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민족의 우주관은 탁월했다
  • 金芳熙 기자 ()
  • 승인 1995.09.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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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족의 ‘우주관’ 분석/우주의 원리·구조 이론 서구에 뒤지지 않아
20세기를 연구하게 될 수백 년 뒤 역사가들에게 가장 중요한 해는 아마도 1969년이 될 것이다. 인류가 자신이 사는 지구 바깥의 천체에 처음으로 발을 디딘 해이기 때문이다. 이 해 7월21일 오전 11시56분 아폴로 11호에서 내린 암스트롱·콜린스·앨드린은 달 위를 걸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때를, 현대 과학·기술이 새 지평을 연 순간으로보다는 달에 대해 가져온 신비감이 부서지기 시작한 시기로 기억할 것이다. 이전까지만 해도 우리에게 달은 떡방아를 찧는 토끼를 떠올리게 하는 공간이었다. 유럽인들은 보름달의 어둑어둑한 부분을 보면서 아름다운 여인의 옆 얼굴을 연상했고, 중국인들은 두꺼비를 떠올렸다. 하지만 그것들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연상하는 서정에는 크게 미치지 못했다.

아폴로 11호가 달에 착륙한 뒤로 6년여 지속된 미국의 달 탐험 결과로 우리의 환상은 여지없이 깨지고 말았다. 떡방아를 찧는 토끼의 모습은 ‘바다’라고 불리는 검은 현무암 덩어리에 불과하며, 달의 희뿌연 부분은 ‘고지’라고 불리는 사장암 덩어리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또 달은 지구를 도는 속도와 스스로 도는 속도가 일치해 항상 일정한 면만을 보여준다는 사실도 알려졌다(만일 달이 우리에게 희뿌연 고지가 있는 뒤쪽 면만을 보여 주었더라면, 토끼의 떡방아 얘기는 없었을 것이다).

우리 뇌리에 각인된 이 사건의 저변에는, 사실 우리나라 사람들의 우주관이 우화적 수준에 불과했다는 자조적인 평가가 숨어 있다. 즉, 우주의 구조와 원리를 비교적 빨리 깨친 서구에 우리가 훨씬 처졌다는 열등감이다. 지난 8월5일 무궁화 위성을 발사함으로써 우주 시대에 다시 성큼 다가서기는 했지만, 우리는 아직도 이런 열등감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과연 우리의 우주관은 그렇게 보잘것없었는가.

최근 재조명되고 있는 선조들의 우주론을 살펴보면, 우리가 갖고 있는 열등 의식의 근거가 매우 희박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누구나 달을 보면서 토끼의 떡방아만을 연상했던 것은 결코 아니다.

18세기의 뛰어난 실학자 박지원이 달을 보면서 어떤 생각을 했는지를 보자. ‘만일 달에서 이 땅의 빛을 바라본다면 역시 초생달·보름달·그믐달로 보일 것이고, 햇빛을 받는 부분은 물과 땅이 서로 어울리고 비치어 빛을 받아 반사하여 밝은 그림자를 비치니, 그것은 지구에서 달을 보는 것과 마찬가지일 것이다.’
빅 뱅 이론 연상케 하는 창세 신화

지구가 모든 천체의 중심이며, 달 속에 가물가물 보이는 것이 지구의 산이나 물의 그림자라는 당시의 전통적인 견해와 비교해 보면 그의 생각이 얼마나 앞선 것인지를 잘 알 수 있다. 박지원 외에도 많은 실학자의 글에는 근대적인 우주관이 잘 드러나 있다.

물론 조선 시대 후기 실학자들을 선구적인 우주론자라고 꼽는다면 반발하는 사람이 적지 않을지도 모른다. 실학자들의 우주관은 따지고 보면 서양 선교사들의 근대적인 천문학적 지식을 중국을 거쳐 받아들인 결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시기 이전에도 우리만의 독특한 견해들이 있었으며, 그것은 중국의 견해와 합쳐져 독특한 우주관을 형성했다. 박창범 교수(서울대·천문학)는 “우리의 전통적인 우주론 가운데 일부는 현대 우주론과 유사한 것이 많다”고 지적한다.

우주의 기원을 설명하는 창세 신화가 대표적이다. 최근 발굴돼 학자들에게 가장 대표적인 창세 신화로 인용되고 있는 것은 함흥 지방의 ‘김쌍돌이본’ 신화. 이 신화에 따르면, 하늘과 땅이 생기면서 미륵이 태어나 구리 기둥을 세워 천지를 갈라놓았다(왼쪽 위 그림 참조). 절대자가 죽어 물질의 씨앗이 된다는 중국의 창세 신화들과 달리, 우리의 것은 미륵이 우주와 함께 태어나 혼돈을 정리하고 우주의 변화를 이끌어 간다.

미륵은 하늘에서 벌레 두 마리를 얻어 사내와 계집을 만들고, 그들이 부부가 되자 그 사이에서 세상 사람들이 태어났다. 그 뒤에 미륵은 석가에게 세상을 넘기고 ‘미래로 물러나’ 인간에게는 말세가 다가왔다. 세상이 만들어지면서 갈라졌던 하늘과 땅이 다시 서로 붙어버리면 세상이 멸망한다는 민담도 많은데, 이는 창세 신화의 줄거리를 뒤집어 놓은 것이다.

학자들은 이 창세 신화나 전래 민담 들이 현대 우주론과 흡사하다고 본다. 특히 요즘 우주론자들 사이에서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대폭발(Big Bang) 이론을 연상하게 한다고 한다. 이 이론에 따르면, 우주가 어느 한 순간 홀연히 탄생하고, 바로 그 순간부터 팽창하게 된다. 또 이 신화에서 무로부터 유가 창조된 것도 우주 탄생 이전을 혼돈 상태로 보는 시각과 일맥상통한다.

우주의 기원에 대한 신화 이후 우리의 우주론은 주로 중국에서 유입된 것과 섞이게 된다. 예를 들어 중국에서는 하늘을 둥근 평면, 땅은 네모난 평면이라고 보았는데, 우리도 비슷했다. 흔히 개천설로 불리는 이 이론의 영향은, 고구려 고분 벽화나 신라 석굴암의 돔형 천장, 경주 첨성대 등에서 그 자취를 찾아볼 수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우주관에 대해 최남인씨는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는 속담에서 우리의 그 원형을 찾는다. ‘하늘은 커다란 영역이라는 뜻이며, 그 지붕 같은 것이 무너진다는 점에서 우리의 우주관은 개천설과 가깝다.’(<과학·기술로 보는 한국사 열세 마당>).

학자들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우주관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인간 중심적인 사고방식을 이해해야 한다. 자연과 접촉해 생활하면서 필요성을 느끼면 사색해 보고 그렇지 않으면 나 몰라라 한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저 멀리 은하가 있다고 하자. 그게 우리한테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정도였을 것이다.

그런데 우주론의 토대를 제공해 주는 천문 관측에서 만큼은 놀랄 만한 능력을 보여준다. 일상 생활과 밀접한 관련을 갖고 있었던 역법에 대한 필요성 때문이다. 예를 들어 고구려 벽화에 등장하는 별자리 그림들은 주요 별들의 위치를 놀라우리만치 정확히 묘사해 놓았다. 특히 만주 길림성 집안현 근처에 있는 장천 1호 무덤 천장에 그려져 있는 해·달·북두칠성 그림은 5세기 중엽의 그림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다(위 사진 참조).
17세기에 태양계 구조 거의 파악

또 삼국 시대를 전후해 사서에 나타난 일식 기록을 검토해 본 결과 대단히 정확하다는 것이 밝혀졌다. 즉, 당시 실제로 일식이 있었을까를 역으로 추산해본 결과, 실제로 일어난 일식의 비중(실현율)이 중국이나 일본보다 앞섰다는 얘기다. 최근 이 방면 연구를 계속해온 박창범 교수는 “이 사실이 우리가 천문 관측에서 제일 앞섰다는 완벽한 근거가 될 수는 없겠지만, 우리의 천문 관측 능력은 뛰어났던 것 같다”고 주장한다.

개천설은 천문 관측 결과에 더 잘 맞는 혼천설로 자연스럽게 바뀌게 된다. 혼천설은 우주의 모습을 달걀에 비유한다. 알 껍질이 하늘, 노른자가 땅이라는 것이다. 이 생각에 따라 그려진 천문도 <천상열차분야지도>(왼쪽 사진 참조)는 최근 들어 새롭게 각광 받고 있다. 조선 왕조가 정도(定都) 기념 사업으로 제작한 이 천문도는 올해로 만든 지 꼭 6백년이 되는데, 그 정확성과 예술성 때문에 국내에서보다는 외국에서 더 유명하다.

은하수를 비롯해 별자리를 섬세하게 새겨 놓은 이 천문도는, 또한 별자리 이름이 서양 국가들과는 달리 그 모양새를 본따 붙인 것이 아니라는 점이 특이하다. 우물가·화장실같이 지상의 마을을 하늘로 옮겨 놓은 듯한 이름들이 대부분이다. 이는 우주가 인간을 떠나서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우리의 전통적인 우주관을 반영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조선 후기 실학 시대에 이르러서는 서양의 우주관이 중국을 통해 간접으로 수용된다. 17세기 초에 실학의 선구자 이수광이 중국에서 출간된 서양의 자연과학 서적을 연구해 <지봉유설>이라는 책을 쓰면서 지구설을 소개했고, 17세기 중반에 소현세자가 중국 북경에서 아담 샬이라는 선교사를 만나 천문서와 천구의를 선물 받았다는 얘기는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 시기에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이 널리 받아들여졌다 하더라도 한 가지 의문이 남는다. 지구가 둥글다면 사람이나 물건이 구면 위에서 떨어지지 않고 어떻게 붙어 있을 수 있는가, 즉 인력(引力)에 대해서 어떻게 이해하게 됐는가하는 것이다.

이 문제와 관련해 최근 새로이 재조명되는 인물이 김석문과 홍대용이다. 17세기 말에 활동한 김석문은 75년에야 발굴된 그의 저서 <역학이십사도해>라는 책에서 우주의 구조를 밝히고 있는데, 현재의 태양계 구조와 거의 똑같다. 다만 지구가 태양의 주위를 도는 것이 아니라, 태양과 관계없이 따로 공전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는 이 책에서, 우리가 전통적 우주관에서 벗어나려면 지구 중심의 생각을 버리고,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홍대용 “우주 공간이 지구 둘러싸고 있다”

다만 그는 코페르니쿠스설과 유사한 이 이론을 주창하면서도 ‘고대와 현대의 학자들은 모두 이것이 잘못되었다는 의견이다’라고 적어, 코페르니쿠스설에 가해졌던 박해까지 도입한 듯한 인상을 주었다. 김석문이 이 책을 쓴 것은 뉴턴이 <프린시피아>를 펴낸 지 꼭 10년 뒤의 일이었다.

김석문의 학설에 간접으로 영향을 받았다고 알려진 홍대용에 이르면, 지구가 둥글다는 것에 대해 훨씬 세련된 논리를 펼치게 된다. 홍대용은 만일 지구가 네모꼴의 평평한 땅덩어리라면 높은 곳에 오르면 시각의 한계 안에서 온세상이 다 보일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 또 일식과 월식은 지구의 그림자이므로 당연히 지구는 둥글다고 주장했다. 허자(虛子)라는 한 유학자가 산중에서 실옹(實翁)이라는 비범한 인물을 만나 우주의 원리를 깨친다는 줄거리를 가진 그의 저서 <의산문답>에서였다(두 주인공의 이름을 음미해보라). 그는 또 두 사람의 대화를 통해 인력의 문제를 쉽게 설명한다.

실옹: 당신의 발은 땅에 떨어지는데 당신의 머리가 하늘로 떨어지지 않는 것은 어찌된 영문이오?

허자: 그것은 위 아래의 형세가 분명히 다르기 때문입니다.

실옹: 과연. 그렇다면 당신의 가슴이 남으로 떨어지지 않고 당신의 등이 북쪽으로 떨어지지 않고, 오른쪽 허리가 서쪽으로 떨어지지 않는 것은 어찌된 영문이오? … 자석이 철을 흡수하고 호박이 나무진을 끌어당기는데, 자기와 같은 부류가 서로 감응하는 것은 물체의 고유한 이치요.…지금 사람들이 상하를 보고 제멋대로 우주 공간에도 상하의 형세가 있는 것처럼 생각하고, 우주 공간이 지구를 둘러싸고 있다는 것을 헤아리려 하지 않는다면 역시 어리석은 일이 아니겠소.

달에 떡방아를 찧는 토끼가 있다고 보듯이 다른 천체에도 인간 세계가 그대로 투영된 사회가 있다는 식의 전통적 우주관의 잔재가 남아 있기는 했지만, 19세기에 이르면 우리의 우주관과 서구의 그것과 구별할 수 없는 상태가 된다. 여전히 우리의 우주관이 비과학적이었고 서구에 처져 있었다고 믿어야 할까, 우리의 것에 무관심했던 자신의 태도를 먼저 자책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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