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에 막힌 ‘열린 전시회’
  • 나권일 광주 주재기자 ()
  • 승인 1995.09.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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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15일 광주 비엔날레(9월20일~11월20일) 본전시 참여 작가 임옥상씨(45)는 출품작을 모두 싸들고 복잡한 광주 도심으로 나왔다. 전시장에서만 이루어지는 미술 전시회의 ‘벽’을 허물기 위해 거리의 벽에 작품을 붙이고, 시민들과 자유롭게 대화를 나눠보기 위해서이다. 임씨에 따르면, 한국의 벽은 담의 기능만 가진 ‘관리되어 있는 공간’이다. 닫힌 이 공간을 다양한 부착물과 낙서로 열어 구체적인 삶의 공간으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벽을 재해석하고, 그것을 깨려는 임씨의 시도는 또 다른 벽에 부딪혔다. 전남도청 앞 남도예술회관의 담과 광주우체국 앞 도로에서 벽을 ‘사수’하려는 경비원과 실랑이를 벌여야 했던 것이다.
임씨가 광주 비엔날레에 출품하는 작품은 여섯 가지 포스터이다. 5월 광주민중항쟁과 분단을 상징하는 38선, 삼풍백화점 참사, 반미 문제 등 한국의 현실이 담긴 영상을 작가 자신의 발바닥·등·엉덩이·이마 등에 투사해 이를 다시 사진으로 구성한 작품이다. 5·18을 다룬 포스터에서 그는 자기의 이마에 계엄군이 곤봉으로 시민을 구타하는 기록 사진을 투사하고, 그 옆에 ‘몇’이라는 글자를 새겼다.

임씨는 비엔날레 기간에 이 거리 작업을 계속할 참이다. 그와 함께 포스터를 붙이면서 대중과 대화하는 장면, 경비원과 실랑이하는 장면 들을 모두 비디오 테이프에 담고, 비엔날레 전시관에서 상영할 계획을 세웠다. 임씨는 “실험적인 이 작업은 90년대 예술가의 역할과 지식인의 사회적 실천 문제에 대한 고민을 드러낸 것이다”라고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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