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중권 민주당 최고위원
  • 이숙이 기자 (sookyi@sisapress.com)
  • 승인 2000.11.23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939년 경북 울진 출생. 후포고·고려대 법대 졸업. 단국대 법학박사. 제8회 사시 합격. 서울 고법판사. 제11·12·13대 국회의원. 대통령 정무수석·비서실장.
DJ는 요즘 노벨상 수상 발표 이후 더욱 악화한 영남 민심을 끌어안기 위해 각별한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영남의 지원 없이는 정권 재창출이 불가능하다는 위기 의식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새삼 주가가 치솟고 있는 인물이 바로 김중권 최고위원이다. DJ는 영남 순행길 내내 그를 챙긴 데 이어 11월23일 싱가포르 방문에도 동행케 하는 등 한껏 힘을 실어주고 있다. ‘동서 화합의 전도사’라고 자임하는 그 역시 최근 대구로 집을 옮겨 본격적인 영남 밭갈이에 돌입했다. 11월8일 서대문 개인 사무실에서 만난 그는 차기 대선에서 영남과 호남이 함께 지지하는 대통령을 만들어 내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그의 말에는 ‘영남 후보’ 필요성에 대한 강한 암시가 담겨 있었다.

지난 3년 동안 현정부가 기울여온 지역 화합 노력이 완전 실패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동의할 수 없다. 수치로 보면 괄목할 진전이 있었다. 4·13 총선에서 내가 16표 차로 떨어졌고, 대구·경북에 출마한 다른 민주당 후보들도 근소한 차이로 낙선했다. 당선한 사람이 없어 그렇지 예전 같으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민주당에 대한 지지도가 높아진 증거다.
김대통령이 노벨상을 받고 나서 영남 민심이 더 나빠졌다는데….

국민들이 ‘북한에 다 퍼주고 상을 탔다’는 식의 야당 주장에 현혹되는 것이 문제다. 노벨상이 어떤 상인데, 북한에 곡물 좀 보냈다고 이 상을 주겠는가? 그리고 북한에 보낸 곡물도 10만 t만 무상이고 나머지는 다 차관 형식이다. 동포애로 보아서라도 10만 t 정도는 보낼 수 있는 것 아닌가? YS 시절에는 그 보다 훨씬 많이 퍼주었다. 그렇다고 YS가 노벨상 탔나?

DJ는 대구 경제를 살리겠다며 밀라노 프로젝트 지원을 약속했다. 대구 경제가 위축된 주요 원인이 섬유산업에서 제때 탈피하지 못한 것 아닌가?

정부 차원에서 추진하는 IT 산업은 IT 산업대로 추진하고, 지역에서는 그 지역에 맞는 특화 산업을 육성해야 지역민의 실질 소득에 보탬이 된다. 과거 대구의 섬유산업이 직물에 치중했다면, 이번 밀라노 프로젝트는 패션이나 디자인 쪽에 비중을 둔다. 이 분야는 외화 소득 같은 잠재력이 크다.

영남 민심이 나빠진 또 다른 이유로 인사 편중이 거론된다.

관료 사회에서 인사는 상당히 예민한 문제다. 과거 영남 정권에서 영남 사람들이 눈에 띄게 성장했다는 것은 누구나 인정하는 사실이다. 바꿔 말하면 호남인이 차별을 당했다는 의미다. 국민의 정부에서는 이런 차별을 바로잡고자 했고, 격차를 많이 줄였다. 그런데 이런 인사 체감이 영남 사람들에게는 실제보다 훨씬 더 크게 느껴지는 모양이다. 그리고 현정부가 솔직히 인정할 부분은, 과거의 인사 편중을 시정하다 보니 어느덧 하급 공무원 사이에는 호남 편중 움직임이 보인다는 점이다. 국민의 정부가 겸허하게 받아들여 바로잡아야 할 대목이다.

DJ가 인사 문제를 얼마나 심각하게 여기고 있나?

대통령은 지역 갈등의 핵심 요인으로 예산과 인사 두 가지를 꼽는다. 그런데 경상도 사람치고 예산 문제로 시비를 거는 사람은 없다. 어떤 면에서는 영남 쪽이 정부 예산을 훨씬 더 많이 지원 받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인사에 대해서는 불만이 대단하다. 당장 내가 올라갈 자리에 남이 올라가는 일이 생기면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잖은가. 경상도에서는 이것이 가장 큰 문제다. 대통령도 이 문제를 인식하고 계신다.
야당이 대통령의 당적 이탈을 주장하는데.

대통령이 당을 통해 당선됐는데, 책임 정치를 위해서도 당적을 버리면 안 된다. 거국 내각도 지금은 필요 없다.

정·부통령제를 주장하는 배경은 무엇인가?

동서 화합을 앞당길 수 있는 최소한의 제도적 장치이기 때문이다. DJ가 나서고, 내가 나서고, 종교단체가 나서도 동서 화합에는 시간이 오래 걸린다. 하지만 정·부통령제를 도입하면 영·호남이 권력을 공유하게 돼 쉽게 화합할 수 있다. 그런데 시기가 문제다. 정·부통령제를 주장했다가 당장 개헌 논쟁과 국론 분열이 생기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지금은 경제를 살리고 개혁을 끝내야 할 때다. 그래서 정·부통령제는 다음 대통령 선거 이후에나 추진할 장기 과제로 삼고 있다. 내각제 역시 국회의원들의 자질을 보아 시기 상조인 것 같다. 결국 다음 대선은 현 제도로 치러질 수밖에 없다.
민주당의 차기 대선 주자는 어떤 덕목을 갖춰야 한다고 보는가?

코-리더십(Co-leadership)이 가장 중요하다. 지금까지는 한 사람이 자기 생각대로 다른 사람을 끌고 가는 일방적인 리더십이 먹혔지만, 이제는 다원화한 사회에서 상대를 내 쪽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대화하고 설득하는 동반자적 리더십이 필요하다. 이것이 바로 코-리더십이다.

출신 지역은 상관없나?

동서 화합을 화두로 삼고 있는 나로서는 자나깨나 이 명제를 떨쳐버릴 수가 없다. 차기 대선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동서 화합이다. 지금까지 양쪽의 협력으로 탄생한 지도자가 한 사람도 없었다. 그러다 보니 서로 간의 갈등이 깊었던 것이다. 다음에는 반드시 영·호남의 공동 지지를 받는 사람이 대통령이 돼야 지역 갈등이 해결된다. 그런데 현재 영남의 분위기는 영남 사람을 후보로 내자는 것이다. 며칠 전에도 영남 인사를 여럿 만나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는데, 어느 당이든 영남 후보를 내지 않으면 영남표를 얻기 어려우리라는 의견이 많았다. 언젠가 내가 경상도 민심이 꼭 이회창 총재를 지지하는 것만은 아니라고 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DJ가 내는 후보는 비록 영남 출신이라도 영남 사람들이 찍어주지 않으리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정몽준 의원 같은 무소속 영남 출신이 민주당 입당을 주저하는 것도 그런 이유인 것 같은데….

그건 착각이다. 김대통령은 임기가 끝나면 정치 현장에서 퇴장하게 된다. 다음에 영남 출신이 대통령이 되면 그 정권은 곧 영남 정권이다. 이 사실을 영남 사람들이 잘 알고 있다. 그리고 호남의 도움 없이는 영남 후보가 정권을 재창출할 수 없다는 것도 잘 안다. 따라서 이제는 영남 사람과 호남 사람이 어떻게 잘 협력해낼 것인지만 남아 있다. 정몽준 의원이 만약 대권을 꿈꾸고 있다면 빨리 민주당에 들어와 자기 지지세를 만들어야 한다. 당내 경선이라는 고지를 넘어야 할 것 아닌가.

YS·허주 등 영남 인사들이 신당을 창당할 가능성도 있는데….

킹 메이커를 하겠다는 생각인데, 킹 메이커도 자기가 힘이 있을 때 가능한 것이다. 현재 그분들 지지 세력이 얼마나 되나? 영남을 근거로 한 신당 출현은 가능성이 거의 없다. 그리고 일부에서는 신당이 영남 표를 분할하면 결국 민주당에 유리한 것 아니냐는 신 4자 필승론이 나오는데, 그렇게 되면 지역 갈등은 치유할 방법이 없다. 따라서 결론은 역시 민주당 내부에서 영·호남의 고른 지지를 얻을 수 있는 후보를 내는 것이다.

그 후보가 김최고위원 본인을 가리키는 것 아닌가?

차기 대선과 관련해 내 의향을 묻는 사람도 많고, 나가라고 등 떠미는 사람도 많다. 하지만 나는 아직 대권 후보로 나서겠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그보다 더 시급한 고민은 동서 화합의 다리 역할을 어떻게 하면 잘 수행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