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의 승부, 누가 알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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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1998.06.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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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강석진 교수의 98 프랑스 월드컵 관전 요령
적의 창끝은 예리하고 나의 방패는 갈피를 못잡는다. 그렇다면 이것은 모순이 아니다. ‘월드컵 1승’이 목마른 한국 팀의 승리를 기대한다는 것 자체가 모순인지 모른다. 한국 축구 대표팀이 프랑스 월드컵에서 맞닥뜨린 솔직한 상황이다. “홍명보가 2∼3명 있어야 한다”는 불가능한 ‘소망’은 한국 축구의 현주소를 말해 준다.

그러나 ‘공은 둥글다’는 축구 격언은 또한 요행수를 기대하는 허황된 도박꾼의 심리가 아니다. ‘승부의 모순 법칙’이야말로 축구가 지닌 매력을 단도 직입적으로 말해 준다. 서울대 수학과 교수이면서 ‘아마추어 축구 평론가’인 강석진 교수의 월드컵 감상법을 소개한다. <편집자>
월드컵 첫 승리와 16강 진출을 목표로 하는 한국은 멕시코와의 경기가 가장 중요하다. 멕시코는 그동안 몇 차례 평가전에서 부진한 모습을 보여 우리에게 자신감을 주기도 했지만, 일본과의 마지막 평가전에서는 베스트 멤버를 모두 기용하며 2대 1로 승리해 만만하게 볼 상대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했다. 에르난데스·블랑코·팔렌시아 등 공격 3인방이 위협적이다.

중국한테도 쩔쩔 매는 한국 수비인 만큼 불안한 마음을 금할 길 없다. 멕시코 역시 수비에서는 빠른 측면 공격에 취약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서 서정원과 이상윤의 돌파에 기대를 걸어 보지만….
48년 올림픽 ‘첫 제물’은 멕시코

한국이 48년 런던 올림픽에서 멕시코를 상대로 짜릿한 첫 승리(5 대 3)를 거두었던 것처럼 월드컵 무대에서도 멕시코를 첫 승리의 제물로 삼을 수 있을 것인가. 설레는 마음으로 멋진 한판을 기대해 본다. 한국 : 멕시코 한국 시간 6월14일 0시30분

70년대 초반 요한 크루이프를 주축으로 무지개처럼 아름다운 토털 사커를 선보이며 세계를 주름잡았던 네덜란드는 가지고 있는 실력보다 월드컵 본선 무대의 성적이 좋지 않다는 징크스에 시달려 왔다. 94년 미국 월드컵 대회에서도 8강전에서 브라질과 치열한 접전을 벌인 끝에 3대 2로 아깝게 물러선 전력이 있다. 이번 대회에서도 요한 크루이프의 뒤를 잇는 슈퍼 스타 데니스 베르캄프·클뤼베르트·시도로프·오베마스 등을 앞세워 우승을 노리고 있다.

한국은 아무래도 수비 위주의 경기를 펼칠 수밖에 없겠지만 그래도 네덜란드의 가공할 공격을 막아내기엔 역부족일지 모른다. 가장 큰 고민은 홍명보가 2명 필요하다는 데 있다. 공격형 미드필더로서의 홍명보와 스위퍼로서의 홍명보가 모두 절실하다는 뜻이다.

그렇다고 손오공처럼 홍명보를 복제해서 한국 팀만 12명이 뛸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이세연 이후 가장 뛰어난 골 키퍼인 김병지에게 기대를 거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 한국 : 네덜란드 21일 0시30분
우리도 ‘한방’ 있다

한국이 멕시코를 이긴다고 해도 16강전에 진출하기 위해서는 벨기에의 벽을 넘어야 한다. 유럽의 ‘붉은 악마’ 벨기에는 시포와 엘스트가 미드필드를 지휘하고 올리베이라와 닐리스가 투톱을 이룬 탄탄한 팀이다. 그동안의 평가전을 보아도 한국이 상대하기에는 벅찬 팀인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우리도 ‘한 방’이 있다는 것을 얼마든지 보여줄 수 있다. 한국이 그동안 세계 무대에서 호평을 받은 것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불타는 투혼 아니었던가. 한국 : 벨기에 25일 23시

요즘엔 속세의 염불이 나무아미타불에서 IMF 어쩌구를 거쳐 ‘가자, 16강으로’따위로 빠뀐 것이 아닐까 착각할 지경이다. 예선 경기가 끝나면 한국의 16강 진출 여부가 결정될 것이고, 그뒤에는 진짜로 재미있는 16강 토너먼트가 시작되어 꿈같은 축구 향연이 펼쳐질 것이다. 그리고 7월13일. 누군가는 월드컵을 제패한 환희에 떨고 누군가는 아쉬운 마음에 고개를 떨굴 때 우리는 다시 무언가 허탈한 가슴을 안고 단조로운 일상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렇지만 어차피 산다는 게 그런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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