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러기 아빠’의 가족은 5백명
  • 박병출 부산 주재기자 ()
  • 승인 1995.08.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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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직후 황해도에서 외기러기처럼 단신 월남한 오세훈씨(60)는 늘그막에 ‘기러기 아빠’가 됐다. 도회지를 전전하다 2년 전 경남 고성군에 ‘둥지’를 틀고 기러기 사육을 시작한 것이다.

부리는 오리, 머리는 칠면조, 몸통은 거위, 발은 기러기를 닮은 이 괴상한 기러기가 원산지인 중남미에서 국내로 흘러 들어온 경로는 분명하지 않다. 충북 영동에 사는 친지에게서 백여 마리를 분양 받아 5백마리로 늘린 오씨도, 조류학자 원병오 박사(경희대 명예교수)에게 문의해 최근에야 ‘족보’를 캐냈다. 정식 이름은 ‘머스코비 기러기(Domestic Muscovy Duck)’였다.

머스코비 기러기는 질병에 강하고 성장 속도가 빨라 태어난 지 4개월 만에 7㎏까지 자란다. 육질은 오리고기와 비슷하지만 훨씬 더 부드럽고 담백하다. 요리해 놓으면 은은한 향기가 난다 해서 ‘사향조(麝香鳥)’라는 별명도 갖고 있다.

오씨는 “재미삼아 시작한 일인데, 이제는 이 놈들을 키우는 데 여생을 바칠 생각이다”라고 말한다. 원병오 박사도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과 대만에서는 식용으로 널리 보급되고 있다. 성장률과 번식력이 좋아 사육 전망이 무척 밝다”고 관심을 표했다. 태풍 ‘페이’가 불어닥쳤을 때는 밤중에 전기가 끊겨 부화중이던 알 2천여 개가 고스란히 ‘날아가’ 버리기도 했다. 그러나 오씨는 흩어진 꿈을 줍는 심정으로, 기러기들이 이틀에 1개 꼴로 낳는 알을 다시 모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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