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의학 대혁명 열매 맺고 있다
  • 난징·성진용(자유 기고가) ()
  • 승인 1998.10.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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西醫와 결합·현대화로 큰 성과…신약·주사액 개발
한국의 한 기업 난징(南京) 주재원인 김 아무개씨는 기침을 심하게 하는 세살배기 아들을 데리고 중의원(中醫院)을 찾았다. 중의원을 처음 가보는 그는 한약 냄새가 물씬 풍기는 작은 한의원을 떠올렸지만 막상 가 보니 한국의 대학 부속 병원 같았다. 건물도 종합 병원처럼 컸지만 무엇보다 외과·내과·부인과·소아과 등 진료 과목이 나뉘어 있었다. 소아과만 해도 진찰실이 여러 개 있어서 어디로 가야 할지 망설이다 나이가 지긋한 의사가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오십이 넘어 보이는 의사는 아이의 증상을 묻고 나서 체온을 재더니 아이의 혀와 집게손가락을 유심히 살폈다. 그리고 청진기를 들이대 소리를 듣고는 폐렴일지도 모른다며 혈액 검사와 엑스레이 검사를 하고 오라고 옆 방을 가리켰다. 김씨는 서양 병원으로 잘못 찾아간 것이 아닌가 의아해 하면서도 일단 의사가 시키는 대로 검사를 받고 검사 결과를 의사에게 건넸다.

의사는 검사 결과를 보고 나서 “다행히 폐렴까지 가지는 않았다”라며 중약(中藥)을 먹일 것인지 서약(西藥)을 먹일 것인지 물었다. 서약을 거론하는 의사의 얘기에 궁금증이 더해진 김씨는 그 곳이 중의원이 맞는지 물었다. 의사는 별다른 대답 없이 김씨에게 탕으로 끓여 먹는 중약을 처방하고, 밤에 아이의 기침이 심해지면 먹이라면서 서약도 한 가지 함께 처방해 주었다.

중의원, 서양 병원처럼 전문의 제도 실시

김씨가 갔던 중의원은 비교적 규모가 큰 성급(省級) 병원이다. 중국에 있는 중의원들은 규모에 차이가 있을 뿐 김씨가 보고 겪은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의원에 들어서면 우선 눈에 띄는 점은, 서의원(西醫院)처럼 진료 과목이 외과·내과·소아과·침구과 등으로 나뉘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같은 진료 과목에서도 진찰 항목이 세분화해 있다. 내과를 예로 들면, 성급 병원의 경우 내과 진찰실이 무려 30여 개가 있고, 진찰실마다 소화기·호흡기·심혈관 등 보는 병이 다르다. 서의처럼 전문의 제도를 실시하는 것이다.
다음으로 쉽게 발견할 수 있는 것이, 규모에 따라 다소 차이는 있지만 모든 중의 병원 내에 초음파·내시경·심전도·컴퓨터 단층 촬영 등 서양 의학의 진단 장비를 갖추고 있다는 점이다. 중의원에서는 기본적으로 동양 의학의 전통적인 진단 방법인 사진(四診), 즉 망진(望診) 문진(問診) 문진(聞診) 절진(切診 혹은 맥진)을 모두 이용한다. 앞에서 중의사가 집게손가락을 본 것은 어린아이들에게 쓰는 절진이다. 그러면서 동시에 서의의 진단 방법을 함께 이용한다. 한 중의사는 “서의의 방법이든 중의의 방법이든 우리의 목적은 환자를 치료하는 것이다. 고대 중국의 명의 화타나 편작이 다시 살아난다 해도 현대 의학의 첨단 진단 장비를 이용했을 것이다”라고 말한다. 진단 과정에서 중·서 결합은 중의가 특별히 강조하는 부분의 하나이다.

병에 대한 진단이 끝나면 중의사들은 병력 카드에 환자의 증상과 함께 병의 원인과 자신의 진단 내용을 정확하게 기록한다. 여기에는 혈액 검사나 심전도 등 서의의 장비를 이용한 진단 결과가 들어가며, 진단 결과에 따라 약을 처방하면 무슨 약재가 몇 그램 들어갔고, 침을 놓으면 어느 혈자리에 침을 놓았는지 정확하게 적는다.

진단 과정만이 아니다. 치료도 중의와 서의를 함께 사용한다. 모든 중의원이 서의 약을 갖추고 있어서 증상에 따라 중약과 서약을 함께 처방하고 침구나 기공으로 치료하는 동시에 규모가 큰 중의원에서는 서의에서 하는 수술도 한다.

그래서 중의약 대학의 교육 내용을 보면 중의 과목과 서의 과목이 50 대 50 비율로 되어 있으며, 중의사들은 졸업 이후 서의 병원이나 서의 의과대학에서 2∼3년 다시 연수한다. 게다가 몇 년 전부터는 중·서 결합을 더욱 강화하기 위한 새로운 학제를 실시하고 있다. 보통 중의약 대학의 학제는 예과와 본과 구분 없이 5년제였는데, 새로운 학제는 7년제로, 처음 2년 동안은 서의 의과대학이나 다른 대학의 의학 계열 과에서 서의 교육을 받은 뒤 중의대에 다시 돌아가서 나머지 5년 동안 중의와 서의를 함께 배운다.

한마디로 지금 중국의 중의는 ‘중·서 결합’과 ‘중의 현대화’라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중의가 이렇게 방향을 잡은 것은 50년대 마오쩌둥(毛澤東) 시절부터인데, 4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이 정책을 변함없이 추진하면서 많은 연구 성과와 임상 경험을 쏟아내고 있다.

우선 중의 현대화 작업의 하나로 꼽을 수 있는 것이 중약 성분을 과학적으로 분석하고 이를 토대로 하여 신약을 개발하는 일이다. 한 예로 지금 중국에서는 중약을 주사액으로 만들어 정맥이나 근육 혹은 경락의 혈자리에 직접 투여하는 방식을 많이 연구하고 임상에 응용하고 있다. 난징중의약대학(南京中醫藥大學)에서 중약(中藥)을 가르치는 자오보(趙波) 씨는 “중국 각지에서 연구·발표하는 주사액이 너무 많아서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다. 임상에서 실제로 사용하는 주사액만 해도 수백 가지에 이른다”라고 말한다. 이런 주사액은 한 가지 중약 성분 혹은 여러 가지 중약을 합성해서 만든다. 예를 들어 난징에서 생산하는 주사액으로는 마이루어닝(脈絡寧)이 유명하다.
효과 높고 투약 간편한 주사액

주사액은 탕으로 끓여 먹는 일반적인 중약(中藥)에 비해 투약이 간편하며 효과가 빠르고 정확하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는데, 몇몇 약들은 서양약보다 효과가 더 좋다는 사실이 입증되어 중국 내 서의 의원에서도 중약 성분 주사액을 많이 사용한다. 동맥 경화와 뇌혈전에 쓰는 단삼(丹蔘) 주사액, 혈압을 낮추는 데 쓰는 천궁(川芎) 주사액이 대표적인 것들이다.

뿐만 아니라 다양한 형태의 중약을 개발해 시중 약국에서 팔고 있다. 즉, 물에 타 먹기 쉽게 만든 총지(沖劑)와 커리지(顆粒劑), 물과 함께 먹는 완지(丸劑), 야오낭(藥囊) 등이 그것이다. 그리고 액체로 만들어 마시기 쉽게 만든 커우푸예(口服液), 상처 부위에 붙이는 가오지(膏劑), 또 우화지(霧化劑)라고 해서 약을 뜯으면 안개 같은 것이 피어나면서 코를 통해 기관지로 들어가서 기침을 멎게 하는 약 등 감기약에서부터 난치병 치료약에 이르기까지 여러 형태의 중약이 먹기 쉽게 만들어져 있다.

중국 사람들은 이런 약들을 중성약(中成藥)이라고 부르는데, 고전적인 방(方)에 근거해 새롭게 개발한 약이 대부분을 차지하지만, 우리가 흔히 보약이라 부르는 귀비탕(歸脾湯) 육미지황환(六味地黃丸) 보중익기탕(補中益氣湯) 등 원방(原方)을 그대로 먹기 좋게 만든 것도 적지 않다. 물론 중성약은 구체적인 증세에 맞추어 병원에서 직접 조제하는 탕제에 비해 약효가 다소 떨어지지만 약국에서 쉽게 살 수 있고 먹기 편하다는 장점이 있다. 가격 면에서도 큰 부담이 없어서 일반인이 많이 찾는다.

한 가지 약재만 사용해서 치료하는 단방약(單方藥) 연구도 활발하다. 이는 오래 전부터 이미 알려져 있는 효능 이외에 중약의 새로운 약효를 찾아내는 작업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용담초(龍膽草)는 주로 간담(肝膽)의 열을 내리는 데 사용하는 약재인데 성도중의약대학(成都中醫藥大學) 부속병원에서 만성 위염 환자 36명에게 이 약을 투여한 결과 31명에게서 효과가 있다.

침구 쪽에서 보면 위경(胃經)의 혈자리인 족삼리에 침을 놓고 내시경을 통해 위의 변화를 관찰하거나, 간과 담의 혈자리에 침을 놓고 초음파를 통해 담석의 이동 상황을 살피는 등, 이미 오랜 임상 경험으로 확인된 경락의 효과에 대해 그 이치를 과학적으로 분석하고 새로운 치료 방법과 효과를 찾아내기 위한 연구를 끊임없이 하고 있다. 또 여러 군데 침을 찌르는 번거로움을 피하고 한 자리에만 침을 놓아서 효과를 높이는 방법과, 수이전(水針)이라고 해서 경락의 혈자리에 중약 성분을 주사하는 방법도 활발하게 연구하고 임상에서도 사용하고 있다.

특히 현대 의학과의 결합 부분에서 관심을 모으기 시작한 침법이 시아오전다오(小針刀)이다. 요즘 시아오전다오 침법을 사용하는 전문 치료 센터가 점점 늘어나고 있고, 이미 중의대를 졸업한 중의사를 비롯해서 서의의 외과 의사들 그리고 외국 유학생들까지 이 침법을 배우려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이 침법은 주한장(朱漢章)이라는 중의사(中醫師)가 개발한 것으로 그가 쓴 책 첫머리에는 ‘침칼을 새로운 치료법과 결합해 전통 의술을 현대화했다’는 문구가 있다. 이 침은 이미 고대로부터 있어 온 침의 모양을 약간 변형한 것으로, 중국에서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침과 비교해 침이 굵고 침끝이 칼날로 되어 있다는 것이 가장 다른 점이다. 동양 의학의 경락 이론에 현대 의학의 해부학 지식을 결합해 치료하는 이 침법은, 디스크·관절염, 근육 마비와 통증 등 척추·관절·근육 계통의 질병에 주로 사용하며, 귀울림이나 머리가 어지러운 증상에도 효과가 있다.

특히 이 침법은 서의의 수술로도 완치를 보장할 수 없는 강직성(强直性) 척주염(脊柱炎)에 효과가 좋다. 23세인 장티에치(章鐵奇) 씨는 6년 전부터 강직성 척주염으로 고생했는데 그동안 서의는 물론 중의의 침구 치료도 받아 보았지만 별다른 효과를 보지 못했다. 그러다 시아오전다오 치료를 받기 위해 난징에 있는 장쑤성(江蘇省) 제2 중의원을 찾았다. 장씨의 아버지는 “처음 시아오전다오 치료실을 찾았을 때만 해도 등이 곱사처럼 굽어져 있었는데 대여섯 차례 시술을 받은 뒤 일반 사람과 거의 다름없이 곧게 펴졌다”라며 아주 만족스러워했다. 장씨를 치료하는 스시아오양(施曉陽) 씨는 “보통 여러 병원을 거치다가 마지막으로 시아오전다오 치료를 받기 위해 오는 환자가 많다. 시아오전다오 침법이 아직 해외는 물론 중국 내에서도 일반 사람에게 많이 알려져 있지 않다”라며 아쉬워했다.

이같은 중·서 결합과 현대화 노력 덕분에 중의나 서의 한 가지만으로 치료할 때보다 치료 효과가 훨씬 높아지고 있다는 임상 보고가 여러 분야에서 많이 나오고 있다. 한 예로 중·서 결합 방법으로 당뇨병을 치료한 구체적인 사례를 살펴보자. 이 임상 실험은 광저우 중의원(廣州中醫院)이 실시한 것이다. 먼저 환자들을 두 조로 나눈 뒤 한 조는 서약만 투여했고 나머지 한 조에게는 서약에다 중약인 익신방구복액(益腎方口服液)과 복방단삼주사액(複方丹蔘注射液)을 함께 사용했다. 결과는 서약조(西藥組)의 경우 55% 치료 효과를 보였고, 중·서 결합조는 89.5%의 치료율을 보여 그 차이가 명확하게 드러났다.

“서의가 중의 흡수·통합” 우려도

중·서 결합 방식에 문제를 제기하는 목소리도 없지 않다. 우선 지적되는 되는 것이, 서의나 중의 한 가지 학문을 통달하는 데만 평생을 공부해도 부족할 텐데, 중의와 서의 두 마리 토끼를 좇다가는 한 마리도 제대로 잡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현재 진행하고 있는 중의와 서의 결합 방식이 서의가 중의를 흡수·통합하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우려이다. <중의존망론>이라는 책을 쓴 중의사 허주다오(何足道) 씨는 이 책에서 ‘수천 년 이어온 전통 의학인 중의의 특색과 장점을 살려 가야 한다. 중의와 서의의 결합이 둘이 합해 하나가 되는 방식이 아니라 중의와 서의가 평등하게 발전해 가는 형태여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지금 중국에서는 백여 가지가 넘는 중의학 관련 잡지가 정기적으로 발간되고 있다. 이 안에는 중·서 결합에 대한 연구 성과는 물론 침구·중약·기공 등 중의 고유 영역에 대한 연구 결과와 임상 사례가 매번 몇십 건씩 소개되고 있어서 한 해에 몇 건이나 발표되는지 헤아리기 힘들 정도이다. 그리고 중국 정부 역시 중·서 결합을 추진하면서 중의의 기본 이론을 더욱 든든히 다지는 등 중의의 특색과 장점을 살려가는 것을 큰 정책 줄기로 잡고 있다.

이런 중국 정부의 중의 육성 정책과 앞에서 말한 여러 가지 현상들을 볼 때 지금 중의는 서의에 단순히 흡수되고 있다기보다는 중체 서용(中體西用) 쪽으로 흘러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중·서 결합이 옳은지 틀린지, 현재 중의가 서의의 물결에 밀리고 있는지 아닌지 하는 논의를 별개로 치더라도, 중국 의료인들과 정부가 전통 의학 발전을 위해 쏟는 노력은 한국의 경우에 비추어 부러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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