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학을 전공한 한의사가 공대 교수로, 그것도 고희(古稀)에 새 출발을 하게 된 계기가 남다르다. 국민학교 시절 그는 공학을 하고 싶었지만 독립운동가의 집안이라는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엄두도 내기 힘들었다. 꿈을 버리기 아까웠던 그는 함석 조각을 가위로 오려 만든 ‘공(工)’자를 옷깃에 붙이고 다닐 정도로 공학의 길을 동경했다. 한의학에 종사하면서도 꿈을 버리지 못한 그는 척추간판과 관절을 치료하는 운동 장치를 발명해 한국뿐 아니라 미국·일본·캐나다 등에서 특허를 획득하기도 했다.
국내 몇몇 대학이 제의해 온 명예박사 학위도 번번이 마다한 그는 이번 임용이 55년 만에 꿈을 이룬 것일 뿐이라며 새출발의 의욕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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