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시우 전 서울대 교수“서울대 출신이 나라 망쳤다”
  • 金芳熙 기자 ()
  • 승인 1998.06.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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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대학에서 어디 인성 교육이 되나요. 경쟁 의식만 잔뜩 키우고, 연구 업적이건 뭐건 양으로만 따지는 거에요. 이게 교육인가? 인간을 소외시키고, 지식을 사고파는 거지. 서울대가 대성학원보다 나을 게 뭐가
정년이 5년이나 남은 서울대의 한 교수가 사표를 내고 학교를 떠났다. 정년 퇴임 이후에도 명예교수라는 이름으로 학교에 적을 두려고 안달하는 교계에서 보기 드문 일이다. 그러나 당사자인 이시우 전 서울대 교수(60·천문학과)는 이 일로 인터뷰를 요청하자, “별 일도 아닌데, 뭐”하며 마땅찮아 했다. 그래서 찾아 나선 그의 집은 재개발을 앞두고 있는 서울 동작구 신대방동의 25평형 교수 아파트. 22년째 그 곳에서 산다는 그는 1남2녀를 출가시키고, 지금은 아내와 단둘이 집을 지키고 있었다.

그만두시게 된 특별한 계기라도 있습니까?

요즘 와서 그런 생각을 한 것은 아니고, 대학 다닐 때부터 명예교수라든가, 이런 명분으로 나이 들어서까지 학교에 발을 걸쳐 두려고 하는 것을 좋지 않게 봤어요. 서울대에서 정년 퇴직하지 않겠다고 늘 말하고 다녔지요. 요즘 취직이 어려워서 이 분야에도 노는 사람이 많으니, 제가 나가면 한 사람이 들어올 수 있으니까 그것도 좋은 거고.

은퇴 시기를 60세로 잡은 이유가 무엇입니까?

65세 정년이 돼서 밀려나듯 떠나지는 않으마 하고 생각하고 있다가, 지난해 그만두려고 했지요. 작년 1월까지 80년대에 쓰던 강의록을 가지고 <태양계 천문학>이라는 교재를 쓴 뒤 그만두려고 했는데, 작업이 늦어져서 작년 12월이 돼서야 끝났어요. 사람들이 자기 자신을 잘 돌아보지 못하면서 지내잖아요. 육십이 넘으면 자신을 뒤돌아보면서 자기 자신한테 책임을 질 수 있어야 하지 않겠어요?

동양 철학에도 관심이 많다고 들었는데, 둘 사이에 어떤 관련이 있습니까?

학문에서는 여러 가지 고립된 상황을 가정하지만, 자연은 더불어 사는 열린 시스템이에요. 별도 마찬가집니다. 집단을 형성해 살아가는 것이 그렇게 인간하고 같을 수가 없어요. 사람이 생물화학적 진화를 하는 데 반해 별이 물리화학적 진화를 한다는 것만 차이가 있을 뿐이지. 노장 사상에서는 자연의 섭리가 자연이 스스로 양육하면서 사는 것이라고 하는데, 별이 그렇거든요.

천문학을 공부하시게 된 계기는 무엇입니까?

박정희 대통령 시절 국세청장 했던 이낙선씨 영향이 컸지요. 그 분이 사범학교 졸업하고 제가 초등학교 5학년 시절 담임 선생님으로 왔어요. 1년간 우리를 가르치다 포병대로 가셨지요. 작문 시간인가 그랬는데, 천문학 얘기를 참 재미있게 했거든요. 그 때야 천문학이 뭔지나 알았나요. 대학 들어갈 때 철학과를 가고 싶었는데, 철학과 가면 먹고 살기 힘들다고 해서 물리학과에 입학했죠. 2학년 때 전과를 하는데 이 선생님 말씀 생각이 나는 거에요. 그래서 천문학과를 선택했지요.

교직 생활이 올해로 몇년째인 셈인가요?

정식 교수로 가르친 것은 33년인데, 실제로는 36년 됩니다. 당시 천문학 하신 교수님이 학교에 딱 한 분 계셨는데, 이 분이 공교롭게도 외국에 나가셨어요. 그래서 유급 조교 신분으로 3년간 가르쳤죠. 65년 2월에 정식으로 강단에 섰어요. 경북대 사범대에 지구교육학과라고. 몸이 허약해서 군대를 안 가다 보니까 당시 학생들과는 6∼7년 차이밖에 안났지만, 지금까지도 서로 연락하면서 살아요. 그러다가 경북대는 아무래도 교사를 양성하는 데니까, 천문학을 제대로 해보자해서 22년 전에 서울로 올라온 거지요.

36년 교직 생활 동안 경제적으로는 어려움이 없었습니까?

평균 월급으로 치면 한 4백만원 됐죠. 친구들에 비하면야 월급이 많은 편은 아니죠. 그러니까 대개 교수들이 다른 수입이 있지요. 안사람들이 능력이 있어서 일을 한다든지. 그런데 우리 집사람은 그럴 능력도 없지만, 제가 그런 걸 싫어해요. 저는 지금도 차가 없고 좌석 버스를 타고 학교를 다니는데, 주변에서는 알부자로 오해해요. 그런데 천문학과라는 데가 별 볼 일이 없는지, 산학 협동 프로젝트가 없어요. 못 벌면 못 버는 대로 살면 되는 거지요. 33년간 연금을 부었으니까 일시불로 타면 한 2억원은 된다고 하는데, 요즘 같은 나라 형편에는 그래도 상황이 괜찮은 거죠.

요즘 서울대에 대한 비판이 심심찮게 제기되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저는 어떤 자리 가면 서슴없이 서울대 출신들이 나라 망쳤다고 얘기합니다. 그렇게 된 게 80년대 서울대 총장들이 정계에 들어가기 시작하면서부터일 거에요. 그 후부터 별의별 일들이 다 있어요. 그 전에는 서울대가 모든 대학을 대변해서 교권을 지키고 했거든요. 지금이야 대학에서 어디 인성 교육이 되나요. 기술 교육 하듯이 그냥 주고받는 거지. 잔뜩 경쟁 의식만 키우고, 연구 업적이건 뭐건 양으로만 따지는 거에요. 이게 교육인가? 인간을 소외시키고, 지식을 사고 파는 거지. 서울대가 대성학원보다 나을 게 뭐가 있어요. 교수 직에 정이 떨어진 데 이런 점이 작용을 안했다고는 할 수 없겠지요.

구체적으로 한국 교육의 어떤 점이 문제라고 보시는 겁니까?

어떤 날 보면은 백명이 들어야 할 강의 시간에 여남은 명만 들어와 있을 때도 있어요. 교수도 그래요. 1억짜리 연구를 5천만원에 깎아서 하기도 하고. 그러나 학생이나 교수 탓이라기보다는 교육 여건·풍토·조건이 그래요. 지금 시행되는 학부제라는 것만 해도 그렇습니다. 시행을 앞두고 각 대학 학과장들이 온천으로 갔는데, 당시 문교부 관계자가 와서 연설을 해요. 교양 과정을 마친 후에는 학생들이 원하는 대로 자기 전공을 선택하게 하자 그러면서, 교육이 대중 교육이 돼야 한다는 거에요. 미국의 저질 경쟁 교육, 산업화한 시장 교육을 막무가내로 들여오자는 거죠. 생존할 수 있는 것은 생존하고, 안되는 것은 없애자는 얘기지요. 학부제를 시행하면 지원금도 준다니까, 투표 끝에 시행하게 됐지요. 부전공제도 문제에요. 자연계 학생들이 취업이 어려우니까 경제나 경영학과 가서 부전공을 하면서, 전공·부전공이 바뀌는 거에요. 학부제로 천문학과 학생이 5명으로 줄었는데, 이렇게 되면 국내 유일의 서울대 천문학과는 대학원생을 뽑을 수도 없어요. 학교에서 과끼리 합병 움직임이 있을 정도니까, 시장 원리가 그대로 도입된 셈이죠. IMF 이후 교육이 무너지는 게 보여요. 10∼20년이 지나면 IMF가 문제가 아니라 나라가 완전히 무너지지 않을까 걱정이에요.

요즘 학생·교수 사이라든가 학교 분위기는 과거와 비교해 어떻습니까?

경북대 제자들이 지금은 대학 교수도 되고, 주부도 되고 그랬는데. 스승의 날 선물이나 카드를 보내는 것은 이 친구들이에요. 지금은 꽃은 고사하고, 졸업생 환송회도 없어요. 내가 무엇 때문에 65세까지 대학에 있어야 하나 느낄 때가 있었어요. 생계를 위해서인가, 아니면 진짜 교육을 위해서인가. 아마 모든 교수들이 그렇게 느낄 거에요.

학생들한테 듣는 별명은 없으세요?

못 들어봤는데요. F 학점을 많이 줘서 평은 안 좋을 거에요. 경북대 시절이나 서울대에서 학점 짜기로 유명했으니까. 80년대에 한번은 학생운동을 하던 친구가 F 학점을 받은 예닐곱 명하고 학점에 대해 따지러 왔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당사자에게 자신이 쓴 답안지는 보여줄 수 있지만, 다른 사람 것은 안된다고 버텼어요. 물론 F 학점을 받으면 취직도 어려워지고, 그 비싼 등록금 더 내야 하니까 어려운 거 제가 알죠. 그러나 제가 F 학점을 주는 것은 그런 시련을 겪어 보는 것이 길게 보면 좋고, 또 자기가 한 일에 대해서는 자기가 책임을 지는 법도 배워야 한다는 뜻에서에요. 그러나 저도 강의를 세 번째 들으면 봐줍니다(웃음). 그나저나 혹시 제 별명 들은 거 있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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