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규 경남대학교 총장“대학총장 직선제, 폐단 극심하다”
  • 朴晟濬 기자 ()
  • 승인 1996.05.09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총장 직선제의 폐단은 총장 선출 이전부터 선거 때와 선출 이후까지 두루 나타나고, 그 후유증이 상상 외로 심각합니다. 총장 선출 방식을 바꿔야 합니다. 예를들면, 교수·동문·직원 대표와 지역 유력 인사가 참
총장 직선제 폐지론이 단순한 문제 제기 수준을 넘어 실행 단계로 접어들고 있다. 3월30일 경남대·계명대·관동대를 비롯한 8개 사립 대학 총장으로 구성된 한국지역대학연합이 모임을 갖고 총장 직선제 폐지안을 결의한 것이다. 이어서 4월5일에는 계명대 이사회가 직선제 폐지를 공식 발표했다.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 등 교수 단체들은 이에 맞서 직선제 고수를 위한 서명운동을 비롯해 ‘강력 저항’을 외치고 있다. 권위주의 정권 시절 대학 사회가‘대학 민주화’라는 목표 아래 힘겹게 ‘쟁취’한 총장 직선제를 왜 대학 스스로 반납하려는 것인가. 92년 이래 이 문제를 집중 제기해 온 경남대학교 박재규 총장으로부터 설명을 들어 본다.

총장들이 직접 나서서 교수들에 의한 총장 직선제를 폐지하자고 결의한 것은 이번이 처음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어떤 배경에서 이같은 결의가 나오게 됐습니까?

저를 포함한 지방의 몇몇 사립 대학 총장들은 각 대학의 발전을 위해 성격과 규모가 비슷한 대학끼리 공동 방안을 모색하자는 데 의견 일치를 보고, 약 1년 전부터 연합 형태의 협의 기구를 만들어 활동해 왔습니다. 한국지역대학연합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런데 항상 문제점으로 거론된 것이 총장 직선제로 인한 폐단입니다. 총장들이 제아무리 논의를 거듭해 좋은 협조 방안을 만들었어도 한 대학에서 총장을 새로 뽑는 일이 시작되면 온통 거기에만 매달려 공동 보조에 차질을 빚곤 한 것입니다. 그 사이 총장들 간에 자연스럽게 공감대가 형성됐던 내용이 이번에‘결의’형태로 나타났습니다.

그렇다면 적어도 8개 대학에서는 정말로 직선제가 폐지되는 것입니까?

그렇지는 않습니다. 직선제가 문제가 있어 가능한 한 제도를 개선하자는 것이지 무조건 직선제를 폐지하자는 것은 아닙니다.

박총장께서는 지난 몇년간 이 문제를 연구하신 경험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92년부터 여러 차례 직선제 문제에 대한 총장과 대학의 의견을 조사한 적이 있습니다. 92년에는 국·공립 대학 전체 의견을 물었고, 94년에는 사립 대학의 의견을 물어, 조사 내용을 대학교육협의회에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조사 결과, 총장들의 의견은 국·공립, 사립을 막론하고 직선제로 뽑힌 총장 자신조차 부정적인 것으로 나왔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이유 때문에 부정적 견해를 갖고 있던가요?

총장 직선제의 폐단은 총장 선출 이전부터 선거 때와 선출 이후까지 두루 나타납니다. 그리고 그것이 가져다 주는 후유증은 상상 외로 심각합니다. 먼저 선거 때까지 과정만 살펴보지요. 선거는 곧 경쟁이므로 총장 출마자들은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목소리부터 높입니다. 따라서 누가 목소리를 더 높이는가가 총장 선거에서 승패를 가름하는 관건이 됩니다. 그 과정에서 허무맹랑한 공약을 남발합니다. 선거전에 돌입해서는 상대방에 대한 인신 공격이 난무하고, 교수들 간에도 학연·지연·인맥이 얽히고 설켜 편 가르기가 진행됩니다. 총장 선거 이후는 더욱 후유증이 큽니다. 선거 운동 때 팬 감정의 골이 더욱 깊어져 교수들 간에 반목하는 현상이 고착됩니다. 총장 지지파는 무조건 총장을 지지하고, 반대파는 매사에 꼬투리를 잡아 총장을 공격하면서 대학측의 정당한 요구조차 받아들이지 않기 일쑤입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대학을 정상으로 운영하기가 불가능하지요. 요즘 직선제로 총장을 뽑은 대학 가운데 이같은 후유증으로 홍역을 앓지 않는 대학은 한 군데도 없습니다.

실익보다는 비용이 크다는 말씀으로 들립니다만, 총장 직선제는 ‘대학 민주화의 꽃’이라는 상징적 의미가 큽니다. 직선제를 없애려 한다면 교수 사회의 반발이 만만치 않을텐데요?

과거 경험에만 비춰 보면 물론 그렇습니다. 옛날의 총·학장들은 위에서 시키는 대로 도장만 찍으면 됐습니다. 국·공립 대학 총장은 교육부가 시키는 대로 하면 됐고, 사립 대학은 재단의 의중을 따르기만 하면 능사인 것으로 인식됐습니다. 이 때문에 대학에‘비민주’라는 딱지가 붙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상황이 크게 달라졌습니다. 민주화가 되면서 사회 분위기도 경쟁을 중시하는 체제로 바뀌었고, 재단 역시 이같은 경쟁에서 살아 남기 위해 유능한‘관리형 총장’을 모시려는 태도가 역력합니다. 선진국의 대학, 예컨대 미국 예일 대학이나 펜실베이니아 대학에서는 대학 운영을 위해 재단이 직접 나서서 30~40대 총장까지 모셔오는 판입니다. 물론 총장 직선제는 대학에서 민주적 절차가 보장된다는 점에서 아직도 유효한 부분이 있습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시대와 상황이 달라졌다는 것이지요. 선진국 대학들이 총장을 직선으로 뽑지 않는 이유를 곰곰히 따져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더라도 직선제를 없애겠다는 발상은 너무 일방적인 것 아닙니까? 교수들이 총장 직선제 폐지론을 제기했다는 말은 여지껏 듣지 못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저는 일찍이 92년부터 직선제에 대해 문제를 제기해 왔지만 정작 학교 안에서는 학내 구성원의 의견을 따라 줄곧 직선제를 존속시켜 왔습니다. 앞으로도 이 문제에 관한 한 학내 구성원의 의견을 따를 생각입니다. 또 교수 사회 전체가 직선제를 찬성한다고들 하는데 반드시 그렇지도 않습니다. 꽤 많은 교수가 내심 직선제 폐지에 찬성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이들이 자기네 의견을 드러내지 못하는 이유는, 섣불리 문제를 건드렸다가 받게 될지도 모를 비판 때문입니다. 말하자면 교수들 사이에서도 직선제 폐지론이 잠재해 있는 상태이지요.

이번 ‘결의’에 참여하지 않은 다른 대학들의 반응은 어떻습니까?

직접 확인한 바는 없어도 대체로 우리와 처지가 비슷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이미 세종대·건국대·대구대에서는 직선제를 포기했습니다. 8개 대학 모임에 참여하고 있는 아주대·울산대는 재단측 결정으로 바로 직선제를 폐지했습니다. 모르긴 해도 직선제를 실시하는 대학의 절반 이상이 앞으로 4~5년 안에 다른 형태의 총장 선출 형태로 돌아설 것입니다.

‘재단의 전횡’은 특히 사립 대학에서 아직도 보편화된 현상으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직선제를 없애면 재단의 전횡을 견제할 유력한 수단이 사라지는 것 아닙니까?

재단의 전횡은 일부 학사 운영이 방만한 소규모 대학에서나 발생하는 일입니다. 또 그런 식으로는 갈수록 치열해지는 대학간 경쟁에서 살아 남을 수 없다는 인식이 이미 널리 퍼져 있습니다. 재단이 전횡을 일삼다가는 자멸할 것이 뻔한데 누가 그런 길을 가겠습니까. 과거에는 몰라도, 앞으로 재단의 전횡은 그리 큰 문제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만약 총장 직선제 폐단을 개선해 다른 제도를 시행한다면 어떤 방식으로 총장을 뽑아야 옳다고 보십니까?

교수·동문·직원 대표와 지역 유력 인사가 참여하는 총장추천위원회가 총장을 복수 추천하여 그 중 한 사람을 재단이 지명하는 방식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른바 추천위원회 제도이지요. 이 제도는 이미 지난해 포항공대가 고 김호길 초대 총장 후임을 선출할 때 처음 실시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우리 대학은 이 제도를 원용하여 단과 대학 학장을 추천 방식으로 뽑았는데 잡음이 사라지는 등 결과가 좋았습니다. 총장의 경우에는, 예컨대 학내 인사 3명·학외 인사 2명 등 학내외에서 복수 추천을 받고, 교수들로 구성된 심사위원회에서 심사를 거친 뒤 재단측에 선택을 맡기는 방식을 고려해 볼 수 있습니다. 직선제 폐단을 없애면서도 민주적 절차를 구현할 수 있는 일거양득 장치가 될 수 있지요.

재단 이사장과 총장을 겸하고 있는 이른바 ‘오너 총장’으로서 바람직한 대학 운영에 대해 한말씀 부탁합니다.

사립 대학은 규모의 대소를 막론하고 갈림길에 처해 있습니다. 이젠 국내 대학간 경쟁이 문제가 아니라 국제 경쟁에도 신경 쓰지 않으면 살아 남지 못합니다. 그러자면 개혁은 필수이지요. 문제는 어느 조건에서 개혁 작업이 최적의 효과를 낼 수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재단과 총장, 그리고 학내 구성원이 하나가 되지 않으면 개혁이 실패로 돌아갈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재단과 교수가 서로 맞붙어 소모전을 되풀이하기에는 우리 나라 사립 대학이 처한 상황이 너무 급박합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