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속 은신처’ 폐교에서 놀자
  • 오윤현 기자 (nsisapress.como.kr)
  • 승인 2004.06.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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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속 은신처’ 찾아가는 폐교 여행…‘오디 따먹기’ 색다른 즐거움도
여행 문화가 바뀌고 있다. 바다나 번듯한 휴양지를 피해 농촌에서 ‘체험 휴가’(농사일을 경험하거나 물고기 등을 관찰하는 여행)나 ‘아드레날린 휴가’(카약 등을 타며 흥분을 맛보는 여행)를 즐기는 사람이 늘고 있는 것이다. 문화·휴양 시설로 탈바꿈한 폐교를 찾는 사람도 부쩍 늘었다. 주부 맹정희씨(35·서울)는 최근 미탄초등학교 한치분교(강원도 평창)에 다녀왔다. 한치분교는 한동안 종을 울리지 못하다가, 3년 전 일러스트레이터 엄기철씨(41)의 수고로 ‘camp 700’(www.camp 700.com)이라는 휴양 시설로 거듭난 곳.

1박2일간 폐교 생활을 체험한 맹씨는 폐교가 “추억 그 이상의 무엇을 주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과연 그가 한치분교에서 보고 들은 것은 무엇일까. 그녀와 동행한 아들 박희진군(서울 영원초등학교 4학년)의 시선을 빌려 아름다웠던 ‘폐교 여행’을 돌아본다.

한치분교는 우리 학교와 비교가 안 되게 작고 낡았다. 마치 손수건으로 덮어도 안 보일 만큼. 특이하게도 학교 운동장에 잡초가 푸릇푸릇 깔려 있었고, 그 안에서 예쁜 오리들이 뒤뚱뒤뚱 뛰놀았다. 학교 돌담 옆에 서 있는 아름드리 벚나무에는 검은 열매가 다닥다닥 열려 있었다. 입안에 열매를 넣고 깨물자, 피처럼 빨간 물이 나오면서 입안이 쌉쌀했다.

퉁가리 대신 오디를 잡다

짐을 방에 풀자마자 개울로 고기를 잡으러 갔다. 그렇지만 물살이 너무 세서 도저히 들어갈 수가 없었다. 빠르게 흐르는 물소리가 얼마나 큰지 귀가 멍멍했다. 개울을 따라 더 내려갔더니 맑은 물이 흐르는 개울이 나왔다. 그런데 그곳에는 이상하게 물고기가 한 마리도 없었다. 아저씨는 다른 강에 가면 물이 준 뒤에 퉁가리를 잡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 이상한 물고기가 보고 싶어서일까. 나는 더 아쉽고 허전했다.

다행히 돌아오는 길에 신나는 일이 생겼다. 학교 아저씨가 오디를 따러 가자고 말씀하신 것이다. 오디가 뭘까 궁금했는데, 오디를 보자 내 머리 속에서 물음표가 사라졌다. 오디는 바로 뽕나무 열매였다. 아저씨가 뽕나무 가지를 붙잡고 흔들자 새끼 포도처럼 생긴 오디가 우수수 떨어졌다. 밑에다 족대를 받쳤더니 족대 안에 오디가 가득 담겼다. 고기를 담으려고 가져간 주전자가 오디 때문에 배가 불룩해졌다.
다른 아저씨가 주전자에서 오디를 꺼내 먹으면서 “어, 고기가 언제 오디로 변했지?” 하고 말하는 바람에 모두 한바탕 웃었다. 고기는 한 마리도 못 잡았지만 오디를 잔뜩 잡아 가라앉았던 마음이 많이 좋아졌다. 그렇지만 나는 오디를 별로 먹지 못했다. 가끔 이상한 냄새가 났기 때문이다. 엄마는 그게 노린재라는 벌레 냄새라고 했다. 으~ 퉤퉤.

한치분교에는 학생이 딱 한 명이 있다. 바로 학교 아저씨 아들 엄윤용(2학년)이다. 그런데 걔는 이 학교에 다니지 않는다. 노란 스쿨버스를 타고 1.5km쯤 떨어진 미탄초등학교에 다닌다. 아저씨는 그림 동화책을 그린다. 교실 한 칸이 모두 아저씨 작업실이다. 벽에는 아저씨가 요즘 그렸다는 부엉이 그림이 잔뜩 걸려 있었다. 아저씨는 “높은 곳을 무서워하는 겁 많은 부엉이 이야기를 그림으로 그리고 있다”라고 말했다. 자세히 보니 정말 부엉이가 잔뜩 겁먹은 표정이다.

밖에 나와서 나무라는 흰 개랑 뛰어노는데 어른들이 비석치기를 하자고 했다. 비석치기라니? 나는 무엇일까 궁금했다. 나중에 보니 손바닥만한 납작한 돌을 비석처럼 세워 놓고 쓰러뜨리는 전래 놀이였다. 상대편은 옛날에 해보아서 그런지 다 잘했다. 그렇지만 나랑 동생은 처음 하는 거라서 서툴렀다. 엄마는 계속 옛날 생각이 난다며 웃었지만, 나는 웃지 않았다.

아, 누룽지가 먹고 싶다

학교 아저씨가 (별로 재미없어 하는) 내 눈치를 알아차렸는지 족구를 하자고 했다. 사람이 부족해서 엄마도 동생도 같이 했다. 한 편이 4명, 지는 팀이 저녁밥을 짓기로 했다. 그런데 내가 찬 공이 자꾸 금 밖으로 튕겨 나가거나 네트에 걸렸다. 결국 우리 팀이 2 대 1로 지고 말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운동을 좀 해두는 건데~. 하지만 후회해도 소용없다. 이미 지나간 버스니까 말이다.

어른들이 밥을 짓는 동안 동생과 나는 벚나무에 걸려 있는 그물침대(해먹)에 누웠다. 그물침대는 몸을 움직일 때마다 뒤집힐 것처럼 출렁거렸다. 무서웠지만 가만히 있으니까 시원하고 스릴이 있었다. 한참 누워 있는데 뭐가 공중에서 후두둑 떨어졌다. 빗방울인가 하고 보았더니 벚나무 열매였다. 옷에 떨어진 열매가 깨지면서 빨간 물이 들었다. 같이 간 아저씨가 그 열매를 손으로 으깬 뒤 코밑에 바르자 코피가 난 것 같았다. 그 모습을 보고 한참 웃었다.

학교 아저씨가 불러서 갔더니, 아궁이에 불을 지피라고 했다. 아궁이에는 거북이처럼 생긴 무쇠 솥이 걸려 있었다. 엄마들이 솥에 쌀을 안치고 불을 피우는데, 나무가 젖어서 불이 잘 안 붙었다. 연기 때문에 눈물이 얼마나 많이 나던지 1년 동안 흘릴 눈물을 다 흘린 것 같았다. 간신히 불을 붙이고 났더니 엄마가 오늘은 그을음 때문에 모기가 안 물 거라고 했다. 정말 그랬으면 좋겠다. 나는 모기에 잘 물리니까.

아름드리 나무 아래에서 밥을 먹었다. 내가 불을 때서 그런지 밥이 집에서 먹던 것보다 훨씬 더 맛있었다. 누룽지도 먹고 싶었는데 밥이 딱 알맞게 되어서 구경을 못했다. 내일 아침에는 불을 좀더 세게 때야겠다.

어른들은 학교 아저씨랑 옛날이야기를 하면서 술을 드셨다. 그때 윤용이와 학교 앞집에 사는 이지연이라는 여자 아이(1학년)가 돌아왔다. 특이하게 걔들은 넓적한 돌 위에 엎드려서 숙제를 했다. 나는 책상도 불편한데 걔들은 글도 쓰고 문제도 풀었다. 윤용이와 지연이가 참 심심할 것 같았다. 컴퓨터도 없고 재미난 놀이시설도 없으니까 말이다.
그렇지만 학교 아저씨는 이곳이 서울보다 나은 점도 있다고 말했다. 숲속에 들어가서 여러 가지 곤충을 보고, 계절마다 바뀌는 자연을 한눈에 보는 것이 좋은 점이라고 했다. 아저씨는 사계절 중에서 겨울을 제일 좋아한다고 말했다. 아저씨는 “흰 눈이 내린 겨울날 음악을 틀어놓고 있으면 정말 행복하다”라고 말했다.

어둑해져서 우리는 방으로 들어갔다. 방은 넓고 뜨뜻했다. 교실을 방으로 바꾸었는데, 자세히 보면 그냥 아파트랑 비슷했다. 창문에는 어디에서 날아왔는지 험상궂게 생긴 나방들이 붙어 있었다. 나방들은 우리에게 문을 열어 달라고 조르는 것 같았다. 왜 나방들은 불빛을 좋아하는 걸까. 구슬픈 새소리도 들렸는데, 엄마는 소쩍새가 ‘솥 적다’고 우는 소리라고 말했다. 귀를 기울이니 정말 ‘솥 적다’로 들렸다. 아저씨 말대로 산골에는 신기한 게 참 많다.

12시가 다 되었는데 학교 아저씨가 담력 시험을 하자며 우리를 불렀다. 중학교 다니는 누나와 아이들 다섯이 폐가를 다녀오기로 했다. 학교를 벗어나니 정말 어두웠다. 하늘에 소금 같은 별이 있었지만, 숲속은 귀신이 앞에 있는 사람을 채어 가도 모를 만큼 깜깜했다. 숲을 벗어나자 곧 쓰러질 것 같은 집이 나왔다. 아저씨가 손전등으로 집안을 비추자 무너진 흙벽과 뻥 뚫린 천장이 보였다. 나는 그곳에서 귀신이 튀어나올 것 같아 다리가 떨렸다.

그런데 어느 순간 아저씨와 여자들이 사라졌다. 아무리 불러도 대답이 없었다. 귀신에게 잡혀갔나? 남자 애들 셋이 아무것도 안 보이는 마당에 서서 벌벌 떨었다. 나중에 다른 어른들이 와서야 비밀이 풀렸다. 아저씨와 여자 애들이 우리를 놀리려고 구석에 꼭꼭 숨었던 거다. 산길을 내려오는데 등이랑 속옷이 축축했다.

꼬끼오, 수탉 소리에 잠을 깨다

아침에 수탉이 얼마나 우는지 귀가 멍멍했다. 어른들은 오랜만에 들으니까 좋다고 했지만, 나는 까치와 다른 새들 소리가 더 좋았다. 먼 산에서 뻐꾸기 소리도 들렸다. 뻐꾸기들은 돌림노래를 부르는지 잇달아 뻐~뻑꾹거렸다. 가만히 듣고 있으니까 부드러운 깃털로 귀를 간질이는 것 같았다. 나는 그제야 어른들이 바람소리나 새소리를 들으며 ‘어, 좋다, 좋아!’ 하고 말하는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짐을 싸갖고 나오는데 허전했다. 학교 주변에 있는 옥수수밭과 콩밭에도 자꾸 눈이 갔다. 또 올 수 있을까 생각하니 조금 슬픈 기분이 들었다. 하루 사이에 친해진 나무가 꼬리를 흔들며 눈물을 글썽였다. 엄마도 섭섭한지 다음에 또 오고 싶다고 말했다. 학교 아저씨가 천천히 손을 흔들었다. 그늘을 드리운 벚나무들도 이파리를 반짝반짝 흔들었다. 모든 이별은 슬픈 거다. 그렇지만 좋은 추억을 마음에 담았으니까 나는 웃기로 했다.

일부 도시 사람에게는 폐교 여행이 불편할 수도 있다. 그러나 불편 뒤에 누리는 편안함을 생각한다면 못 참을 일도 없다. 폐교 여행의 또 다른 매력은 이동의 자유가 보장된다는 점이다. 식사 뒤 풀벌레 소리 자욱한 숲속을 산책할 수도 있고, 개울물에 발을 담근 채 메밀 막걸리를 들이켤 수도 있고, 그게 싫다면 개울에 나가 한가롭게 물고기를 잡을 수도 있다. 숲속 ‘은신처’에 돗자리 한 장 펴놓고 책 읽는 재미도 쏠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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