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땅에서도 견뎠는데 그리던 조국에서 변고라니…”
  • 丁喜相 기자 ()
  • 승인 1995.06.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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쿤사 마약왕국을 탈출한 뒤 지난해 8월 유엔의 도움으로 조국의 품에 안긴 문충일씨(57)가 채 정착도 하기 전에 아들을 잃는 비극을 맞았다. 지난 6월5일 집을 나간 문 철군(20·사진 맨 오른쪽은 생전의 모습)이 닷새 뒤인 6월10일 서울 암사3동 한강변에 있는 암사 취수장에서 변사체로 발견된 것이다.

문군의 사망 원인은 아직 정확히 밝혀지지 않고 있다. 사건을 담당한 서울 강동 경찰서측은 시신이 물 속에서 익사체로 떠올랐다는 점을 중시해 과거의 비슷한 사례처럼 자살 또는 실족사가 아닌가 보고 수사하고 있다. 그러나 문충일씨 가족을 비롯한 주변 보호자들은 그가 평소 자살할 뚜렷한 이유가 없었을 뿐더러 유서 한장 남기지 않았고, 수영을 할 줄 안다는 점을 들어 타살 의혹을 떨치지 못하고 있다.

이같은 의혹 속에 6월12일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서는 문군의 시체 부검이 실시됐다. 부검 결과는 일단 익사로 나왔다. 그러나 사망 후 물에 버려졌는지 아니면 물 속에서 사망했는지 여부는 부검을 하고 나서 보름쯤 지나야 결과를 알 수 있다는 것이 국립과학수사연구소측 답변이다.

문씨 일가족은 그동안 정부로부터 아무런 도움이나 신변 보호를 받지 못한 채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 인권위원회와 남양주시 제일교회의 도움을 받아 남양주 시내의 한 허름한 연립주택에서 살아 왔다.

지난해 말 이들에게 주민등록증이 발급되면서 문씨의 딸 미령양은 올해 미금중학교 1학년에 입학했고, 아들은 검정고시 준비를 위해 학원에 나갔다. 가족들은 문군이 고입 검정고시를 준비하느라 고생은 많았지만 만학의 열기가 대단했고 항상 활달하게 생활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지난 4월, 5월19일자로 나온 군대 징집영장을 받은 문군은 먼저 군에 입대해 한국 젊은이의 삶을 배우겠다는 의지를 보이며 준비하고 있다가 이런 변고를 맞았다.

문씨 가족은 그동안 임시로 살던 연립주택이 철거되게 되자 6월5일 근처에 2천4백만원짜리 전세를 얻어 이사했다. 새 보금자리에 이삿짐을 푼 뒤 나가 소식이 끊긴 문군은 닷새 만에 변사체로 발견됐다. 평생 그리던 고국의 품에서 채 정착도 하기 전에 아들을 잃은 문충일씨는 아들의 시신이 안치된 서울 천호동 강동가톨릭병원 영안실에 이런 추도문을 써놓았다. ‘죄악 많은 세상이라지만 부모 동생과 함께 조국을 찾았고 사랑하는 이웃도 찾았는데 같이 와서 같이 갈 순 없다지만 그래도 제 명에 가야지 이렇게 말 한마디 없이 비명에 가느냐…. 부디 네 혼이라도 이 조국에 남아 있거라. 너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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