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마릴린 먼로와 잠든다면?
  • 崔寧宰 기자 ()
  • 승인 1998.07.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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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버 섹스 찬반 팽팽···"성교육에 도움" "비인간화 · 여성 상품화 조장"
서기 2020년, P국의 한 지방 도시에 사는 A씨는 거실 벽에 설치된 모니터를 통해 성행위 대상 여성을 선택한다. 소설가인 그는 서른아홉 살이지만 아직 독신으로 살고 있다. 모니터에 마릴린 먼로가 등장한다. 마릴린 먼로는 특유의 눈웃음으로 A씨를 유혹한다.

‘너무 천박해.’

A씨는 신경질적으로 채널을 돌린다. 이번에는 샤론 스톤이 나온다. 미니 스커트를 입은 샤론 스톤이 다리를 꼬며 교태를 부린다. 그러나 A씨는 좀더 젊고 지적인 상대를 원한다. 채널을 여러 차례 돌리던 그는 마침내 한 해 전에 미스 유니버스로 선발된 여성을 선택한다. 그는 컴퓨터와 연결된 헬멧을 쓰고 특수 장치에 몸을 싣는다.

20여 년 뒤에 실제로 일어날 수 있는 가상 섹스 모습이다. 실베스터 스텔론이 주연한 영화 <데몰리션 맨>에도 이와 같은 장면이 나온다. 가상 현실 공간을 이용한 이런 성행위를 사이버 섹스라고 부른다.

가상 현실이라는 개념이 본격적으로 유행하기 시작한 것은 90년대 이후부터. 가상 현실은 컴퓨터가 만든 공간으로, 자그마한 비디오 모니터에 맞게 만들어진 안경을 쓰면 3차원으로 지각되는 ‘비현실 공간’이다. 컴퓨터에 연결된 장치를 이용해 사람들은 3차원 공간에서 걷고 운전하고 날고 물건을 집는 따위 물리적 행위를 직접 하는 듯한 느낌을 갖게 된다. 현재 각국 공군이나 항공사가 조종사를 훈련하는 데 쓰는 모의 비행 시뮬레이션이 이같은 가상 현실 공간을 응용한 것이다.

가상 현실을 이용한 사이버 섹스는 전화·컴퓨터를 이용해서 이루어지는 현재의 ‘온라인 섹스’와는 차원이 다른 개념이다. 물론 온라인 섹스도 폰섹스 같은 하위 개념에서부터 인터넷에서 음란물을 주고받거나 채팅을 하는 방법까지 여러 가지가 있다.
임신·성병 걱정 없는 ‘무제한 섹스’

온라인 섹스 가운데서도 가장 진보된 형태가 컴퓨터 게임이다. <버추얼 발레리>는 이 가운데 가장 많이 팔리는 컴퓨터 게임이다. 이 게임은 컴퓨터 전원을 켜면 주인공 발레리가 게임하는 사람을 자신의 고층 아파트로 초대한다. 발레리의 방으로 들어가기 전에 게임자는 발레리의 아파트를 탐색한다. 마우스를 클릭하면 엘리베이터 문이 열린다. 이윽고 게임자가 발레리에게 다가가 소파에서 전희를 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이같은 게임은 어디까지나 2차원적인 수준이다. 컴퓨터 게임에서 실제로 운동을 하는 것은 성기가 아니라 마우스를 잡은 이용자의 손이다.

이와 달리 가상 현실을 이용한 사이버 섹스는 컴퓨터와 연결된 장치를 몸에 붙였을 때 기계 장치가 대뇌를 자극하므로 3차원 공간에서 오감을 모두 느낄 수 있다. 그래서 실용화가 이루어진다면 사이버 섹스는 인류 성 문화에 혁명을 일으킬 것이라는 성급한 관측도 나온다. 우선 상대를 얼마든지 고를 수 있다. 파트너를 만나는 것도 어렵지 않고 임신 위험도 없으며 AIDS 같은 성병을 걱정할 필요도 없다. 더구나 다른 사람에게 드러나지도 않는다. 영화 배우나 인기인 같은 유명 인물과 성행위를 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실존하는 불특정 다수를 바꾸어 가며 즐길 수도 있다. 물론 육체가 필요없기 때문에 직접 만나지 않아도 된다. <가상 현실>이라는 책의 저자인 하워드 레인골드는 ‘수천 ㎞나 떨어진 곳에 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모뎀으로 성행위를 하는 서로의 육체를 보면서 이러한 행위와 말에 들어맞는 촉각 자극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아직 실용화하지 않았는데도 사이버 섹스에 대한 논쟁은 벌써부터 달아오르고 있다. 마이크 샌즈는 사이버 섹스가 성교육에 쓰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모의 비행이 조종사를 훈련하는 데 사용되는 것처럼 사이버 섹스도 원하지 않는 임신을 방지하고, 성행위로 전염되는 질병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는 데 사용할 수 있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사이버 섹스가 합법적인 오락·교육·치료 수단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보았다. 이외에도 여러 전문가들은 사이버 섹스가 인간 사이의 성행위 때문에 생기는 물리적·병리학적 위험을 덜어 줄 것이라고 주장한다.
기계 문명이 만들어낸 일그러진 쾌감의 세계

그러나 아직은 부정적으로 보는 견해가 많다. 우선 사이버 섹스 세계에서는 전통적인 개념의 사랑이 필요없다. 이성을 만나는 과정에서 따르는 애틋한 감정과 숱한 사연이 필요없는 것이다. 수많은 선조들이 썼던 연애 소설들은 이제 먼지를 뒤집어써야 하는 세상이 오는 것이다.

무엇보다 전문가들은 사이버 섹스가 여성에 대한 남성의 성폭력을 정당화한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사이버 섹스보다 훨씬 후진적인 개념인 포르노 비디오·컴퓨터 게임·CD 롬을 보자. 거개가 남성 위주 상품이다.

이런 상품들은 여성만을 성적 대상으로 전락시킨다. 또 남성이 여성을 마음대로 통제할 수 있다는 이데올로기를 은연중에 퍼뜨린다. <사이버 아트> 편집인 린다 제이콥슨은 “나는 포르노에 대한 검열을 반대한다. 그러나 포르노에 나오는 성행위가 여성에게 매우 불편하다는 사실을 남성들이 알아야 한다”라고 말했다. 작가이자 성교육자인 수지 브라이트는 “컴퓨터산업과 성적 오락산업은 모두 남성이 지배하는 영역이다. 컴퓨터 귀신들이 만들어내는 가상 현실에 여성의 욕망과 관점이 살아날 수 있을까?”라며 의문을 제기했다.

이러한 주장은 기계 문명과 컴퓨터가 등장하는 주류 상업 영화에서도 잘 드러난다. 섹슈얼리티와 기계 문명이 결합한 영화인 <로보캅>과 <터미네이터>는 한결같이 강한 근육질 남성이 주인공이다.

찬반 논쟁을 떠나서 세기 말에 등장한 사이버 섹스라는 개념은 인류의 미래와 관련해 중요한 시사점을 던져준다. 우선 인류의 ‘몸’이 위협받고 있다는 사실이다. 에이즈·환경 호르몬·공해·핵전쟁 등은 개인뿐만 아니라 인류를 멸망시킬 수 있는 위협들이다. 여기에 견주면 몸은 한없이 나약하다. 하지만 육체가 점점 약해지고 파괴될 위험에 놓이더라도 쾌락을 향한 욕망은 사라지지 않는다.

얼마 전 개봉된 영화 <크래시>를 보면 등장 인물들이 자동차 사고가 난 뒤 피를 흘리는 인간의 육체를 보며 성적 쾌감을 느낀다. 자동차는 곧 인류를 둘러싼 기계 문명을 뜻한다. 자동차 사고 때 피를 흘리는 인간은 기계 문명에 희생되는 인간이다. 등장 인물이 느끼는 쾌감은 기계 문명 속에서 살아가는 현대인의 일그러진 쾌감이다. 이 영화처럼 사이버 섹스에 담긴 인류의 미래는 암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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