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터스 인수한 IBM "빌 게이츠 덤벼라"
  • 金相顯 기자 ()
  • 승인 1995.06.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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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터스사 인수해 소프트웨어 시장에서 MS와 격돌
컴퓨터 업계의 공룡 IBM의 대반격이 시작되었다. 소프트웨어 업계의 강자 로터스 디벨로프먼트사를 인수·합병해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 회장이 쌓아올린 아성에 도전장을 낸 것이다.

IBM의 반격은 사상 초유의 인수·합병으로 시작되었다. IBM은 지난 6월11일 소프트웨어 업계의 강자 로터스사를 35억2천만달러(약 2조6천억원)에 인수키로 했다고 발표했다. 6월5일 IBM이 일방적으로 밝혔던 33억달러보다 조금 더 높아진 이 액수는 소프트웨어 업계 사상 최대 규모로, 주식 한주당 64달러를 지불한 꼴이다. 주식 시장에서 실제 거래되는 로터스의 주가는 그 절반을 밑돌았다. 그만큼 IBM이 로터스 인수에 공을 들였다는 얘기다. 더욱이 IBM은 로터스를 흡수하더라도 이름은 그대로 유지하며, 그간 추진되어 온 로터스의 여러 사업도 그대로 이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컴퓨터 업계의 두 공룡 기업이 손잡았다는 소식에 가장 놀란 사람은 당연히 마이크로소프트(MS)사의 빌 게이츠 회장이었다. “IBM이 로터스사를 인수한 것은 매력적인 시도로 보인다.” 처음에는 그도 IBM의 승부수를 높게 평가하는 듯했다. 그러나 그의 시각은 금세 냉소적으로 바뀌었다. “컴퓨터 하드웨어 기업이 소프트웨어 기업을 잘 경영할 수 있으리라 보지 않는다.”

IBM이 로터스를 합병함으로써 이제 MS사와의 정면 승부는 불가피해졌다. 87쪽 표에서 보듯 두 기업은 PC 운영체제, 표 계산 소프트웨어, 전자 우편, PC 통신, 중앙처리장치(CPU)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격돌한다. 로터스를 인수하기 전까지 IBM이 주로 힘을 쏟은 것은 PC 운영체제인 와, 중앙처리장치인 <파워PC>였다. 그러나 두 부문 모두 마이크로소프트에 역부족이었다.

로터스를 그룹웨어 기술의 중심에

오랫동안 권토중래를 꿈꾸어 온 IBM은 지금이야말로 그 꿈을 실현할 수 있는 최대의 호기라고 여기는 것 같다. 그 동안 컴퓨터 업계는 운영체제나 시장 환경이 크게 바뀌는 과도기에 흥망성쇠를 겪었다. 요즘이 바로 컴퓨터 운영체제가 16비트에서 32비트로 넘어가는 과도기이다. IBM의 과도기 전략은 아직까지는 그리 성공적이지 못했다. 32비트용 운영체제인 신제품 에 20억달러라는 거금을 쏟아부었지만 반응이 신통치 않았다. 유럽 지역에서 호평을 받아 백만 카피 이상 팔았다고 하지만 전세계에 깔린 PC가 6천4백여만 대이고, 2000년에는 1억대를 넘으리라는 전망이고 보면 일부 분석가들이 를 ‘가장 수명이 짧을 소프트웨어’로 보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는 현재 세계 운영체제 시장의 10% 정도만 점유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나마 풍부한 응용 소프트웨어를 거느린 <윈도스95>가 8월에 출시되면 자취조차 찾기 어려워지리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예측이었다.
그러나 IBM·로터스 합병으로 이런 예측은 이제 상당 부분 바뀌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컴퓨터 업계의 한 전문가는 “뛰어난 성능에도 불구하고 고사할 운명이던 에 로터스의 여러 소프트웨어는 결정적인 힘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워드 프로세서인 <아미 프로>, 표 계산 소프트웨어인 <로터스 1-2-3>, 거기에다 MS 제품보다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 그룹웨어 <노츠(Notes)>까지 에 묶는다면 충분히 해볼 만하다는 것이다. 더욱이 특정 소프트웨어 중심의 단일 품목보다 여러 관련 소프트웨어를 하나로 묶어 패키지로 판매하는 것이 이즈음의 행태이기 때문에 승부수를 던져볼 만하다는 계산도 깔려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IBM의 승부수가 반드시 성공한다는 보장은 없다. 우선 자존심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두 기업 총수 루이스 거스너(IBM)와 짐 만지(로터스)가 조화로운 협력 체제를 이루기 어려우리라는 것이 그 첫번째 이유다. 이번 통합으로 짐 만지 로터스 회장은 IBM 수석 부사장 겸 로터스 책임자가 됐지만, 그가 과연 얼마나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한번 의사를 결정하는 과정에 42명이 관여할 만큼 경직된 IBM의 관료 체제가, 어느 분야보다 신속하고 신축성 있는 대응이 필요한 소프트웨어산업을 감당할 수 있겠느냐는 우려도 나온다. 82년 시사 주간지 <타임>이 ‘올해의 기업’으로 뽑으리만큼 승승장구하던 IBM이 하드웨어 부문의 왕좌를 컴팩에, 소프트웨어 부문의 지배권을 MS사에 넘겨주게 된 것도 다운 사이징으로 대표되는 컴퓨터 사용 환경의 급격한 변화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IBM의 각오도 만만찮다. 거스너 IBM 회장은 이러한 부정적 시각에 대해 “바로 그러한 IBM의 문제점을 파악했기 때문에 로터스와 손잡은 것이다”라고 말한다. 그는 이른바 ‘그룹웨어’가 장래 소프트웨어 시장에서 주된 흐름을 형성하리라고 예측했다. 그룹웨어는 PC를 근거리통신망(LAN) 등 네트워크로 연결해 놓으면 다른 사무실, 심지어 다른 나라에 있더라도 같은 형태의 업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해주는 소프트웨어이다. “로터스를 그룹웨어 테크놀로지의 중심에 두겠다는 것이 내 의도이다”라고 밝힌 것도 같은 맥락이다.
미국의 경우 현재 5억달러 정도인 그룹웨어 시장이 앞으로 4~5년 안에 10배 이상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국내에서도 그룹웨어 시장은 가장 유망한 분야로 꼽힌다. ‘핸디소프트’‘나눔기술’ 등이 이미 자체 상품을 내놓아 은행·기업·대학 등에 설치했으며, 국내 컴퓨터 업계의 공룡이라 불리는 ‘한글과컴퓨터’도 최근 그룹웨어 부문에 진출하겠다고 선언했다.

국내 컴퓨터 산업에 도움

이처럼 막 달아오르기 시작한 그룹웨어 시장에서 로터스 <노츠>의 존재는 단연 독보적이다. 전체 그룹웨어 시장의 65%를 <노츠>가 독식하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사가 8월께 <익스체인지(Exchange)>라는 이름의 그룹웨어를 내놓을 계획이지만, 대다수 전문가들은 성능 면에서 <노츠>만 못할 것이기 때문에 소비자들이 ‘<익스체인지>로 익스체인지할’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본다. 사실 IBM이 그토록 로터스 인수에 열을 올린 이유의 80%도 바로 <노츠>에 있었다. IBM은 MS사가 이미 장악한 소프트웨어 부문에서는 승산이 적다고 판단하고 새롭게 떠오르는 그룹웨어 부문에 눈길을 돌렸다는 것이다.

로터스로서도 IBM에 흡수되는 것이 ‘밑지는 장사’는 아니다. 로터스의 직원들은 IBM과의 합병을 환영하는 분위기이다. 높은 기술력을 지닌 기업으로 평가 받던 로터스였지만 실제 경영에서는 엄청난 적자에 시달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기업의 경영 수지는 계속 나빠져 올해 1/4분기 적자 규모가 지난 한 해 손실액(2천만달러)에 육박하는 형편이었다. 스프레드 시트(표 계산 소프트웨어) 부문을 호령하던 <로터스 1-2-3>은 MS사의 <엑셀>에 1위 자리를 내주었고, 회심의 역작 <노츠>를 선보였지만 아직 그룹웨어 시장을 파고들지는 못한 상황이었다.

한편 MS를 표적으로 삼은 IBM의 공세 전략은 국내의 컴퓨터 환경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앞으로 내놓을 컴퓨터 제품에 <윈도스95>를 탑재키로 결정한 몇몇 기업이나, <윈도스95>를 기반으로 하여 소프트웨어를 만들려던 기업들은 여러 모로 숙고하지 않으면 안될 상황에 놓였다.

분명한 것은 특정 기업의 독점적 시장 지배보다는 현재의 IBM·로터스 대 마이크로소프트와 같은 경쟁 구도가 국내 컴퓨터산업의 미래로 보나, 일반 컴퓨터 사용자의 처지로 보나 더 바람직하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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