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의술' 장기 이식의 모든 것
  • 吳允鉉 기자 ()
  • 승인 2000.03.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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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 연장술로 각광 ··· 죽음 앞둔 환자 수만 명 소생
주부 안 아무개씨(48·경기도 성남)는 2년 전 겨울만 해도 불치병 때문에 거의 죽은 목숨이었다. 하지만 요즘 그녀는 친구들 앞에서 웃는 얼굴로 ‘포니 자동차에 벤츠 엔진을 달았다’며 건강을 자랑하곤 한다.

안씨가 ‘벤츠 엔진’을 단 것은 1998년 12월28일. 그전에 그녀는 7년째 간경화를 앓고 있었다. 1998년 가을에 굳어진 간이 피를 순환시키지 못하자, 피가 식도를 타고 울컥울컥 쏟아져 나왔다. 의사는 식도를 지지는 세 번째 수술을 하며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말했다. “의사의 그 말이 이제 죽음을 준비하라는 저승사자의 말처럼 들렸다.” 안씨의 말이다.

안씨는 집에서 차근차근 삶을 정리했다. 그러던 어느날, 병원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장기 이식 코디네이터였다. 코디네이터는 뇌사자가 발생했다며 간 이식 수술을 받을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정신 없이 병원으로 달려갔더니, 코디네이터가 이식 받을 장기 이야기를 해주었다. 주인은 20대 남자. 광주에서 태권도 사범을 하다가 교통 사고로 뇌사했다고 했다. 간은 아주 튼튼한 상태.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살 수 있겠구나’ 하는 믿음이 들었다. 자신의 낡은 몸 속에 청년의 튼튼한 간이 들어온다고 생각하니 저절로 힘이 났다.

안씨는 당시의 환희를 지금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눈을 떠보니 중환자실이었다. 의식이 가물가물했지만, 가만히 있으니 생기 있게 뛰는 간의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그때 비로소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젊은이에 대한 고마움과 함께 새 생명을 얻은 기쁨이 와락 밀려들었다.”

14개월째 정상인처럼 생활하고 있는 안씨가 만약 1988년 이전에 그 같은 상황에 처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때는 한국에서 간 이식 수술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도 1960년대부터 알게 모르게 장기 이식이 시도되었다. 하지만 역시 실패의 반복이었다. 그러다가 1969년 마침내 신장 이식에 성공함으로써 장기 이식에 신기원을 이룩했다. 그 뒤를 이어 골수·각막 이식에 성공했으며, 1988년, 1992년, 1996년에 각각 간, 췌장·심장, 폐 이식에 성공했다.

그 사이 세계의 이식 기술도 엄청나게 발전했다. 그 덕에 지금은 1년에 수만 명이 혜택을 입고 있다. 의학자들은 여기에서 용기를 얻어 현재 성인 장기를 유아의 몸에 부분 이식하는 실험과, 동물의 장기를 인간에게 이식하는 실험까지 하고 있다.

그렇다면 현재 한국의 장기 이식은 어느 수준에 와 있을까. 서울중앙병원은 1994년부터 가족의 간 일부를 절제해 환자에게 이식해 주는, 생체 간 이식을 실시하고 있다. 이식된 간은 독성 물질을 정화하는 등의 부분적인 일을 하며, 고장난 간의 회복을 돕는다. 1년 이상 생존율은 약 80%.

뇌사자로부터 기증 받은 간을 이식하는 수술도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지금까지 실시한 뇌사자 간 이식은 1998년 현재 1백83건. 1년 이상 생존율은 약 62%에 달한다.

1980년대 들어 세계의 간 이식 기술이 현저히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사이클로스포린이라는 면역 억제제 덕이다. 우리 몸 안의 백혈구는 박테리아나 바이러스가 침입하면 즉시 그것들을 찾아내 파괴한다. 그런데 이 백혈구가 이식된 장기까지 적으로 간주하고 파괴하는 것이다. 이 현상은 간뿐만 아니라 신장·심장·췌장 이식에서도 마찬가지로 나타난다. 사이클로스포린은 우리 몸 안의 면역력을 떨어뜨려 장기가 뿌리 내리도록 돕는다.

췌장의 가장 중요한 기능은 인슐린을 분비하는 일이다. 그런데 췌장이 인슐린을 분비하지 못하면 당뇨병에 걸리게 된다. 때문에 췌장 이식은 당뇨병에 의한 합병증을 예방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하지만 그다지 많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현재 1년 이상 생존율이 70%쯤 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췌장이나 간에 비해 콩팥은 몸 안에 2개가 있어 쉽게 이식할 수 있다. 신장 이식을 처음 시도한 의사는 울만이었다. 비록 개를 이용한 실험이었지만, 그 실험은 1902년 큰 관심을 끌었다. 현재 한국에서 이루어진 신장 이식은 1998년에만 9백93건. 이 수치는 간·심장·췌장 등에 비해 월등히 많은 건수이다. 1년·5년·10년 생존율이 각각 95%·80%·60%로 국제 수준을 능가하고 있다.

이같은 성과가 있기까지에는 숱한 실패와 어려움이 있었다. 이식 의사들은 특히 인체의 거부 반응으로 인한 실패를 두려워했다. 그리고 장기 보관의 어려움을 가장 큰 장애물로 지적했다.

심장과 폐는 보통 적출한 뒤에 4시간이 지나면 손상된다. 간과 췌장은 12시간, 신장은 24시간만 보존이 가능하다. UW액 같은 보관액이 나와 있지만, 안타깝게도 장기가 훼손되어 수술을 못 끝내고 죽는 사람이 적지 않다. 의학자들이 끊임없이 새로운 보관액을 개발해 내고 있지만, 아직도 버려지는 장기가 많다.
돼지 장기 등 이종 이식, 아직 난관 많아

기증 장기가 부족한 것도 또 다른 어려움이다. 서울중앙병원 장기이식센터 한덕종 소장은 “한국의 신장 이식 수술과 간·심장·췌장 이식은 현재 세계적 수준이다. 심장은 성공률이 무려 95%에 달한다. 하지만 기증 장기가 없어 고민이다”라고 말했다. 심장은 뇌사자에게서 적출하는데, 지난해 우리나라 뇌사자 장기 기증 건수는 2백87건뿐. 한소장은 장기 부족 현상이 이식 기술 발전을 가로막을 수도 있다고 걱정했다.

실제로 매년 난치병 환자 가운데 30% 정도가 기증 장기가 모자라 이식도 받아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고 있다. 이런 이유로 난치병 환자들은 자신들을 언제 깨질지 모르는 도자기에 비유하기도 한다. 이식을 담당하는 의사들은 2월9일 ‘장기 등 이식에 관한 법률’이 시행되자 많은 뇌사자가 장기를 기증해 주기를 간절히 바랐다.

이종 이식은 그 같은 기증 장기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서 시도되는 실험이다. 이종 이식이란 종족이 다른 개체 간의 이식을 말한다. 침팬지와 인간 사이의 장기 이식 같은 경우다.

이종 이식은 오래 전부터 있어 왔지만, 논의가 본격 시작된 것은 1984년 미국 로마린다 대학 레너드 베일리 박사의 실험이 있은 뒤부터이다. 그가 생후 12일 된 베이비 페라는 아이에게 원숭이 심장을 이식하자, 많은 의학자들이 윤리적인 이유를 들어 반대했다. 심지어 원숭이 심장 대신 괘종 시계를 다는 것이 더 낫겠다는 빈정거림도 나왔다. 그런데도 베일리 박사는 포기하지 않았고, 결국 아이는 20일 동안 생명을 유지했다.

요즘 의학자들이 주목하고 있는 이종 장기는 돼지의 간과 심장이다. 무엇보다 돼지의 장기는 사람의 그것과 비슷하다. 또 어미 한 마리가 한 배에 10∼20마리씩 새끼를 낳기 때문에, 일단 사람 몸에 맞게 개발만 하면 엄청난 효과를 볼 수 있다.
하지만 여기에도 난관이 있다. 우리 몸의 면역 시스템이다. 사람 몸에 이식된 돼지 조직은 2, 3시간 안에 급속히 파괴된다. 사람 유전자를 돼지에 주입해 거부 반응을 일으키지 않는 장기를 만들어냈지만, 이것 역시 완전한 성공을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돌연변이 때문이다. 20세기의 흑사병이라고 불리는 에이즈는 바로 이종 이식 때문에 발생했다. 침팬지의 장기를 사람 몸에 이식했다가, 침팬지의 에이즈 바이러스가 사람 몸에서 돌연변이를 일으킨 것이다.

만약 돼지 바이러스가 사람 몸에서 돌연변이를 일으킨다면 어떤 끔찍한 일이 일어날까. 거기에다 인간과 다른 돼지의 장기가 얼마나 인간 수명을 늘려줄지도 의문이다.

완벽한 인공 장기 발명. 이종 장기를 연구하는 의학자들이 여기에 눈 돌리는 이유는 분명하다. 완벽한 인공 장기를 만든다면 이종 이식을 둘러싼 복잡한 문제나 장기 부족 같은 문제를 하루아침에 해결할 수 있다.

인공 장기가 임상에 응용된 것은 1940∼1950년대였다. 그러나 이것 역시 실패의 연속이었다. 투석기라 불리는 인공 신장이 개발되면서, 비로소 인공 장기 연구는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그 뒤 1990년대 들어 인공 관절·인공 심장 판막·인공 심폐기·인공 혈관의 임상 실험이 잇달아 성공을 거두었다.

한국, 보조 인공 심장 완성 단계

서울대 의대 민병구 교수 팀은 현재 양을 이용해 보조용 인공 심장을 개발 중이다. 민교수는 보조용 인공 심장이 개발되면, 고장난 심장을 되살릴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즉 보조 심장이 심폐 기능을 대신하는 동안 고장난 심장을 수술하거나, 회복되도록 조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험에 이용된 양 가운데 2주일 이상 생존한 양이 80 마리나 된다. 이는 80% 성공률을 의미한다. 민교수는 이 보조 인공 심장을 빠르면 내년쯤 선보이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간·폐·췌장 등은 앞길이 요원하다. 임시 방편으로 사용할 인공 장기밖에 개발하지 못했다. 특히 인공 간은 개발이 가장 어렵다. 간의 역할이 워낙 다양하므로 그 같은 기능을 갖춘 장기를 개발하기가 쉽지 않다.

조직 공학을 이용한 ‘기능성 장기’ 개발은 인공 장기 개발의 그같은 약점을 보완해 주고 있다. 세포생물학에 따르면, 인체의 각 장기에는 기저 세포가 있다. 이들은 스스로 증식하면서 각 장기의 기능을 수행하는 세포를 끊임없이 만들어낸다. 조직공학자들은 이 점에 착안해 조직을 관장하는 기저 세포를 분리해 키우고 있다. 언젠가 기저 세포가 훌륭한 장기를 만들어내리라 믿으면서. 하지만 언제 실용화할 수 있을지 미지수다.

의학자들은 앞으로 십수 년 내에 인공 장기와 조직 공학을 이용한 생체 장기가 등장해, 인간이 110~150 세까지 살게 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난치병 환자들에게 그 같은 장기가 개발되었다는 뉴스는 분명 구세주의 복음처럼 들릴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그 날’을 기다리기에는 시간이 너무 없다. 결국 현재 그들이 기댈 수 있는 것은 뇌사자와 마음 좋은 기증자의 장기로 이루어지는 이식뿐이다. 문제는 그 숫자가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생체 간 이식, 1년 생존율 80% 넘어서

죽음이란 어두운 것이다. 이것은 인간에게 어쩔 수가 없다. 그러나 20세기 들어 그 어두움을 빛으로 바꿀 수 있는 길이 열렸다. 바로 장기 이식이다. 장기 이식은 플레밍의 페니실린 발명, 왓슨·클릭 박사의 DNA 구조 발견 등과 함께 20세기 최고의 의학적 성과로 꼽힌다. 현재 세계의 장기 이식은 생명 연장 수준을 넘어 인류의 오랜 꿈인 150세 생존을 목표로 진보하고 있다. 문제는 숱한 장애물이다.

역사에 장기 이식이 처음 기록된 것은 기원전 2세기께. 중국 의사 피엥치아오가 2명의 심장을 맞바꾸었다는 기록이 전해 온다. 그 뒤로 장기 이식과 관련한 숱한 도전과 실험이 있었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장기 이식의 역사는 실패의 역사였다. 그 같은 역사는 때로 시신이 겹겹이 쌓인 끔찍한 광경을 연상시킨다.

1964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사람의 몸에 침팬지나 비비원숭이 등의 심장을 이식하는 수술이 여러 번 있었지만, 모두 짧은 시간 안에 사망하고 말았다. 그리고 간·췌장·심장 이식 실험도 시도되었지만, 대부분 1980년대 초반까지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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