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찬 총리 지명자 “총리 권한·역할 적극 행사하겠다”
  • 이숙이 기자 (sookyi@sisapress.com)
  • 승인 2004.06.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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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혁규 총리 카드가 여의치 않자 노무현 대통령은 ‘이해찬 총리’라는 깜짝 카드를 꺼내들었다. 한명숙·전윤철·이헌재 등 헛다리를 짚던 정치권과 언론은 이해찬 카드가 공개되고 나서야 고개를 끄덕이는 분위기다. 총리에 지명된 지 이틀 지난 6월10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이지명자를 만났다. 이지명자 방은 몰려드는 기자와 카메라로 바글바글했다.

발표 전날(6월7일) 대통령을 만났을 때 낌새를 못 챘나?

정확한 낌새는 못 챘고, (총리) 후보군에 들어가 있다는 얘기는 직접 들었다. 일반적인 총리 역할과 집권 2기 국정운영 방향 등을 물어보기에 ‘지난 1년은 입안하는 데 치중했으니, 이제는 착실하게 실행해 가는 게 좋겠다’고 했는데, 나중에 보니 그게 테스트였다. 자리가 끝날 때쯤 대통령이 ‘이의원을 포함해 서너 명을 놓고 오늘 밤에 고심해 보겠다’고 하더라. 다음날 언론 보도를 보고 최종 확인했다.

대통령이 왜 이의원을 선택했다고 보는가?

대통령이 나를 지명하면서 여당 지도부에 이렇게 얘기했다더라. ‘이의원은 내가 신경 쓰지 않아도 자기 할 일을 알아서 다 하는 것 같다. 일 맡기면 내가 신경 쓸 필요가 없다’라고. 천정배 원내대표가 이 말을 전해주던데, 아마 지난 대선 때 단일화를 할 것인가 말 것인가 그런 큰 일말고 자질구레한 일은 내가 다 알아서 진행한 것을 두고 한 말인 것 같다.

노대통령과 성향이 비슷하다며 ‘코드 총리’ 논란이 있다

지향하는 점은 비슷한데 접근하는 방식은 다르다. 대통령은 대단히 논리적이면서도 대중적으로 풀어내려고 하고, 나는 논리를 지식인 식으로 풀어내려고 한다. 울산중공업 파업 때 같이 내려간 적이 있는데, 나는 차분차분 설득하려고 하는데, 그 분은 대중 강연을 아주 잘 하시더라.

원내대표 낙선이 전화위복이라고 해야 하나?

무슨 소리? 17대 국회 한번 제대로 만들어보려고 선거운동 정말 열심히 했었다(웃음). 초선 의원이 많다 보니 원내대표의 역할보다는 선명성을 더 선택의 기준으로 삼은 것 같다. 하지만 개혁이라는 목표는 같아도 최다선이 선명을 선도해갈 수는 없지 않은가.

대통령과 오래 알고 지냈는데, 서로 이견으로 맺혔던 적은 없는가?

그런 일은 별로 없고…. 한 가지 미안했던 건 있다. 대선 후보 경선 때 내 방에 와서 자기 좀 도와 달라, 지지하는 현역 의원이 너무 없다고 요청하는데, 당시 당 정책위의장을 맡고 있어서 그걸 받아들이지 못했다. 이인제 의원이 타당하다고 보지는 않았지만 중립을 지켜야 했다. 그 점을 서운하게 생각했을 것이고, 나도 그 부분이 마음에 걸렸다. 그래서 후보가 된 후에는 선대위 맡아 열심히 했다.

책임총리제가 안 맞는다고 한 이유가 무엇인가?

선거 때 말한 책임총리제는 참여정부에서는 좀 시행하기 어렵다는 의미다. 지금은 각료임명제청권과 해임건의권 정도가 대통령에 대해 총리가 가지는 권한인데, 이 부분도 실제로 시행해 보면 잘 운용할 수 있다. 총리가 이런저런 사람 필요하다고 제청해서 대통령이 납득하면 임명하지 않겠나. 지금까지 총리들이 이를 잘 행사하지 않은 것은 능동적으로 정책 관리를 하기보다 총리실 기능을 작게 운영한 경향이 있었기 때문이다.

총리 역할을 적극적으로 하겠다는 의미인가?

대통령도 고유 영역이 아닌 정책 과제들은 총리실이 많이 관리하기를 기대하고 있다. 실제로 교육부장관과 정책위의장 시절 김대중 대통령을 만나 보면 의전 업무만 해도 너무 많아 정책 관리를 치밀하게 하기가 쉽지 않더라.

정동영 전 의장, 김근태 전 원내대표의 입각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인가?

그건 민감한 사안이어서 일절 얘기 안한다. 다만 권력 투쟁으로 보는 것은 문제가 있다. 그렇게 보이지 않기 위해 내가 대권에 관심이 없다고 더 강조하는 것 아닌가.

대권에 관심이 없다는 게 자랑거리인가?

실제로 나는 대권에 관심이 없다. 지위나 위치 그런데는 좀 둔하고, 생각보다 세속적이지 않은 사람이다(웃음).

총리 끝나고 나면 무얼 할 생각인가?

당연히 당으로 돌아와야지.
의정 성적이 초·재선 때는 좋았지만, 16대의 경우는 꼴찌에서 몇 번째다.

1998년부터는 사실상 상임위 활동을 할 형편이 아니었다. 교육부 갔다 와서 바로 총선 치렀고, 정책위의장으로 2년 보낸 뒤에는 김민석 서울시장 선대위원장 했고, 그 다음에는 대선 치르고, 지난해에는 신당 만드느라 1년을 보냈다. 게다가 정책위의장 지낸 사람이 상임위에 가서 발언하니까 정부 부처에서 부담스러워하더라. 역할이 바뀐 것이다.

교육부장관 시절 정책을 스스로 평가한다면?

교원 정년 단축은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국민들도 공감했다. 다만 선생님들에게는 지금도 미안한 심정이다. 교육 정책은 늘 논란이 많게 되어 있다. 하지만 입시제도 전환이나 BK21 등의 방향은 옳았다고 본다. 주입식 단답형 교육, 수능 총점수에 의해 대학에 가는 제도는 산업사회 때는 몰라도 다원화한 지식 기반 사회에서는 바람직한 방식이 아니다. 나만 봐도, 서울대 공과대에 수학 점수가 아주 나쁜 채로 들어갔더니 자연히 물리도 못 따라가고 해서 결국 다시 시험 봐서 문리대로 옮길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자기 적성에 맞는 분야에 역점을 두고, 그 쪽에 가중치를 둔 학교를 선택하도록 그렇게 입시제도를 합리적으로 바꾸자고 한 것이다. 그런데 전환 과정에서 그 방식에 잘 적응하지 못한 학생들이 생기고, 상대적으로 재수생에 비해 불이익을 보는 결과가 생겼다. 시행 초기에서는 일리 있는 지적이다. 하지만 지금은 어느 정도 정착되어서 수시 입학 제도나 면접 비중이 높아지는 방향으로 잘 가고 있지 않은가.

전교조에서는 벌써 총리 반대 논평을 냈다

교총은 정년 단축 때문에, 전교조는 학교와 교사 평가제도 같은 것을 도입한 것 때문에, 신자유주의 정책이라며 (나를) 반대하고 있다. 하지만 교원 사회의 질을 높여야 한다는 차원에서 평가 개념을 도입하는 건 불가피했다. 전교조를 합법화한 사람도 나 아닌가.

전교조는 교권 추락이 교사 평가 논의가 나오면서 시작되었다고 주장한다

사회 전반이 그런 거지 학교 현장에서만 그런 건 아니지 않은가. 요즘은 여성들한테 말 한마디 잘못하면 잡혀가는 세상인데….

경제를 잘 모른다는 야당의 주장에 대해서는 동의하는가?

동의한다. 계수조정위원을 여러 차례 해서 재정 쪽은 좀 알지만, 넓은 의미의 경제, 산업·금융·경영은 내가 전문가가 아니지 않은가. 대신 경제 부총리가 출중하고 경험이 많으시고, 나도 전반적으로 이해는 하는 수준이니까, 대화를 많이 나누려고 한다.

젊은 총리가 오는 데 대해 경제 부총리가 좀 불편해 하지 않겠는가?

오늘도 부총리와 통화했다. 내가 정책위의장일 때 그 분이 재경부장관이어서 당·정 협의 많이 했다. 언젠가 당·정 협의 과정에서 내가 (이헌재 장관에게) 고함을 지르고 했다는 보도가 난 적이 있는데, 전혀 사실이 아니다.

대통령이 부동산 원가 공개를 반대한 것이 논란거리다. 당하고도 생각이 다른 것 같고.

원래 우리당 입장이 원가 공개가 공약은 아니었다. 공약집에 보면 ‘주택 시장에의 영향, 소형주택 공급 확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신중하게 검토하겠다’고 나와 있다. 일종의 검토 사안이다. 그런데 당·정 협의 과정에서 너무 쉽게 처리한 것이 화근이다. 시민단체가 반발하니까 당 지도부가 전면 공개하는 것처럼 언명하다 보니 일이 좀 복잡해졌다. 원가 공개는 고려해야 할 부분이 많다. 그런 것 잘 처리하려면 상임위 먼저 배정해서 건교부 입장 들어보고 결론을 냈어야 한다.

대통령의 경제 관련 인식이 서민과 너무 동떨어져 있는 것 아닌가?

같이 얘기해 보니까 그런 건 아닌 것 같다. 위기론 가지고 자꾸 부풀리니까 심리적으로 위축되고 개혁도 위축될까 봐 경계한 것이다. 내수 경기 침체된 것 아주 잘 알고 계시더라.

행정 수도 이전이 ‘천도’라는 말이 나온다.

행정 수도 이전에 대해서는 이미 여야 합의로 특별법이 만들어졌고 선거 때 평가도 받은 것이다. 대도시 만드는 것도 아니고 인구 50만명 전후의 행정 도시를 건설하는 건데 그게 무슨 천도인가.

아무튼 대한민국 수도는 이제 서울이 아니라 다른 곳이 되는 것 아닌가?

중요 기관이 옮겨가는 것이니까 그렇게 볼 수는 있겠지만, 천도는 아니다. 천도라는 개념은 과거에 한 왕조가 그 지역을 버리고 다른 지역으로 가서 둥지를 트는 것을 말하는데, 지금 우리는 그런 의미는 아니지 않은가. 수도권 과밀을 해소하고 행정수도를 지방으로 이전해 경제와 행정을 떼어놓자는 정도다. 권력이 몽땅 옮겨가고 그러는 것 아니다.

야당은 국민투표를 주장하는데.

검토해 본 적 없다.

여당이 무척 위축된 분위기다. 대권 주자급이 당을 맡아야 한다는 얘기도 있다.

고정 관념으로 그런 얘기들을 하는데, 정동영 김근태 두 사람이 다 준비하고 있는 것 아닌가. 우리는 당 중심이 아니라 의회 중심으로 가겠다는 게 기본 컨셉트이다.

유시민 의원이 총리 지명 과정에서 많은 역할을 했다는 얘기가 나오는데.

이번 일에 전혀 관여 안했고, 내가 알려줘서 알았다.

야당에서는 교육부장관 시절 유시민 의원을 학술진흥재단 기획실장으로 보낸 것이 정실 인사였다고 공격할 태세다.

당시 박석무 이사장이 동양학 전문가여서 서양 학문 쪽을 보완하라고 정태인 박사랑 두 사람을 일부러 보낸 것이다. 둘이 가서 제일 먼저 한 게 홈페이지를 만들어서 연구 실적 없는 사람은 아예 연구비를 신청할 수 없도록 만든 것이다. 연구비 나눠먹기로 복마전 같던 학술진흥재단 개혁의 초석을 그때 다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총리 인준이 무난하리라고 보는가?

어떤 돌발 변수가 나올지 모르는 일이니까 장담할 수는 없지만, 야당을 방문해 보니 당론으로 반대하겠다는 데는 없더라. 박근혜 대표는 안보에 신경을 써달라고 주문했는데, 그건 총리가 됐을 때를 가정한 주문 아닌가?(웃음). 한화갑 대표는 ‘준비된 총리’라고 덕담을 해주셨고, 민노당에서도 구체적인 반대 말씀은 안 하시더라. 김혜경 대표는 우리 지역(관악구)에서 빈민운동을 하면서 13대 총선 때 내 운동 열심히 해주셨다. 그 다음 지방 선거 때 영입하려고 했는데 무소속을 고집하셔서 우리당에서는 일부러 좋은 후보 안 냈다. 자민련 김학원 대표는 같은 고향(충남 청양) 출신이고…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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