서는 잘못 알려진 게 많습니다. 저는 조직을 중시하는 사람입니다. 조직의 뒷받침이 없으면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섬세하고 부드럽게 공직 사회와 화합하며 조직을 이끌어 나갈 것입니다.

삼풍백화점 붕괴는 새로 취임한 지방자치 단체장들의 앞날이 그리 순탄할 것 같지 않다는 사실을 예고하는 듯도 합니다. 어깨가 무거우실 것 같습니다.

7백50만 도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킨다는 생각을 하면 무한 책임을 느끼면서 두려운 생각도 듭니다. 늘 기도하는 마음으로 열심히 일하면 하늘이 도와줄 것이라고 믿고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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