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권에 8개 신문 '쟁론'
  • 나권일·광주 주재기자 ()
  • 승인 1995.12.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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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남일보> 등 창간 잇달아…“모기업 보호막” 비판도
광주·전남 지역 일간 신문 시장이 춘추전국시대를 맞고 있다. <光南日報> (발행인 李花城)가 오는 12월12일 창간을 선언해, 신문 시장에 불꽃 튀는 경쟁을 예고하고 있기 때문이다. <광남일보>는 전면 가로쓰기 편집과 전과정 전산 제작 등 대담한 제작 방침을 소식지를 통해 알리며 창간을 서두르고 있다.

<광남일보>가 창간되면 광주·전남 지역은 종합 일간지 8개가 경쟁하는 지방지 전성시대를 맞게 된다. 현재 <光州日報> <全南日報> <無等日報> <光州每日> <全南每日> 등 일간 신문 5개가 광주에 본사를 두고 있으며, 지난 3월 <湖南日報>가 목포에서 발행된 데 이어 10월에는 <南道日報>가 전남 동부권 지역 언론을 표방하며 순천에서 창간됐다. 4백만 인구인 부산광역시에서 발행되는 일간지가 3개인 데 비하면 광주·전남은 때아닌 언론 풍요 시대를 구가하는 셈이다.

이에 따라 80년 언론통폐합 조처의 1도1사 방침에 힘입어 아직까지 광고 수입과 발행 부수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는 <광주일보>와 건설·제조·유통 업체를 모기업으로 하는 <무등일보> <전남일보> <전남매일> <광주매일> <광남일보> 등 6개 언론사가 광주를 중심으로 전남·광주 전역에서 경쟁을 벌이게 되었다. 5파전 양상을 띠게 될 전망이다.

사실 이화성씨(56·(주)청전가든백화점 대표)가 신문을 창간하리라는 것은 이 지역 언론계에서 어느 정도 예견돼왔던 일이다. 이씨는 평소 언론사 소유에 관심을 보여 왔으나, 지난해 민영 광주방송(KBC) 업체 선정과 올해 초 <무등일보> 인수 협상에서 번번이 고배를 마셨다.

지역 주민 곱지 않은 눈길

이화성씨는 60년 광주 충장로 3가 현 가든백화점 자리에서 ‘미모사’라는 패션 의류점으로 사업을 시작해 탁월한 경영 수완으로 탄탄한 재력을 일군 지역 경제계의 입지전적인 인물로 알려져 있다. 이씨는 현재 이 지역 백화점 업계에서 매출액 1위(94년 1천3백20억원)인 청전가든백화점을 비롯해 청전건설·청전정보 등 5개 계열사와 호남대학교를 소유하고 있다.

청전그룹은 그동안 지역 재벌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호남대 재단과 관련한 문제로 자주 언론의 비판 대상이 되었고, 87년에는 호남대 학생들이 주도한 가든백화점 불매운동에 시달렸다. 93년에는 이씨가 학교 인근 땅을 무단 점유한 문제로 경찰에 구속되는 사태를 겪기도 했고, 올해 7월에는 백화점 불법 용도변경 문제로 벌금형을 선고 받는 등 잦은 풍파에 시달려 왔다. 따라서 이러한 복합적인 요인이 그의 신문사 설립 욕구를 더 자극했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때문에 <광남일보> 창간을 바라보는 이 지역 시민들의 눈길은 그다지 곱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언론사를 소유하여 지역내 영향력을 확대하려고 한다는 시각이 지배적이기 때문이다.
광주·전남민주언론운동협의회 박연화 간사는 “지역 재벌의 신문 창간은 신문을 팔아 돈을 벌겠다는 게 아니라 언론을 통해 영향력을 확대하고 이미지 조작으로 모기업의 경영에 도움이 되도록 하겠다는 속셈에서 비롯된 것이다. 지역 기업으로서는 엉덩이 살을 떼서 얼굴에 붙이는 격이다”라고 비판했다. 일부에서는 새 신문이 창간되면 관청에서 봉투를 하나 더 준비한다는 것 외에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혹평도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시각을 의식한 듯 <광남일보>는 기존 신문 편집 형태와 차별성을 둔 지면 쇄신과 신문의 고품질화를 내걸고 있다. <광남일보> 윤재걸 논설주간은 <광남일보>가 또 하나의 지방지가 아니라 전혀 새로운 신문으로 선보일 것이라며 “통신사에서 받은 기사로 지면을 채우는 구태에서 벗어나 독자가 원하는 소프트한 정보를 제공하는 ‘눈높이 신문’으로 태어나겠다”고 밝혔다. 분명한 차별성을 통해 기존 신문의 틈새를 파고들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방 토착 기업의 신문 소유가 모기업의 경제적 이익을 보호하는 기능에 그치거나 신문을 통한 모기업의 대리 전쟁에 나설 경우 언론 창달이 아닌 ‘언론 공해’를 가져올 수 있다는 지적이 만만치 않다.

“2~3년내 한두 개 생존” 언론노조 전망

현재 광주에서 발행되고 있는 일간 신문은 대개 발행 부수 10만부 안팎인 데다 취약한 경제 여건으로 광고 물량 확보가 어려워 <광주일보>를 제외한 대부분의 신문이 매년 20억~40억원씩 적자를 내고 있는 실정이다. 신문기업 또한 대부분 개인과 가족이 주식을 독점하고 있어 소유와 경영의 분리는 아직도 까마득한 형편이다(도표 참조).

이러한 독점 소유 구조는 신문사 사장단 카르텔을 통해 독자들이 알아야 할 정보를 차단하거나 왜곡하는 사례를 빚기도 한다. 광주지검이 지난 7월 삼풍백화점 사건 뒤 실시한 대형 건축물에 대한 일제 단속에서, 김종태 <광주일보> 발행인이 소유주인 무등빌딩과 <광주매일> 계열사인 송원백화점은 불법 용도변경 등이 적발돼 벌금형을 선고 받았지만 지역 언론은 이에 대해 침묵을 지켰다.

또 지난 10월9일에는 전남일보사 사옥이 검찰의 오수·분뇨 처리 단속에 적발돼 이정일 사장이 불구속 입건됐으나 <광주일보> 등 지방 언론은 적발된 건물 중 가장 많은 9만1천t의 오수·분뇨를 광주천에 방류한 전남일보사는 제외한 채 그보다 적게 배출하고 적발된 업체들만 보도하는 ‘성의’를 보였다. <전남일보>는 며칠 뒤 ‘영산강을 살리자’는 고정 특집 기사에서 광주시 생활하수 유입이 광주천 오염의 주범이라고 보도하면서도 자사의 잘못은 인정하지 않는 양면성을 드러냈다.

한편 언론노조 관계자들은 <광남일보> 창간을 지역 언론 시장을 재편할 신호탄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단기적으로는 기자들의 임금 인상 효과와 함께 고질적인 인사적체 문제도 어느 정도 숨통이 트이겠지만, 앞으로 2~3년 내에 현대화한 경영 기법과 인력 관리, 투자가 병행되지 않으면 한두 신문사 외에는 살아 남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와 달리 몇년 내에 지방지 시장의 재편 정도에 그치지 않고 지방지 전체가 공멸할 수도 있는 위기가 다가온다는 분석도 있다. 류한호 교수(광주대·신문방송학과)는 “정보와 자본력으로 무장한 서울의 대기업 소유 언론사들이 지방으로 진출해 지역 본사 체제를 갖추게 될 경우 군소 신문과 지방 신문의 몰락은 불을 보듯 뻔하다. 뉴미디어와 영상 문화 시대를 대비한 과감한 투자로 활로를 개척하는 신문만이 생존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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