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로2004 우승 후보 6개국의 ‘아킬레스건’
  • 주진우 기자 (ace@sisapress.com)
  • 승인 2004.06.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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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적의 팀에도 ‘구멍’은 있다
일부 축구 전문가들은 유럽축구선수권대회를 월드컵보다 더 높이 평가한다. 브라질·아르헨티나가 빠지지만 아시아·북미 등 축구 후진국들이 출전하지 않아 경기 수준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유럽의 골수 축구팬들은 유럽선수권을 월드컵보다 확실히 더 높이 평가한다. 숙명의 맞대결이 줄줄이 이어지고, 매 경기마다 특별한 의미를 갖기 때문이다. 유럽의 축구 강국 치고 세계의 패권을 한 번 잡아보지 않은 나라가 없다. 수많은 전쟁을 치르며 얽히고 설켜 사연도 구구절절하다.

2004년 대회 A조에서 만난 포르투갈과 스페인은 대항해 시대까지 거슬러올라가는 앙숙이다. B조의 잉글랜드와 프랑스는 100년 전쟁을 치른 구원이 있다. D조 독일과 네덜란드의 대결은 ‘유럽의 한일전’이다. 제2차 세계대전 기간에 독일은 네덜란드를 5년간 점령했고, 네덜란드인들은 대부분 저항운동에 가담했다.

유럽축구선수권대회에 훌리건들이 총출동하는 것은 이런 연유에서다. 월드컵은 숙명의 라이벌전이 적어 싸울 일이 없다. 훌리건의 본거지 영국의 경우, 대회 기간에 독일 소시지집, 프랑스 식당, 터키 케밥집 앞에 차를 주차하는 것은 금물이다. 자동차 유리창이 깨지거나 불에 탈 수도 있다.

언론도 축구 전쟁에 참전해 여론을 부추긴다. 6월14일 프랑스전을 앞두고 영국의 <선>은 이렇게 불을 당겼다. ‘티에리 앙리! 나폴레옹! 잔다르크! 클로조 경감! 패트릭 비에이라! 샤를 드골! 르노-5! 자크 시라크 대통령! 시라크 대통령, 잘 들어요. 곧 잉글랜드 선수들이 당신들에게 벌을 내릴 겁니다.’

‘총성 없는 전쟁.’ 2004년 유럽축구선수권대회(유로2004)가 포르투갈에서 막이 올랐다. 6월13일~7월5일 열리는 유로2004는 지단·피구·칸·델피에로 등 지난 10년간 세계 축구를 이끌어온 스타들의 마지막 무대가 될 것으로 보여 어느 해보다 눈길을 끈다. 경기력 면에서도 최고의 무대가 될 것이다. 과연 ‘앙리 들로메 컵’(유럽선수권대회 우승컵)은 누구의 품에 안길까. 우승 후보와 그들의 아킬레스건을 살펴보았다.

포르투갈
`킬러`없고 노쇠
예선 통과 험난


1989·1991년 세계청소년대회를 연거푸 우승했던 포르투갈의 주역들을 ‘황금 세대’라고 부른다. 피구·콘세이상·루이 코스타가 그들이다. 유로2004는 ‘황금 세대’의 마지막 기회다. 이번을 놓치면 포르투갈은 수십 년을 더 기다려야 할지도 모른다. 1972년생 피구는 이번 대회를 마치고 대표팀에서 은퇴하겠다고 배수의 진을 쳤다.

개인기로만 따지면 포르투갈은 최고다. 어떤 선수든 수비수 한 명쯤은 가볍게 제친다. 하지만 주력 멤버가 30세를 넘긴 포르투갈의 스피드는 단단한 수비 라인을 무너뜨리기에는 역부족이다. 피구가 지키는 미드필더진은 정상급이지만 파울레타와 짝을 이루어 골을 잡아낼 킬러가 없다. 또 수비수들의 뜬 볼 처리 능력은 우려할 만한 수준이다.

포르투갈은 6월21일 공식적으로 단 한 번도 이기지 못한 스페인과 ‘이베리안 혈전’을 앞두고 있다. 스페인전 역대 전적은 5무4패. 그러나 포르투갈은 홈에서 경기를 한다. 예선만 통과한다면 가장 강력한 우승 후보로 꼽힌다.

프랑스
지단 펄펄 날지만
수비는 허점투성이


우승 후보 0순위 프랑스. 기술적·전술적·신체적으로 최고다. 완벽에 가깝게 균형이 잡혀 있다. 프랑스는 최근 2년 동안 진 적이 없다. 잉글랜드전에서 지단은 베컴보다 한 수 위임을 증명했다. 하지만 프랑스는 전혀 프랑스다운 경기를 하지 못했다. 볼을 오랫동안 소유하고 있었을 뿐 이렇다 할 작품을 만들어내지 못했다. 2002년 한국에서처럼.

미드필더 패트릭 비에이라(아스날)가 신출귀몰하며 수비에 가담했지만 수비도 허점을 보였다. 웨인 루니의 스피드에 몇 차례 완벽하게 무너졌다. 세계에서 가장 ‘더러운’ 수비를 하는 중앙 수비수 마르셀 드사이(첼시)의 결장이 커 보인다.
스페인
페널티킥만 넣으면
우승은 떼어놓은 당상?


스페인은 유럽 최고의 리그와 레알 마드리드·바르셀로나 등 최고 클럽을 가지고 있다. 라울과 모리엔테스가 이끄는 공격진, 바라하와 엘베다가 지키는 허리, 푸욜과 엘게라가 버티고 있는 수비까지, 어디 하나 나무랄 데가 없다. 하지만 큰 대회에서는 죽을 쑨다. 고질적인 지역 감정이 원인이다. 스페인 선수들은 자신이 뛰고 있는 클럽 경기를 국가대표 경기보다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대표팀의 팀워크가 영 말이 아니다. 다른 지역(클럽) 선수에게는 패스가 제때 안 간다.

스페인의 또 다른 장벽은 징크스다. 페널티킥과 8강 징크스를 극복하지 못했다. 스페인은 2002년월드컵 8강에서 호아킨이 페널티킥을 실축해 한국에 무릎을 꿇었다. 유로2000 프랑스와의 8강전에서는 라울 곤잘레스(레알 마드리드)가 동점 기회에서 페널티킥을 관중석으로 날려버렸다. 스페인은 유럽선수권대회 본선에서 얻어낸 여덟 번의 페널티킥 중 무려 네 번을 실축했다. 라울은 “8강에 올라가면 마치 저주를 받은 것같이 탈락했다. 유로 2004에서는 일단 8강 징크스를 무조건 깨겠다”라고 말했다.

중요한 경기일수록 세트 플레이의 의미는 크다. 스페인은 역사적으로도 여기에 서툴렀다.

잉글랜드
축구 종구국 체면
베컴 발에 달렸다


잉글랜드는 젊다. 빠르고 힘이 있다. 평균 나이가 27세에 못 미친다. 참가국 가운데 가장 젊다. 마이클 오웬과 웨인 루니가 호흡을 맞추는 공격진의 스피드와 베컴·램파드·스콜스·제라드 등 미드필더의 힘이 대단하다.

잉글랜드는 허리 아래를 많이 걱정했다. 잉글랜드는 올해 모든 경기에서 적어도 한 골 이상을 실점했다. 심지어 일본에게도. 도핑 검사를 거부해 출장 정지 처분을 받은 세계 최고 몸값 수비수 리오 페르디난드의 공백이 치명적이었다. 하지만 유로2004 첫날 경기에서 프랑스의 공격을 거의 완벽하게 막아냈다. 단 후반 추가 시간 3분만 빼고.

이번 대회의 키는 주장 데이비드 베컴(레알 마드리드)이 쥐고 있다. 베컴은 프랑스전 페널티킥을 실축하면서 팀의 승리도 날려버렸다. 베컴의 전매특허인 ‘부메랑 크로스’가 살아나지 않는다면 잉글랜드는 예선 통과도 어려워 보인다.

네덜란드
실력은 유럽 최고
골잡이 너무 많아 `탈`


“멤버들의 수준을 생각하면, 네덜란드가 1988년 유럽선수권대회 이래 우승하지 않고 있는 것이 이상해서 견딜 수 없다.” 네덜란드 축구의 전설 데니스 베르캄프의 말이다. 네덜란드는 언제나 가장 멋진 플레이를 한다. 하지만 언제나 이기는 경기를 하는 것은 아니다.

네덜란드는 골잡이가 너무 많은 것이 문제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지난 시즌 득점왕 루드 반 니스텔로이(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유로2000 득점왕 클루이베르트(바르셀로나), 스페인 프리메라리그 지난 시즌 득점왕 로이 마카이(바이에른 뮌헨), 여기에 젊은 피 반 데어 바르트(아약스), 아리엔 로벤(첼시)까지. 쟁쟁한 멤버들이 포지션을 다투고 있다. 네덜란드는 클루이베르트·다비즈(바르셀로나) 등 개성이 뚜렷한 스타들을 하나로 묶어내야 한다. 1996년 유럽선수권대회 도중 에드가 다비즈는 히딩크 감독이 인종 차별 발언을 했다며 물병을 던지고는 네덜란드로 돌아가버렸다. 당시 팀은 잉글랜드에 치욕적인 패배를 당했다.

플레이메이커 세도르프가 부상으로 출전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네덜란드의 성적은 ‘싸움닭’ 다비즈의 활약에 달려 있다. 유로2004 출전 선수 중 최단신(169cm)인 다비즈는 전세계를 통틀어 따라갈 자가 없을 정도로 많이 뛴다.

이탈리아
수비력 과신하다
툭하면 역전패


네덜란드·스페인·포르투갈이 멋진 경기를 한다면 이탈리아는 이기는 경기를 한다. 재미없는 축구를 한다는 측면에서는 독일과 비슷하다.

이탈리아는 기술적으로 매우 뛰어나지만 개인 플레이를 하는 법이 없다. 잉글랜드 에릭손 감독은 “이탈리아 선수들은 축구를 어떻게 하는지를 아는 선수들이며, 볼을 뺏기지 않는 볼 소유 능력이 대단하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수비력을 과신해서 이기고 있는 상황에서는 일찌감치 문을 잠그려 하는 우를 범하기도 한다. 프랑스와 맞붙은 유로2000 결승. 이탈리아는 후반 추가 시간에 프랑스에 동점골을 내주고 연장전에서 골든골을 허용해 무너졌다. 2002년 월드컵 한국과의 경기에서도 1-0으로 앞서가다 후반 동점골, 연장 골든골에 당했다.

이탈리아의 키 플레이어는 델 피에로(유벤투스)다. 이탈리아에서 델 피에로는 특별한 사랑을 받는다. 마치 홍명보와 비슷하다. 하지만 메이저 대회에만 나서면 힘을 못 쓴다. 최근 이탈리아가 우승컵을 안지 못한 큰 이유 가운데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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